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상에 얽힌 비밀과 세뇌의 뿌리
“한동안 카페가 잠잠하다 했더니 또 시작이군요.”
지인이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에 들어서며 말했다.
“그러게요. 같이 가요. 못 따라가잖아요.”
수찬도 걸음을 빨리해서 지인을 따라 갔다. 학교 다닐 때 달리기 선수이기도 했던 지인의 발걸음은 보통 사람들보다 빨라 항상 보조를 맞추기가 어려웠었다. 두 사람은 차안으로 들어왔다.
“카페 문제는 hansis와 운영진들이 잘 대처 하겠죠. 또 뭔 소리들을 그렇게 써 놓았는지--”
“수찬이에게 전화 한번 해 볼게요.”
지인이 차를 출발 시키자 진산이 핸드폰을 열어 번호를 눌렀다. 그 사이 지인은 방금 헤어진 강미정 원사를 생각했다. 특히 나중에 홍단원 얘기를 하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모습은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얼마나 홍단원에 치를 떨고 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 그래. 꼭 수준이 그래요. 알았어. 지금 우린 올라가고 있는 중이야. 그럼 수고 좀 해.”
진산이 전화를 끊으면서 속이 끊는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지인과 진산의 얼굴로 쏟아졌다.
“뭐래요?”
“항상 재내들 써먹는 수법 있잖아요. 기독교 얘기죠. 전홍사 카페 운영진은 기독교인이라느니 하면서 온통 도배질 해댔대요. 기독교가 지네들 밥인 줄 아나 봐요. 그리고 지인님과 박창식 사무총장의 밀월관계 뭐 어쩌니 저쩌니 써 놓았다내요.”
“한심한 인간들. 그 사람들은 그렇게 뿐이 할말이 없는 거죠. 자신들이 하는 일에 정당성이 없으니 항상 고비 때마다 기독교 어떻고 하는 거죠. 자신이 단군의 현신이라며 단군 할아버지를 상업적으로 팔아먹고 종교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군데-- ”
“그게 사이비 교주의 전형이죠. 현재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돌리게 하는 전략에 기독교만큼 좋은 게 없죠. 항상 그래왔잖아요. 내부 결속용으로요. 사실 단군상 문제도 광분한 기독교인들이 저지른 것도 있지만 기돈성의 지시에 의해서 저지른 일도 있었죠.”
“아니 그럼 홍단원 쪽에서 특공대를 조직해 단군상 목을 고의로 절단했다는 -- 그 말이 결국 사실인가요?”
지인은 가끔 진산이 툭툭 던지는 말에 자주 놀라곤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알고 있거나 왜곡되게 알고 있는 것에 상당 부분을 진산이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전에 단군상 목 잘린 것 중에 몇 개가 톱날에 의해 교묘히 잘린 게 있었어요. 센티 하나 틀리지 않게 톱날로 잘라 놓았죠. 흥분한 목사들이나 기독교인들이 그랬다고 하면 망치로 부수고 도망가지 그렇게 할 리가 없잖아요. 바보가 아닌 이상 시간도 없는데 말이죠. 순진한 홍단원 특공대들이 망치로 때려 부수기에는 용기가 안 나고 정성들여 자른다는 것이 그만 -- 그렇게 된 것이죠. 웃어야 할일인지 웃음이 안 나와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홍단원에서 그랬다는 것을 말이죠.”
진산이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내뱉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정보자료팀에도 2년간 있었잖아요. 나중에 대외비 문서를 보고 알았어요. 그러한 음모가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진산은 잠시 뜸을 들였고 목이 컬컬한지 껌을 씹었다.
“그리고 뭐요?”
지인은 운전을 하면서도 이번엔 또 뭔가 귀를 바싹 세워 들었다.
“단군상 문제가 이슈화 됐을 때 홍인련(홍익인간사랑연합회) 즉 지금의 민족학술원의 전신인 홍인련에서 자료를 하나 배포한 것이 있었어요. 그 자료에 보면 단군상이 파괴된 사진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뭐라고 써 있느냐 하면 ‘크리스트’라고 적혀 있었어요.”
“크리스트요? 그리스도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지요. 저도 사실 어릴 때부터 기독교를 믿어 왔지만 기독교인들은 크리스트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라고 하지요.”
“그게 뭐 어떻게 됐다는 얘기죠?”
