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학자 신정일씨가 갑오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 발로 걷고 가슴으로 만난 '갑오동학농민혁명 답사기(푸른 영토, 값 1만,7000원)'를 펴냈다.
작가는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를 돌아보며 농민군이 탐관오리에 맞서고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자취를 찾아서 기록했다. 땅이 나의 스승이요 나의 몸이라는 저자의 신념을 이번에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을 통해 보여준다.
싸움의 승리를 기억하기 위한 전적지 답사가 아니라 싸움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답사요, 역사의 기록서인 셈이다. 특히 농민군의 발자취마다 남은 기쁨의 환호성과 감격의 눈물을 빼놓지 않고 기록, 곧 세월과 함께 사라질 역사를 현재에 복원하고자 했다.
“나는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했을 뿐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시작된 동학이 전라도에서 꽃을 피웠고, 충청도, 강원도, 황해도를 비롯한 전역에서 활활 타오르다가 사라져간 흔적을 찾아 작가는 부단히 떠나고 부단히 돌아왔다. 남에서 북으로, 해지는 서해에서 해 뜨는 동해로, 내가 찾아 헤맨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가 접혀졌다. 120년 전 동학농민군이 꿈꾸었던 사람이 한울인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가 그 땅을 걸으며 기억하고 다짐하고 지켜야 할 마음과 생각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한울님이 계신다”,“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라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산천초목도 짐승도 편안치 못하니 사람만 어찌 따스하고 편안하게 도를 구하겠는가. 선천과 후천의 이치와 기운이 서로 엇갈려 만물이 다 싸우니 어찌 사람의 싸움이 없겠는가
해월 최시형의 예언대로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며 사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추세이다. 현실은 그렇더라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고 믿는다. 농민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동학사상을 다시 생각하고, 한울인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돌아보고 살펴야할 때가 지금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한 서린 참요만을 남기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동학농민혁명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어떤 성향을 지녔느냐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다. ‘동학난’이라 하여 폭도로 규정한 제국주의 사고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 ‘1894’, ‘갑오동학농민혁명’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오늘에 와서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명명에 많은 이들이 뜻을 같이 했다.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든 갑오년의 항쟁을 한국근현대사와 민중해방운동사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평가하는 데는 그 누구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답사 여정에서 역사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힌 산들을 만날 것이다. 그 산자락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과 ‘사람이 곧 한울’인 갑오년 농민군의 맑은 정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
외세에 맞서 구국의 깃발을 든 동학농민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마다 새겨진 이름들은 세월의 풍상에 씻겨 스러져가지만 우리는 사람을 섬기고 모시러 이 세상에 왔다는 한울정신은 지금껏 민족정신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 숱한 파란과 위기에서도 우리 민족이 꿋꿋이 버텨온 것도 그런 사상이 피에서 피로 전해진 덕분이었을 것이다. 혁명 이후 두 번째로 맞는 갑오년에 동학농민혁명의 참뜻을 돌아봄으로써 삶의 지침, 마음의 빛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대안, 한줄기 희망을 전해준다.
작가는 말한다. "지금은 잊었다고 고개 흔들어도, 그날의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두 손 들고 거부해도 시퍼렇게 살아 달려오는 아름다운 이름, 아름다운 얼굴들이 있다. 곧 봄이 오고 내가 가는 길모퉁이마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피고 섬진강변 구석진 곳 어디에서고 버들강아지는 피어나리라. 그러나 아직 이 땅은 사람이 만든 이념과 쓸데없는 욕심으로 합하지 못하고 두 동강이로 갈라져 있다. 사람이 한울인 나라, 미륵의 나라는 어디쯤에 있고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라고.
저자 신정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사학자이자 이 땅 구석구석을 걷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로, 현재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의 이사장으로 역사 관련 저술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작가는 1989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쳤으며, 그해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에서 압록강, 우리나라의 옛길인 영남대로와 관동대로, 그리고 삼남대로를 도보로 각각 답사했으며 400여개의 산들을 올랐고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걸었다.
이 땅을 수십 년간에 걸쳐서 걸은 경험으로 소백산 자락길, 변산 마실길, 동해 바닷가를 걸어 러시아를 거쳐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걸을 수 있는 세계 최장거리 도보답사 코스인 해파랑길을 국가에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소외된 지역문화 연구와 함께 풍류마을 조성 사업, 숨은 옛길 복원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며, 새로 쓰는 택리지, 조선을 뒤흔든 최대의 역모사건,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섬진강 따라 걷기, 영산강, 낙동강, 가슴설레는 걷기 여행, 영남대로' 등 60여 권의 저서를 펴낸 바 있다. /이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