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될까요
김찬옥
늙은 악사의 아코디언에서도 봄은 펼쳐질 수 있다지요
해빙기도 아닌데, 내 안에선 쩍쩍 금이 가는 소리 들리더니
그 사이로 이름 모를 새들이 숨어들어 둥지를 틀었나 봅니다
‘머리~ 어깨~ 무릎~ 팔~ 무릎~ 팔~ 무릎~~~ ’
이건 천사가 엄마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불러드린 노래 맞죠?
먼 옛날 미지의 천사는 약장수의 마법이나 찾아 떠돌고
몇 거플의 속웃음을 열어젖히던 엄마는 삭아 흙으로 변신한 지금
내 속에는 낮과 밤도 구분하지 못하는 멍텅구리 새들만 살지요
천정에 새겨놓은 별자리도 조율하지 못해
밤은 저 혼자 흐르고, 검은 물살 위로 징검다리 건너듯 잠을 건너면
머리- 어깨- 허리- 무릎--- 모든 관절에서 새들이 격도 없이 울어대요
한때는 나도 파랑새가 되어, 엄마가 품은 허공이
통통 튀도록 초록을 노래할 때가 있었지요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혀가 붉다는 것은
아직은 봄을 엿볼 수 있는 유통기한이 남아있다는 거겠지요
새들의 앙칼진 발톱에 붉은 머큐룸이라도 발라줄까 봅니다
떨림을 잃어버린 일기장엔 먼지만 수북하게 쌓이고
병상일지도 안 되는, 어쩌다 희망 소문이나 채집하는
캐도 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나는 안달박사
음을 이탈한 잠이 몽유병 환자처럼 문밖을 서성이다 보면
조간신문을 뒤적이듯 비몽사몽 새로운 홍보를 찾기 마련,
목 좋은 곳에 스타벅스가 들어서듯
도심 속 여기저기에 황톳길이 들어서고 있다네요
입과 입으로 번지는 속도는 빛과도 같아
과학을 증명하듯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옆에 들어선 길
이 광고가 선거철 벽보가 아니라서 참 다행입니다
가도가도 황톳길. 전라도 가는 황톳길
발가락을 하나씩 뭉텅 베어 먹는 소륵도 가는 길 말구요
이 길은 엄마의 손길, 약사암 가는 길 맞죠?
생의 가장자리에 야생화처럼 피어난 황톳길!
바닥과 바닥이 만나 접지를 하면 진짜 사랑이 될까요
어둠의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엄마의 선물을 길 위에 꺼내 놓아요
가장 낮은 곳에서 내 밑바닥 환부를 혀로 핥아주는 황톳길 위에
최선의 바닥과 최후의 바닥, 한동안은 불꽃이 튀겠지요
난 발정 난 수컷처럼 황톳길에 빨대를 꽂고 길을 뼛속 깊이 빨아올려요
마치 겨울 산을 끌고 내려온 발톱에 불을 켠 승냥이처럼,
메타쉐콰이어 숲 그늘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번져와요
‘사랑도 체하는 거란다 급할수록 싸목싸목 가거라’
복사꽃처럼 피어난 안산 산복도로 황톳길 위를
하얀 뭉개구름 한 켤레 사뿐 아주 사뿐히 걸어 보아요
----애지 가을호에서
김찬옥 전북 부안 출생
96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벚꽃 고양이』『웃음을 굽는 빵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