“하얀 락카로 단군상에다 크리스트라고 마구 갈겨 놓은 사진이 문제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 누가 보더라도 자작극일 가능성이 농후한 거죠. 그것이 광적이건 아니건 간에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행위라면 그렇게 절대 쓰지를 않지요. 누군가 고의로 그것도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벌인 행위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지인은 이제 좀 이해가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일방적으로 알아왔던 단군상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지인도 예전에 센타에서 어느 목사가 일방적으로 단군상을 부수는 광적인 모습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지원장이 열심히 기독교 목사를 욕하고 스승님이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다고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지인으로서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원한이 특별히 없었는데 알게 모르게 기독교는 홍단원의 적이라는 인식이 뿌리깊이 박히게 되었었다. 진산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그 사진을 기독교 쪽에서 찍었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기독교가 단군상을 파괴하고 버젓이 크리스트라고 써 놓고 사진을 내 보낼 리는 없거든요. 그랬다면 이 땅의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웃겠습니까? 문제는 그 사진을 홍인련에서 찍어 그들의 자료에 실었다는 겁니다. 그게 웃깁니다. 저들 딴에는 자기들이 저질러 놓고 기독교에 뒤집어씌우는 작전을 쓴 건데 그 ‘크리스트’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자작극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걔네들은 뭔가 일을 벌일 때 허술해요. 그런 허술한 조직이 이렇게 커 온 것을 보면 사이비는 사이비죠. 정당한 조직은 그렇게 클 수가 없지요.”
진산의 논리는 빈틈이 없었다. 지인이 듣기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이런 그가 어떻게 10여 년 간 그런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는지 믿기질 않았다.
“아마도 그런 행동의 근간에는 세뇌라는 것이 작용하겠지요.”
지인은 세뇌라는 말을 내뱄을 때 심한 허탈감에 빠졌다.
“맞아요. 지인씨의 헤어진 아내도 그 세뇌라는 것 때문에 아직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 조직이 가정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말이죠. 멀쩡한 주부를 삭발하게끔 만드는 조직이 정상적인 조직입니까!”
“진산님. 제가 요즘 그 세뇌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세뇌에 대해 스스로 방어막을 칠 줄 알아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그 부분에 너무도 나약한 것 같아요.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세뇌에 빠지면 이성을 잃어버리잖아요. 저도 그 세뇌로 몇 년을 기돈성이가 깨달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거고요.”
“그 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저 같은 사범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죠.”
“그래서 제가 홍단원의 세뇌에 대해서 정리를 해 보았는데 들어보시겠어요?”
“당연히 들어야지요.”
지인은 자신이 연구하고 정리한 홍단원식 세뇌에 대한 입장을 진산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세뇌라는 것은 우리 개인이 그것에 대해 무방비 상태일 때 우리의 뼈 속까지 침투해와 우리의 정신을 갉아 먹게 되는 것 같아요. 홍단원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시켜 나가기 위해 세뇌를 주입시켜 나가는 기본적인 진행방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요? 그거 흥미로운데요.”
“홍단원 세뇌의 기본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이 세뇌라는 것도 기돈성가 만들어 놓은 것이겠지만요. 첫째는 웃음입니다. 홍단원 문을 열고 딱 들어가면서 맞닥뜨리는 것이 사범들의 웃음이죠. 전 그 웃음에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놀랍도록 밝게 웃는 웃음 뒤편에 감추어진 세계를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10명의 사범들 중 9명의 웃음은 철저히 위장된 웃음인 거죠. 그들도 세뇌된 웃음을 회원들에게 보이고 있는 것이겠지만요. 그 웃음에 회원들은 마음을 주고 지갑을 열게 되죠. 두 번째는 나눔입니다. 수련 후에 이어지는 각종 나눔에서 세뇌가 이루어집니다. 부정과 긍정의 선을 정확히 갈라 절대 부정적인 생각을 못하게 하잖아요. 기돈성과 홍단원에 대해서요.”
“그렇지요. 지인씨 말이 맞아요. 기돈성이 좋아하는 뇌가 단순하고 순수한 뇌입니다. 기돈성이 싫어하는 뇌는 의심 많은 뇌죠. 그게 다 이유가 있어요. 의심이 많은 사람은 절대 사이비에 안 빠지거든요. 그래서 기돈성이 두뇌 신피질의 의심을 잠재우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센타에서도 의심 많은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왕따를 시키잖아요. 그리고 구피질의 용기를 키우라고 하는데 결국 의심을 잠재워서 기돈성을 신으로 받드는 용기를 가지라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진산은 기돈성이 한동안 얘기했던 두뇌수련법과 두뇌이론을 들먹여 가며 그것의 세뇌성을 연결시켜 주었다. 진산의 얘기가 끝나자 지인이 계속 세외의 논리를 설명했다.
