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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분망식(發憤忘食)
화를 푸느라 밥을 잊는다는 뜻으로,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분발 노력한다는 말이다.
發 : 필 발(癶/7)
憤 : 분할 분(忄/12)
忘 : 잊을 망(心/3)
食 : 밥 식(食/0)
한 가지 일을 연구하는데 집중하여 끼니를 챙겨 먹는 것조차 잊는다. 훌륭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마다 집념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옛날 중국의 우공(愚公)이란 90세 되는 노인이 마을을 가로막은 태형산(太形山)과 왕옥산(王屋山)을 몇 대에 걸쳐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이야기는 중단하지 않는 노력의 결과다.
또 원수를 잊지 않기 위해 장작을 쌓은 섶 위에서 자고, 쓰디쓴 곰의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날을 벼른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는 집념의 화신이었다.
이렇게 보면 끼니를 거르는 정도는 약과이겠다. 마음과 힘을 다해 어떤 일에 열중하느라(發憤) 식사도 잊는다(忘食)는 이 성어는 공자(孔子)를 가리켜 한 말이다.
이 이야기는 논어(論語)의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의 심제량(沈諸梁)이란 사람은 섭(葉) 지방을 영유하고 있어서 섭공(葉公)이라 불렸다.
용을 좋아하여 집안의 벽과 기둥뿐만 아니라 가구 등에도 그려 두었지만 실제 용이 나타나자 혼비백산 했다는 섭공호룡(葉公好龍)의 주인공 그 사람이다.
이 섭공이 하루는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스승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자로는 공자의 인품이 보통 사람과는 달리 탁월했기에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렸다.
후일 이 사실을 들은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 그 사람됨이, 무엇을 알려고 애쓸 때에는 먹는 것도 잊고, 알고 나면 즐거워서 근심을 잊어버리며, 늙어가는 것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사기(史記)의 공자세가에도 같은 말로 공자를 평가한다. '도를 배우되 싫증내지 않고, 사람을 깨우쳐주는 일을 싫어하지 않으며, 어떤 일에 열중할 때는 끼니도 잊는다.'
學道不倦 誨人不厭 發憤忘食.
목표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을 때 주위 여건을 탓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 앞서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먼저 돌아볼 일이다. 노력한다고 끼니까지 잊을 정도로 몰두하면 건강을 해칠 것이므로 이 성어는 그에 맞먹을 정도로 분발하라는 뜻이겠다.
발분망식(發憤忘食)
분발하여 무엇을 하는데 끼니조차 잊는다는 말로, 무엇에 열중하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 성어는 분발(奮發)하여 끼니를 챙겨 밥을 먹는 것조차 잊다, 즉 끼니까지도 잊을 정도로 어떤 일에 열중하여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논어 전편을 통해 학문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공자는 학습자로서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스스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학습의 기쁨을 자주 언급해 왔다.
이 같은 학문에 대한 공자의 태도를 종합해 볼 때 공자야말로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였다고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그러면 공자(孔子)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어느 정도였을까.
공자 시절 초(楚)나라 대부인 섭공(葉公)이 자로(子路)에게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는데 자로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말을 듣고서 공자는 자신의 이야기라서 겸연쩍은 일이지만 자로에게 이렇게 설명을 할 수는 없었느냐고 얘기해 준다.
發憤忘食 樂以忘憂.
즉 선생님은 배움을 좋아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면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배움을 통해 알게되면 그 즐거움으로 인해 근심조차 잊을 버릴 정도입니다.
학문에 임할 때의 공자는 발분망식(發憤忘食)하고 낙이망우(樂以忘憂)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신있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발분망식(發憤忘食) 앞에 학도불권 회인부염 (學道不倦 誨人部厭) 즉, 도를 배우되 싫증내지 않고, 사람을 깨우쳐 주되 마다하지 않는다는 두 구(句)가 덧붙어 있다.
발분망식(發憤忘食)
발분망식 이 성어는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공자 말씀이다.
어느 날 초(楚)나라 섭현(葉縣)의 장관(長官) 심제량(沈諸梁; 보통 섭공이라 부름)이 하루는 공자의 제자 자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대의 스승 공자(孔子)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자로는 이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공자의 인품이 너무도 위대하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옳은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질문의 취지가 엉뚱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언뜻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사실을 나중에 들은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다. “너는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됨은 학문에 발분(發憤)하면 끼니도 잊고, 도를 즐겨 근심과 걱정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고 있는데도 그런 것을 모르고 있는 그런 인물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였다.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발분망식(發憤忘食)은 공자가 학문을 몹시 좋아함을 말한다. 문제를 발견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뜻을 두는 것이 발분(發憤)이다 발분망식은 끼니를 잊을 정도로 학문에 몰두하는 것을 뜻하는데, 한 가지 일에 온 정신이 쏠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구도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태도는 선택과 집중에서 생기는 놀라운 결단력과 집중력의 산물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발분망식(發憤忘食)하고 낙이망우(樂以忘憂)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공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한다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기쁨으로서 근심을 잊어버리는 방법도 참으로 차원이 높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문제에 집중하면 문제에 빠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대신에 근심과 걱정도 오히려 즐거움을 통해 잊어버릴 수 있다는 공자의 삶의 지혜와 슬기에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늙지 않는 비결도 덤으로 가르쳐 준다. 공자가 73세까지 살았으니 2500년전의 의료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장수(長壽)를 누린 셈이다. 장수의 비결이 발분망식(發憤忘食)과 낙이망우(樂以忘憂)라 할 수 있으니 이 비결을 웰빙의 수단으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첼로의 성자(聖子)로 불리는 스페인의 파블로 카잘스는 96세로 죽는 날까지 평생 매일같이 일과처럼 첼로를 연습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95세가 되던 어느 날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 인상적이다.
