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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 19. 축사하시고 20. 먹고 남은 조각 21. 먹은 사람
마 14: 19. 축사하시고 -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
주께서는 무리를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
‘축사한다’는 원어(율로게오eujlogevw)는 ‘감사한다’는 뜻이다. 주께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음식물을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1]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눅 9: 14에 의하면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셨다고 하였고, 막 6: 40에 의하면 혹 백씩 혹 오십씩이라 하였다.
여기서 '앉았다'의 뜻인 '아나클리노'(*)는 물론 이스라엘인의 보통 식사 때의 자세와 마찬가지로 비스듬히 기대어 눕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신령한 이적을 행하시기에 앞서 그 이적에 참여하게 될 무리들에게 먼저 '순종'과 '질서'를 요구하셨다.
본문의 '잔디'에 관한 언급으로 보아 이때는 대략 3, 4월경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우기(雨期)가 막 끝나가는 2월 중순 무렵부터 빈 들에 잔디가 돋아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 요 6: 10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요한은 이때가 유월절(니산 월 14일)이 가까운 때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참고로 유월절 기간이 다한 이후는 잔디가 푸른 기운을 잃고 시들기 시작한다.
* 요 6: 4 -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2]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이 행동은 유대 가정에 있어서 가장(家長)이면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일이다.
* 롬 14: 6 -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 딤전 4: 5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탈무드(Talmud)에 의하면 '감사 없이 무엇을 즐기는 자는 하나님께 강도질하는 것과 같다'라고 할 정도로 감사의 일상화를 가르쳤다.
예수는 잔치를 주관하시는 주인이시며, 제자들은 시중꾼이며, 무리들은 잔치에 초대된 손님들이다.
'축사하다'의 뜻인 '유로게오'(εὐλογέω)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음식을 먹기 전에 하는 유대인들의 공통된 기도의 내용은 '땅으로부터 양식을 얻게 하시는 우주 만물의 왕이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감사하나이다'였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도의 내용 역시 그들 앞에 적은 양이나마 음식이 놓인 것에 대한 감사이지, 그 음식의 무한정한 증가를 간구한 기원에 집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평소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드리던 기도 그대로였을 것이다.
* 마 26: 26 -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 눅 24: 30 -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떡을 떼시며 그것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예수의 손이 기적의 근원지요, 기적이 일어난 현장이며, 떡을 떼시는 그 순간이 바로 그러한 기적이 발생한 시점(時點)이다.
예수가 행하시는 기적은 이상한 주문(呪文)이나 신기한 동작이 필요치 않는 일상적인 자연스런 행동 속에서 이루어졌다.
조각이 계속 불어나며 떡 덩어리가 없어지지 않는 이 기적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떡을 떼어'라는 이 단순한 한 마디의 말이다. 뗀 떡은 인류의 영적 생명을 위해 찢기올 생명의 떡이신 예수와 그분의 육체의 모형이라고 하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 요 6: 26-27 –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예수께서는 그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게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손으로 떡을 떼셨다.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께서는 우리의 육과 영의 양식을 위해서 여전히 떡을 떼어주신다.
4]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제자들은 언제나 예수의 사건을 다른 사람보다 더 가까이, 더 먼저 경험한 목격자들이며 그 목격한 사실들을 전달해 주는 증인들이다.
떡과 물고기가 전해지는 이러한 과정은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말씀이 먼저 복음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 세상에 전달되는 과정과 같다.
마 14: 20. 먹고 남은 조각 -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
그는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다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주님의 떡 기적은 겨우 배고픔을 면하는 정도가 아니고 무리에게 배부름을 주는 것이었다.
1] 다 배불리 먹고
겨우 목을 축이고 한 끼니를 때우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자신의 집을 찾아갈 기운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떡과 물고기가 배급(配給)되었다는 말이다.
특히 '배불리 먹었다'고 하는 말은 아마도 미래에 있을 메시야 왕국 잔치의 풍성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은 온 인류의 영적 양식이 되며 모든 죄인의 죄악을 모두 사(赦)할 수 있는 큰 사랑의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2] 남은 조각을
기름으로 빈 그릇을 채운 이적과 스무 개의 보리떡과 자루에 담은 채소로 100명을 먹인 엘리사의 기적과 신약에서 나오는 예수의 모든 기적들의 공통점은 '사용하고도 남았다'는 사실에 있다.
* 왕하 4: 1-7 – 과부의 기름 그릇 –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 왕하 4: 42-44 –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기적에서도 병자는 그 자신의 병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몸이 완전히 건강해지는 것을 체험한다. 이러한 차고 넘치도록 후히 주시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이다.
남은 조각들은 주님이 행하신 기적의 조각들이며 주님의 사랑의 파편(破片)들이다. 여기서 '남은 조각'은 단지 먹다가만 부스러기만을 의미하지 않고 예수께서 나눠주시기 위해 손으로 떼 놓은 조각까지를 포함한 말일 것이다.
3]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열두 제자가 각각 한 바구니씩 거둔 것이라 볼 수 있다.
남은 조각들은 열두 제자의 계속되는 식량이 되었을 것이다.
