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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26일 토요일 말씀묵상 ♣
성경:누가복음23:50-56(신139P)
제목: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
50.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할렐루야!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무덤에 안장된 날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묵상하시고 내일 부활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
어제 금요일 수난의 날에 주님이 수난을 당하시는 장면을 통해서 특별히 세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는 교훈입니다.
2.어려움을 당해도 정신을 잃지 말자는 교훈입니다.
3. 우리도 주님처럼 의의 십자가를 지자는 교훈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최대의 신앙은 자기 죽음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만약 놀라운 성공을 하고, 수많은 찬사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자기 죽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자라면 그것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는 성공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됩니다.
십자가는 알고 보면 행복의 원천입니다.
십자가의 헌신을 통해 여러분들의 삶을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고, 여러분들이 속한 공동체를 살리는 거룩한 십자가의 무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막 15:42-47)
숨이 끊긴 예수님은 고요히 무덤 속에 누워 계십니다.
오히려 죽인 자들은 밤새 잠도 못 자며 지키고 섰습니다. 승리자로 자처했던 저들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들에게는 피흘리신 예수님을 현장에서 보았지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평안하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기에 평안히 누워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평안합니다.
일시적인 걱정은 있어도 곧 이길 수 있고 다시금 평안이 있게 됩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요 14:27).
오늘 말씀은 3년 동안 예수님께 훈련을 받고 많은 능력을 목도했고 사랑을 받은 열 두 제자들은 도망가고 배반하고 흩어진 상황에서 예수님 살해 음모 주역이었던 72인으로 구성된 공의회(산헤드린)의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하는 사건입니다.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에 용감하게 나타나서 복잡하고 힘든 일을 감당하는 요셉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아리마대의 요셉처럼 묵묵히 그리고 용감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입으로 말하지 아니하고 행동으로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1. 아리마대 요셉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50절).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50절)
요셉을 부자 요셉(마태),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마가),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이 두려워숨기더니(요한)라고 평가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세 사람의 요셉이 있는데 야곱의 아들, 마리아의 남편, 아리마대 요셉인데 모두 선하고 의로운 인간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공회 의원은 오늘날 국회의원에 해당되는 높은 위치입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성공 때문에 교만하고 악한 사람도 많은데 아리마대 요셉은 선하고 의롭다고 하였습니다.
금상첨화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요셉은 공회 의원이라는 사회적 신분을 박탈당하고 온갖 수모를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결연히 예수님의 장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악하거나 약삭빠른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쏙 빠졌을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충성하고 있습니다.
선하고 의롭게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거짓, 싸움, 자살, 잔소리 한다고 부모를 살인하는 시대……. 물질로 인한 범죄가 너무 많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시험과 불행의 요소가 널려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아리마대 요셉처럼 선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아미마대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51절).
본문 51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아리마대 요셉은 세상적으로 모자라거나 부러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국회의원, 부자, 젊음, 건강……. 모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보통은 아닙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땅엣 것만 추구하며 살 수 있을 터인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영적 감감과 감수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는 요셉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세 복음 모두가 요셉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였음을 공통되게 언급하였습니다.
요셉은 시므온과 안나처럼 메시아와 메시아 왕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하였기에 모든 사람이 비탄과 절망에 빠진 상황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오신 메시아로 믿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지상의 나라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멀리하고 거절하지 아니하고 지상나라 너머에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경건한 성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란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요셉은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고 단순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평신도의 모습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많아야 하고 모든 성도들은 요셉과 같이 경건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합니다.
한 의사가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들어가 그들을 섬기며 지냈습니다. 그 마을의 추장 아들은 누가 봐도 매우 훌륭한 엘리트였습니다.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추장 아들이 마을로 돌아오자 온 마을이 술렁였습니다. 과연 그가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린 것입니다.
그 의사 역시 궁금한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 마을에서는 남자가 청혼할 때 여자의 집에 암소를 끌고 가서 하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처녀는 암소 한 마리를 받았고 때때로 두 마리를 받았습니다. 가끔씩 암소 세 마리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어 그 마을 처녀 중 몇 명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추장 아들이 청혼하기 위한 차비를 차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 행렬을 보니 암소를 무려 아홉 마리나 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역시 추장 아들은 달라. 누가 저 암소 아홉 마리를 받고 추장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될까?”라고 웅성거리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추장 아들이 도착한 집은 너무나 의외였습니다. 몹시 가난한 집에다가 청혼 받은 처녀 역시 병약한 외모에 영 볼품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들 실망하여 “추장 아들이 정신이 나갔나보다. 저런 아가씨에게 암소를 아홉 마리나 갖다 바치다니!” 하면서 수군거렸습니다.