기자왈 “선생님께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입니다. 그런 데 아직도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내 연주 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오.”
무슨일을 하든 그것이 가치있는 일이라면 그 성공의 척도로 발분망식(發憤忘食)과 낙이망우(樂以忘憂)를 제시해 보고 싶다. 이 경지에 이르면 혹독한 날씨도 아름다운 장식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공자가 가르쳐 준 발분망식(發憤忘食)과 낙이망우(樂以忘憂)의 측면에서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또한 우리가 무슨일에 몰입한다는 말이 있다. 몰입의 근원은 알 수 없지만, 밥 먹는 것도 잊은 체 내가 하는 일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일에 중독된 것과 몰입은 개념이 다르다고 본다.
아침형 인간은 일에 중독된 것이지 몰입은 아니다. 아침형 인간은 수동적으로 몰입되어 습관화 되면서 일에 중독된 것이다. 회사원들은 상사가 잠이 없어 일찍 회사에 출근하니, 출세하기 위해서는 상사보다 먼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몰입형 인간은 세종(世宗) 이도(李祹)와 같은 사람입니다. 눈에 종기가 낫는데도 책을 백번보고, 또 보고, 해서 결국 문제점을 발견하여 창조적 국가경영을 했다.
공자가 말씀하신 발분망식(發憤忘食)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인(仁)을 동반한 몰입이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고, 근심도 잊은 채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도자기의 명인이 도자기를 굽기 위해 “나, 명도자기 만들기 위해서 몰입한다.”고 하지 않는다.
초(楚)나라 때 간장(干將)과 막야(莫耶)가 명검(名劍)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그들이 바라는 명검이 만들어 지지 않자, 아내인 막야가 정성이 부족하다며 쇳물 속으로 들어가 그때서야 제대로 된 명검이 되었다는 전설처럼, 몰입 즉 발분망식(發憤忘食)은 쇳물을 녹이기 위하여 불속으로 뛰쳐 들어간 간장의 아내 막야와 같은 자세일 것이다.
몰입이 무엇이지도 모르고 아침형 인간을 따라하는 피동형(被動形) 몰입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진정한 몰입은 명령해서 몰입하는 것이 아니고, 몰입하지 않음을 부끄럽게 만들어, 진심으로 몰입시키는 정신과 지도자의 철학이다.
기업은 아침형 인간이 맞을 수 있지만, 국가경영은 아침형 인간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이 아니고, 국가경영에 대한 철학, 또는 편히 인생을 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많다.
그러하기에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하고 고차원적으로 접근해야 그들은 몰입한다. 진정으로 그들이 몰입하면 지도자는 발분(發憤)하지 않아도 존경을 받고, 세종(世宗)처럼 오래 기억될 것이다.
발분망식(發憤忘食)
화를 푸느라 밥을 잊다
우리는 밥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누구라도 대뜸 “밥 먹고 합시다”라고 외친다. 이어서 “그래,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 먹고 계속합시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일보다 밥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을 하다가도 걸핏하면 음식 타령을 하는 사람을 두고 ‘밥보’라고 부른다.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음식을 너무 밝히기 때문이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우리가 즐겨 찾는 산림도 사람에게 편안한 안식처이겠지만 동식물에게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식물은 더 많은 햇빛을 받으려고 빨리 자라는 경쟁을 벌이고, 동물은 먹이사슬에 따라 치열하게 움직인다.
사람은 자발적으로 단식을 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가령 아이가 고가의 장난감을, 청소년이 신종 스마트폰을 손에 넣기 위해 떼쓰며 단식을 하기도 한다.
공자도 밥을 잊는 단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그는 무엇 때문에 단식을 했을까?
1. 논어 술이(述而)편
(18章-1)
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묻자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18章-2)
子曰 :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그러자 공자 말씀하시기를, '자네 왜 말하지 않았는고 이렇게 말할것이지. 그의 사람됨은 학문에 발분하면 식사를 잊고 학문을 즐김에걱정을 잊으며 늙어가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19章)
子曰 :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공자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면서 부터 저절로 아는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된자다'라 하였다.
• 葉 : 나뭇잎을 뜻하면 ‘엽’으로 읽고, 사람의 성씨를 나타내면 ‘섭’으로 읽는다. 전자는 엽서(葉書)로 쓰이고, 후자는 송나라의 유명한 사상가로 섭적(葉適)이 있다. 섭공(葉公)은 초나라 정치가이자 군사전문가이다. 그가 당시 섭(오늘날 허난성 지역)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섭공’으로 불리었던 것이다.
