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4장 1 - 3절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지막 날에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아끼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얼마나 처참한 꼴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강력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용광로의 온도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성경에 용광로 불같은 날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온도를 알면 우리가 심판의 날에 지옥 불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불의 온도를 대략 가늠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대략 1500도 정도라고 합니다. 100도가 되면 물 같은 경우는 끊게 되고 100도 정도면 큰 화상을 입는 것이 현실인데 그것의 열다섯 배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일부러 들어가는 사우나하고는 차원이 다른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곳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게 되냐면 교만한 사람과 악을 행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용광로 같은 곳에 들어가서 지푸라기 같은 신세가 되어서 결국은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못할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까지 말씀을 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모릅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둘 수가 없습니다. 천사들이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해서 악한 영이 된 것이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교만에 대해서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윌리엄 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주 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난 영국의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총명함은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고, 주변 사람들은 그가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남용하며 다른 사람을 종종 무시하는 태도를 일삼았고, 가끔은 좋은 머리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에게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사고로 윌리엄은 두 눈을 잃게 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쳤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의기양양해 하며 거리를 지나칠 때 무시하던 마음으로 마주친 시각장애인들이었습니다. 그저 소리에만 의지하며 살아간 그들을 무시했다는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과 같은 처지에 놓인 자신을 위해 한 가지 소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내 모든 지식을 동원해 보자!' 윌리엄은 그 날부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윌리엄의 연구 전에도 손으로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연구됐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윌리엄은 그 좋은 머리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 시작했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일일이 적용해 보며 마침내 알맞은 방법인 '문 타이프'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벌을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로 교만은 하나님을 화나게 만드는 어리석은 모습인데 우리의 교만을 깨닫고 바른 길로 나아가게 되면 그것이 회복의 은혜가 되어서 결국 최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윌리엄 문처럼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교만을 버리지 못하면 용광로 같은 불을 절대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시겠다는 것이고 외양간의 소를 밖에 풀어 놓으면 미친 듯히 뛰어 놀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날이 되면 악인을 밟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한 번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때 애굽 사람들은 초상집이 되어서 슬픔 중에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 나갈 테니 우리에게 금은보화를 달라.”고 하자 애굽 사람들이 전혀 거부하지 않고 자신들의 금은보화를 다 주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인을 밟았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애굽 사람들의 채찍을 맞아 가면서 서러움도 당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 날이 되니까 역전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인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참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런 날이 있기 때문에 참고 인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십자가를 지면서 산다는 것이 조금은 억울할 수 있고 속상할 수 있지만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아이들도 이 정도를 사리분별을 해서 마지막 날에 이런 영광을 얻기 위해서 참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니까 우리는 헛된 길을 구하고 헛된 우상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마지막 날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믿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 헛된 것 구하지 않고 아침 안개와 같은 것에 현혹이 되어서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사람이 되지를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영에게 밟히는 것 같고 농락당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최후의 날에는 우리가 악인을 밟는 날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날은 잠깐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정한 승리이고 기쁨인 것이지 지금 어려움이 싫다고 해서 십자가의 길을 회피하고 좁은 문을 들어가지 않고 남들이 다 다니는 넓은 문으로 들어갔다가는 영원토록 이를 갈면서 후회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악한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 좇아 살아가면 우리도 이런 영광을 충분히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날 이런 영광과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오늘도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아끼고 사랑하고 경외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마지막 날에 용광로 같은 곳이 아니라 송아지처럼 뛰어 놀 수 있는 곳에서 다같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