그 의사는 본국으로 귀환할 때가 되어 그곳을 떠났고 그 추장 아들과 그 처녀의 이야기도 어떻게 되었는지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마을을 다시 방문하게 됐는데 그때의 추장 아들이 어느덧 추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추장의 초대로 그 집에 방문한 의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부인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예전에 봤던 그 볼품없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자신감 없고 초라한 아가씨가 아닌 무척 당당하고 아름다운데다 영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멋진 여성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의사가 속으로 놀라워하고 있는데 추장이 눈치를 챘는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때 암소 한 마리면 충분히 혼인 승낙을 얻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청혼의 순간에 암소를 몇 마리나 받았느냐가 한 여인에게 있어서 평생의 자기 가치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평생 자신의 가치를 암소 한두 마리 갑에 한정하며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제 아내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아내는 아홉 마리의 암소를 보고 무척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자신의 가치를 아홉 마리의 암소에 걸맞게 하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공부를 하라거나 외모를 가꾸라는 등의 조언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고만 말했죠. 그런데도 아내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멋진 여성이 되어갔습니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가치는 최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최고의 가치를 투자하셨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아리마대 요셉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아리마대 요셉은 최상의 것을 드리는 사람입니다(52-53).
본문 52-53절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요셉은 평소에는 숨은 제자였으나 제자들도 도망간 위기에 나타나 단호히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한 것은 용감한 행동입니다.
로마법에는 사형수의 시체를 구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대로 며칠이라도 방치해 두는 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포로 싼 것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하였습니다.
사랑과 정성을 다 하였습니다. 세마포로 싸고 값 비싼 향유를 발랐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새 무덤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만일 요셉 같은 성도가 없었다면 예수님의 시체는 그대로 십자가 위에 방치 되거나 일반 사형수의 무덤에 묻혔을 것입니다.
자기의 좋은 것을 기꺼이 예수님께 내어 놓는 감동적인 헌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것은 아깝고 집착이 갑니다. 그러나 나보다는 주님을 더 생각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요셉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윌리엄 보든(William Borden)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끝까지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그를 소개할 방법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억만장자”였습니다.
1800년대 말 그는 오늘날로 따지면 수십억 달러 가치에 달하는 낙농 회사의 상속자로 태어났습니다. 또한 그는 “명문대 졸업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일 대학과 프리스턴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기억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수백만 달러를 버린 채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머나먼 이슬람교도의 땅으로 떠났습니다. 윌리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여행을 권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럽과 아시아, 중동을 여행하던 중 그는 복음이 닿지 않은 곳으로 찾아가라는 하나님이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위한 선교에 삶을 바치겠다는 편지를 부모에게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성경책에 문장 하나를 썼습니다.
“남김없이” 윌리엄은 예수님을 따르려면 온전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예일 대학에 들어간 첫해에 그는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고 한 친구와 함께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침에 눈만 뜨면 예일 대학 내에 성경 읽기와 기도 모임이 하나씩 생겨났습니다.
윌리엄이 4학년이 되자 그런 모임이 1,000개에 달했습니다. 당시 그는 일기장에 “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께 순종하리라”하고 썼습니다. “후퇴 없이” 또한 대학 시절 윌리엄은 뉴헤이븐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알코올을 비롯한 중독자들의 갱생을 돕는 예일 호프 미션(Yale Hope Mission)이란 단체도 세웠습니다. 그는 재학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졸업 후 그는 성경책의 뒷면에 다시 한 문장을 썼습니다. “후퇴 없이” 윌리엄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세계 선교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중국 간쑤성에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아랍어를 배우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이집트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곳에서 척수막 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스물다섯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카이로에 묻혔습니다. “후회 없이” 윌리엄의 삶을 보며 어리석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답시고 가족과 재산, 미래까지 다 내팽개쳤건만 결국 선교지는 구경도 해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예일 대학의 영적 부흥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또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 수천 명입니다.
그의 인생은 결코 실패작이 아닙니다. 이 진정한 제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성경책 속에서 세 개의 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남김없이(No Reserves).
후퇴 없이(NO Retreats).
후회 없이(No Regrets).
그는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윌리엄처럼 살고 있습니까? 팬입니까? 제자입니까? 전부를 걸고서 예수님을 따르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우리 모두 윌리엄처럼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드리는 삶을 삽시다.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새 무덤을 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결론}***
여러분! 아리마대 요셉은 어던 사람입니까?
1. 아리마대 요셉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50절).
2. 아미마대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51절).
3.아리마대 요셉은 최상의 것을 드리는 사람입니다(52-53).
오늘 한국교회에는 아리마대 요셉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 최상의 것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바로 고난주간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시고 내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를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인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누가복음23:50-56절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는 날에 주님의 평안을 소유하시고 내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실 준비를 하시고 아리마대 요셉의 삶을 사시기로 결단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그는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눅23:50-5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