바구니를 뜻하는 헬라어 '코피노스'(*)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버들가지로 만든 음식 담는 그릇으로서 여행자들의 휴대용 주머니로 활용된 것이었다.
예수께서 4천 명을 먹인 이야기에 나오는 광주리는(15: 37) 헬라어 '스퓌리스'(*)로 이방인들이 물고기나 과일을 담는데 사용하는 갈대로 만든 광주리였다.
오천 명, 떡 다섯 개, 열 두 바구니 등의 5와 '12'라는 숫자는 '모세 오경'과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숫자로 이해된다.
이러한 점들은 많은 학자로부터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은 유대인에게, 4천 명을 먹인 기적은 이방인들에게, 예수가 생명이 됨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된 것이라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 14: 21. 먹은 사람 -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떡을 먹은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 외에 약 5천명이 되었다. 즉 장년 남자만 약 5천 명이었다.
원문에는 ‘약’(호세이wJsei;)이라는 말이 있다(KJV, NASB).
오늘날과 같이, 그 당시에도 많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거기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리는 만 명이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숫자이다. 그 많은 무리들이 그 저녁에 놀라운 떡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그들은 이 일에 산 증인들이었다.
1] 먹은 사람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1년 전인 유월절이 임박한 기간에 베풀어진 것으로 보인다.
* 요 6: 4 -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운집(雲集)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병이어 사건은 광야의 만나 사건(참조, 출 16 장)과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백 명을 먹인 사건(참조, 왕하 4: 42)을 연상시킨다.
2]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즉 장년 남자만 약 5천 명이었다. 원문에는 ‘약’(호세이 ὡσεί)이라는 말이 있다(KJV, NASB).
이때 모인 무리는 성인 남자만을 계수(計數)하는 유대인의 계산법에 따라 '오천 명'이었기 때문에 여자와 아이(*, 파이디온, 조그마한 아이란 뜻)까지를 합산하면 1만 5천 명에서 2만 명 정도로 추산(推算)된다.
예수의 공생애 중에 최대의 군중이 운집한 것이다.그 많은 무리들이 그 저녁에 놀라운 떡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그들은 이 일에 산 증인들이었다.본문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1)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한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 이상, 2만 명 이상을 먹인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우리는 어떻게 한 알의 씨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곡식을 만들어 내는지 그 이치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한 법칙에 따라 그렇게 된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신이시다.
* 욥 42: 2 -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예수께서 떡 기적을 행하신 것은 그가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으로 사셨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떡 기적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자.
(2) 떡 기적은 하나님께서 영육의 양식을 풍성히 공급해주실 수 있음을 증거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세계의 생물들을 기르시고 먹이시는 섭리자이시다.
* 시 104: 25-29 –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그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 마 6: 11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 마 6: 31-33 –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인 성경의 풍성한 교훈과 육신의 양식인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처할 곳을 주실 것이다.
3] 주님을 바라보자!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장된 권리요 특권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축복 받는 삶이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축복 받는 사역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당신이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 분명히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약속된 축복을 소유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문제를 분석하고 축복을 얻어내는 길을 생각해 보자.
(1)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복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15절)
* 갈 6: 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절망하여 축복을 미처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다. 본문의 제자들의 말처럼 그곳은 빈들이었다. 그리고 때는 이미 저물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한 절망 속에서도 그들은 축복의 주님을 모시고 있었음을 알아야 했다.
* 시 73: 28 -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주님은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당신과 함께하신다.
(2) 우리는 축복을 너무 먼 곳에서 찾고 있다. (15-16절)
제자들은 말하기를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라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명령하심으로 그들이 이미 축복의 씨를 소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바로 그것이 그들의 축복이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이 작게만 느껴지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주님은 그것들이 축복의 씨앗이라고 말씀하신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 남의 것과 자기 것을 비교하는 모든 일은 멀리서 축복을 찾는 행위다.
이미 주님은 당신의 삶 속에 축복을 숨겨 두셨다. 당신의 배우자, 아이들, 그리고 ......
(3) 주님의 손에 그것을 맡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18절)
주님께서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그것이 축복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우리의 손을 떠나 주님의 손에 붙들려야 한다. 돈도 시간도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포함한 의미다.
(4) 받은 작은 축복도 귀하게 여길 줄 모르기 때문이다. (20절)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본문의 말씀 속에서 주님은 먹고 남은 것들을 다 모으라고 하셨다. 이는 받은 축복을 아끼고 선용함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다.
사랑받는 주의 성도들이여! 아직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까? 이미 축복은 당신의 것이다. 축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손에 모든 것을 맡겨 드림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당신의 것으로 소유하시기를 축원한다.
4] 광야에 베풀어진 식탁
예수께서 많은 무리를 향해 벳새다 광야에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계시던 어느날이었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으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주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진 벳세다는 풍요함을 누리는 벌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여기서 영적인 풍성함 못지않게 육적인 풍성함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주님의 기적 베푸심에 의해 풍성한 식탁을 맞게 되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한다.
