[비하인드 스토리] 갈홍 편: 제3회 신선과 의사
제3회 신선과 의사
그 해 겨울, 고요하던 나부산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난을 피해 가족을 거느리고 나부산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갈홍이 한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산 밖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설마 또 전란은 아니겠지요?”
노인이 대답했다
“전란이 아니라 돌림병이네. 산 밖에서 이상한 돌림병이 도는데 그 병에 걸리면 열 명 중 아홉은 죽고 살아 남은 한 사람도 얼굴이 곰보가 된다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산중으로 피해 들어왔네.”
갈홍은 자신이 광주에서 의술을 행할 때 이런 돌림병을 본 기억이 났다. 이 병에 걸리면 갑자기 고열이 나고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돋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반점이 두창으로 변해 긁으면 고름이 흐르고 긁지 않아도 곪아 터졌다. 이 질환에 걸린 다수의 환자들은 열흘 안에 목숨을 잃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해도 얼굴에 검은 흉터가 남아 그 모양이 보기 흉했다. 1년 정도 지나면 흉터는 사라지지만 패인 자국은 영원히 남아 살아 남은 환자는 곰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이상한 질병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도 모르고 질병의 원인도 몰라 의사들도 진료방법을 찾지 못했고 환자들은 그저 죽기만을 기다렸다. 치료방법이 없는 이런 질병은 전염성도 강해서 전 가족이 다 걸리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한 마을의 촌민 모두가 감염되는 경우도 있어 이 돌림병이 지나가는 마을마다 열에 아홉 집은 텅텅 비게 되었다.
그날 저녁 갈홍은 이런 돌림병을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 기록했다. 이로써 갈홍은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천연두 전염병 증상을 서술한 의사가 되었다.천연두의 증상을 기록한 갈홍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무서운 돌림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한 갈홍은 질병의 예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는 질병을 치료함에 독으로 독을 쳐야 하며 독성이 없는 약으로는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갈홍은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주후비급방>을 보던 갈홍은 미친 개병의 예방법을 보고 자신이 과거 이런 예방법을 연구하던 과정을 돌이켜 보았다…
사람이 미친 개에게 물리면 미친개병에 걸려 반드시 죽게 된다. 미친 개의 이빨에 독이 있기 때문에 그 이빨에 사람이 물리면 죽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미친개병은 물리자 마자 발작하지 않고 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작한다. 이로부터 독성물질이 체내에 잠복해 있다가 기회를 봐서 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은 독으로 치는 원리에 따라 미친 개의 독으로 미친개병을 치료할 수는 없을까? 후에 누군가 미친개에게 물리자 나는 그 개를 죽여서 개의 뇌수를 상처부위에 바르게 했다. 그랬더니 과연 일부 환자는 다시는 미친 개병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것이 아마도 독은 독으로 치는 예방효과이리라…
미친개병의 예방법을 머리에 떠올린 갈홍은 치료약이 없는 질병들도 반드시 예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여겼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무겁던 마음이 다소 좋아져서 갈홍은 침상에 누워 예방법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갈홍은 자신의 미친개병 예방법이 비록 프랑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면역백신처럼 그렇게 과학적이지는 못하지만 그 원리는 루이 파스퇴르와 같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루이 파스퇴르는 토끼로 하여금 광견병에 걸리게 한 다음 그 토끼의 뇌수로 백신을 만들어 광견병 예방에 사용했다. 갈홍의 예방법은 루이 파스퇴르처럼 선진적이지는 못하지만 갈홍은 루이 파스퇴르에 비해 1천 년 전에 벌써 벌써 광견병의 예방법을 생각했다. 그로부터 갈홍은 중국 면역의학의 비조라 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천연두를 피해 산중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갔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산 밖에서 더는 천연두에 걸리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이다. 이 때 갈홍은 또 그 노인을 만났다. 이번에는 그 노인이 갈홍을 찾아왔다.
“원래 선옹(仙翁)께서는 의술도 높으시군요. 많은 사람들이 늘 산에 올라 선옹을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질환이 하나 있어 선옹의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갈홍이 물었다.
“무슨 질환입니까? 말씀하십시오.”
“이번에 돌림병을 피해 산중에 들어왔는데 저의 아들이 산에서 어떤 질환에 걸렸습니다. 증상이 이번 돌림병과 비슷해서 열도 나고 붉은 반점도 생겼으나 완치된 후에 흉터는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질병 같은데 혹시 선옹께서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자제분은 사슬(沙蝨) 독에 중독된 것입니다. 심산의 숲에는 모기보다도 작은 사슬이라는 곤충이 있는데 그 벌레에 물리면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돋고 열이 납니다. 다행히 고열로 죽지 않고 살아나면 곰보가 되지 않고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하지만 고열로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자제분이 큰 재난에서 살아 남았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노인이 감탄했다.
“참으로 신선이십니다! 저의 아들은 풀밭에 앉아서 손자와 풀싸움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 사슬에 물리는 것은 다반사가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손자는 무사하니 참으로 신께서 보우하신 덕입니다! 이제부터는 손자가 풀밭에서 놀지 못하게 해야 하겠군요.”
갈홍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사슬은 산중에만 있지 산 밖의 풀밭에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말했다.
“저의 집사람이 1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저는 지금도 그가 무슨 질환에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옹께 가르침을 구합니다.”
“어떤 증상을 보였습니까?”
“집사람은 2년 동안 병환으로 알아 누웠는데 계속 오후만 되면 미열이 나고 밤중에는 식은 땀을 흘리며 무기력해지고 날 따라 야위어갔습니다. 후에는 피골이 상접해지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시주병(尸注病)입니다. 이런 질환은 쉽게 전염이 되는데 가족 중에 이 질환에 걸린 사람이 또 있습니까?”
노인은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의 딸이 집사람보다 먼저 이런 질환에 걸렸는데 곧 요절했습니다. 그러면 집사람이 딸에게서 전염되었군요?”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이런 질환에 걸리면 더 빨리 절명하게 됩니다.”
노인은 한참 말이 없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인은 일어서서 갈홍에게 사의를 표시하고 자리를 떴다.
갈홍이 발견한 ‘사슬독’은 바로 털진드기병을 말한다. 털진드기의 유충은 사람을 물면서 피를 빨아들일 때 ‘리케차’라는 병원체를 인체에 주입해서 고열을 유발한다. 갈홍은 털진드기병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질환의 전염 매체가 사슬, 즉 털진드기 유충이라는 것도 알았다. 갈홍의 발견은 중국의 최초이자 세계의 최초이다. 왜냐하면 미국인 병리학자 하워드 리케츠(Howard Taylor Ricketts)가 이런 병원체를 연구하다가 희생되었고 그 후 한 미국인 의사가 이 질병을 기록한 것은 19세기였기 때문이다. 갈홍은 그들보다 1천여 년 전에 털진드기병을 발견한 것이다.
갈홍은 ‘사슬독’을 <주후비급방>에 자세하게 기록한 동시에 ‘시주(尸注)’도 기록했다. 갈홍이 증상을 아주 대표적이고 정확하게 기록한 이 ‘시주’병은 바로 결핵질환을 말한다. 이 또한 중국 최초의 결핵질환에 관한 기록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