“세 번 번째는 활공입니다. 터치 말이죠. 웃음으로도 안 되고 나눔으로도 안 되면 눕게 만드는 거죠. 누워서 몸을 만지면서 작업에 들어가는 겁니다. 보통 몸이 릴렉스 되면 결국 마음까지도 열리게 되죠. 좋은 점도 있지만 이 활공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요. 섹스 말이죠.”
“심각하지요.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서 몸을 주무른다고 생각하면 그게 상식적인 상상이 되겠어요.”
“그래서 웃음, 나눔 그리고 활공 이 세 가지가 세뇌로 들어가기 위한 전초작업이 되는 겁니다.”
지인이 말하는 세뇌의 기본 방식에 대한 얘기가 끝나자 진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정리했네요.”
“자 이제 홍단원이 세뇌를 주입시켜 나가는 고도의 진행방식을 얘기해 드릴게요.”
“고도의 진행 방식이라. 그것도 궁금한 데요.”
“고도의 진행방식의 첫째는 화술입니다. 그래서 전 구통이 열린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일단 의심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의심을 하라는 얘기가 아닌 거 아시죠?”
“그럼요. 그 정도는 다 이해하고 들으니까 계속 얘기해 보세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진산으로서는 지인의 쓸데 없는 확인이 어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지인의 얘기는 계속 되었다.
“때로 나에게 좋은 귀감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 잘하는 사람들은 뭔가 합리적인 선에서 의심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두 번째는 최면입니다. 어떤 에너지 장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이 최면 상태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때 세뇌에 걸리기 딱 좋은 거죠. 홍단원의 경우 그러한 기운권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들어가면 옴짝 달싹 못하게 하는 거죠. 절대 자아를 드러내지 못하게 주관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거죠.”
“기운권이라. 그것도 맞아요. 홍단원만의 기운권이 있지요. 거기서 벗어나면 모두 적이지요. 그 기운권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최면에 걸렸다고 봐야지요. 맞아요. 그 기운권이 곧 스승의 기운줄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진산은 계속 맞장구를 치며 자신의 의견도 첨가했다.
“그러면 세뇌를 주입시켜 나가는 기본방식과 고도의 진행방식을 행하게 하는 상징성은 무엇일까? 이것이 제 고민이었습니다. 사범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 세뇌의 정점에 있는 거요.”
“그게 뭔데요? 찾았나요?”
“네. 찾았죠. 그것은 바로 스승이라는 트레이드마크인 것이죠. 스승을 뇌속에, 마음속에, 몸속에 강하게 이미지화 시켜 놓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가짜 스승도 얼마든지 진짜 스승으로 둔갑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 스승이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이죠. 그러니 스승의 말을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설혹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따라야만 하는 것 아닐까요. 기독교인들이 적이다 하면 모두 적이 되는 것이고 단군상을 톱으로 잘라라 하면 나가서 잘라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세뇌죠. 이러한 세뇌로 인해 모든 악행이 저질러지는 것이고 죄를 저질러 놓고도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뇌의 궁극적인 활동은 무수한 문제를 낳는 돈벌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라 하면 마찬가지로 그것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살피지 않고 1억짜리 천도재든, 200만원짜리 한약이 600만원으로 둔갑하든, 2천만원짜리 마스터 힐러든, 말도 안 되는 고가의 기상품이든, 암웨이 사업이든 그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들어보니 그러네요. 세뇌의 정신은 스승이고 물질은 돈이다. 말 되네요.”
“그런가요.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다 왔습니다. 대전이 이렇게 가까울 줄이야.”
지인은 서울로 돌아와서 진산과 헤어지고 바로 무술원 관장에게 연락했다.
“관장님. 차는 가져다 놓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갔던 일은 잘 됐니?”
“네. 이제 시작인데요.”
“어려운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하고 --”
“네. 그럼 월요일 날 뵙겠습니다.”
지인은 관장과 통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깨달음의 권력> 소설의 줄거리를 다시 잡아 나갔다. 그쯤 미국 세도나 관사에서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개천절 행사를 앞두고 의외의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