(1)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
① 기적이 일어난 곳
벳세다 광야로 불리우는 한적한 갈릴리 해변의 들판이었다. 우리는 이 기적적인 식사가 예루살렘 시내에서 혹은 부유한 자의 잔치집에서 일어나지 않았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곳은 음식을 구하기도 힘들고 인가조차 없는 황량한 광야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가장 어렵고 궁핍한 지경에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풍족한 채우심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② 식탁의 빈약한 메뉴
막상 저녁을 먹기 위해 모인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가진 것이라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소년이 가져온 도시락이었다.
실로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과 비교해서 얻어먹는 음식보다도 더 풍족하게 즐겁게 식사를 가졌으며, 남은 것만도 열두 바구니로 가득 차는 충분한 양이었다.
그들은 떡과 물고기로 주님과 더불어 풍성한 애찬식을 거행했다.
(2) 준비과정
① 어린이의 도시락
요리 전문가의 풍성한 식자재에 의한 잔치가 아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여분의 음식을 준비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세상의 사리도 분별할 수 없는 어린아이의 단출한 도시락이 전부였다.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지만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 없었다면 이 잔치는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었다.
② 무리를 앉게 했다.
이 기적을 체험하기 위하여 무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리를 정돈하고 음식을 나눌 수 있는 형태로 모여들어야 했다. 그들은 오십 명씩 혹은 백 명씩 그룹으로 떼지어 앉았다.
그들의 기대어 누운 모습들(유대인들이 음식 먹는 자세)은 잔디 위에 떼지어 앉은 양들과도 같았다. 우리는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주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아무데서나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으키시지 않는다. 만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오히려 그러한 축복을 감당치 못함으로 기적의 의미가 없어질 뿐이다.
우리는 그의 사역이 우리의 사역이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관련되어지고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철저한 신앙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적 태도와 생활 습관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파급되는 영적 갈급함을 채우고자 하는 준비다. 주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당신의 의로 먹이시며 그의 공의로 마시우게 할 것이다.
③ 주님의 축복기도(축사)
주님은 음식을 손에 들고 기도하셨다.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드린 기도는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이제 눈 앞에 일어나게 될 실질적인 '떡의 증가', '물고기의 증가'가 단순한 마술적 신비를 통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게 하셨다.
또한 그들이 날마다 대하는 식탁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는 것임을 가르쳐서 진정한 생활의 감사가 있게 하려는데 있었다.
주님은 갈보리 십자가 고난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④ 제자에게 떼어주심
보리떡과 물고기는 주님의 손으로부터 열두 제자에게로 떼어주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큰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⑤ 제자들이 무리에게 분배하였다.
이것은 복음의 동역자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산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주께서는 그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환상이나 기적같은 도구를 통해 역사하실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신실한 일꾼들의 손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생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은 바로 주님이 떼어주신 떡과 물고기를 많은 이웃에게 나누어줄 동력자다. 그러므로 동역자들은 먼저 주님이 주신 복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에게도 나눠줄 수 없고 자기도 먹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원천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고 그에게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다.
(3) 풍성한 광야의 식탁
① 그들은 풍족히 받았다.
아무도 모자라지 않았다. 이처럼 예수께로 와서 복음을 받는 모든 자는 결코 주리지 않는다.
* 시 37: 18-20 – 18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따라서 복음을 받고서도 여전히 기갈을 느낀 채 머물러 있다면 그는 복음의 진수를 받은 것이 아닐 것이다.
② 먹은 자마다 풍족했다.
시장기를 느끼던 무리들은 전부 만족한 식사에 기뻐했으며 주님을 모신 대잔치를 기뻐했다.
그러므로 먹지 않은 자는 결코 음식의 풍족함을 누릴 수 없다.
오늘날도 복음을 받은 자들은 찬송할 수 있고, 평강을 누리게 되며, 풍족하지만, 받지 않는 자들은 여전히 주릴 수밖에 없다.
③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도시락 주머니가 광주리로 변화되었음을 상기하자.
여러분의 작은 희생은 천국의 축복으로 돌아올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헤롯과 헤로디아의 악행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 중에 음행하거나 간음하는 자,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은 모든 죄를 버리기를 결심하고 예수님의 의만 의지하고 작은 실수라도 행치 않도록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에 따라 의와 선만 행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사람의 생애가 하나님의 작정대로 됨을 알아야 한다.
세례 요한은 옥에서 순교하였다.
모두가 다 순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순교로 생을 마치는 자도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작정하셨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를 소망하며 오직 믿음과 계명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셋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 이상 먹이신 예수께서는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한 알의 씨가 썩어 수천 혹은 수만 개의 곡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만 아시는 신비한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신이시다.
* 욥 42: 2-3 –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떡 기적은 그의 신성(神性), 즉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한다.
넷째, 떡 기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풍성히 공급해주실 수 있음을 증언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을 기르시고 먹이시는 섭리자이다.
* 시 104: 25-29 –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도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 마 6: 11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주의 문제를 염려하지 말고, 단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과 교훈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 마 6: 33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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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이 일에 산 증인들이었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이 일에 산 증인들이었다.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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