• 於 : 어(於)는 장소, 비교, 목적을 나타내는 개사(介詞)로 우리말의 조사에 해당된다. 별도의 뜻은 없지만 기능에 따라 ~을(를), ~보다, ~에게 등의 맥락으로 쓰인다.
• 對 : 대(對)는 상대, 짝의 명사로 쓰이고, 대답하다의 동사로 쓰인다.
• 奚 : 해(奚)는 어찌, 어느, 무엇을 뜻한다.
• 忘 : 망(忘)은 잊다, 저버리다의 뜻이다.
• 憂 : 우(憂)는 근심하다, 걱정하다, 상(喪)을 뜻한다.
• 老 : 노(老)는 늙다, 나이 들다, 쇠하다의 뜻이다. 여기서 나이가 점점 들어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는 맥락으로 늙음, 노화, 황혼을 나타낸다.
• 至 : 지(至)는 이르다, 다다르다, 미치다의 뜻이다.
2.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공자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란 말로 자신을 표현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면 밥때도 잊고 몰두하며, 문제를 해결한 즐거움에 압도되어 지금 자신이 어떤 집안 일로 근심 걱정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조국 노(魯)나라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의 뜻을 펼칠 만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공자는 정치적으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풍부한 학식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명망을 얻었다. 때때로 공자를 찾아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섭공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섭공은 공자를 만나기 전에 자로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전 정보를 파악하려고 했다. 평소 공자에게도 대드는 자로였지만 스승에 대한 평가는 주저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서 공자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오늘날 말로 하면 공자가 ‘자소서’를 쓴 셈이다.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 將至云爾.
16글자를 되풀이해서 읽으면 한 편의 동영상을 보는 듯하다. 공부를 하다가 문제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공자는 “밥 먹고 합시다”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풀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냈다. 공자는 그 화에 지배되지 않고 오히려 그 화를 이끌어 문제를 계속 붙잡고 있다. 답을 찾을 때까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밥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답을 찾고 나면 허기가 한꺼번에 밀려올 만하다. 하지만 공자는 허기보다도 즐거움에 압도되어 지금 자신이 어떤 집안 일로 근심 걱정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생활의 고통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즐거움의 크기가 근심의 크기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그 결과 공자는 두 개의 세계에 살게 된다. 하나는 아내가 바가지를 긁고 아이의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일상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알고자 하는 진리를 찾느라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즐거움의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의 무게가 짓눌려오는 노년의 고통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공자의 자기 소개서는 한마디로 하면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I am still hungry).”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찾은 것에 만족하지 않았기에 고픈 배를 참아가며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은 평가전이나 A매치 경기에서 이기고도 늘 “아직 배가 고프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계속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그렇게 표현하고 결국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몇 번의 승리에 배가 불러서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월드컵 조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3. 창작의 동기는?
공자가 훗날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논어'라는 책만큼 영향을 준 것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자가 쓴 자기 소개서에 담긴 16글자 중 ‘발문망식(發憤忘食)’이다.
오늘날 대학의 인문학이 낮은 취업률로 인해 이곳저곳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외면을 받기도 한다. 공자와 그 후학들이 활동하던 시절도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공자가 자신의 후계자로 가장 아꼈던 제자 안연은 40세 전후로 일찍 죽었다. 그의 요절은 인문학을 하는 사람의 운명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분망식이 왜 그렇게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까? 공자 후학들은 가난한 삶과 어려운 환경을 맞이하며 발분망식(發憤忘食)에서 저술과 창작의 동기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이 녹록치 않다고 해서 “나는 안 돼!”라며 좌절하지 않고 “내가 왜 못해!”라는 결기를 낼 수 있다. 지금 당장 좋은 작품을 써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최근 '미생' 만화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윤태호 작가는 방송에 출연해서 20억을 벌어 빚 갚는 데에 썼다는 이야기를 했다. 윤태호 작가는 '미생'을 그리면서 오랜 시간 동안 별다른 벌이가 없어 부인이 생활비를 처갓집에서 빌어서 생활했다.
시청자들은 20억의 엄청난 금액에 주목할지 모르지만 만화가는 좋은 작품을 그려야겠다는 일념으로 기나긴 시간을 오로지 버텨냈다. 그 일념도 좋은 만화를 향한 발분망식에서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 사후에 그의 발분망식에 가장 크게 공감했던 사람으로 사마천(司馬遷)이 있다. 사마천은 흉노족과 전투에서 패했던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한 무제(武帝)에게 무고(誣告)를 했다는 혐의를 받아 궁형을 당했다.
거세를 당하고 환관이 된 사마천은 인간적 모멸로 몸서리를 치며 “죽느냐 사느냐”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붙였다가 살기로 결심하며 지난 날 고통 속에 살았던 인물을 생각했다.
주문왕(周文王)은 감옥에 갇혀서 '주역'을 썼고, 공자는 진(陳)과 채(蔡) 지역에서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으며 '춘추'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은 눈을 잃고서 '국어(國語)'를 지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사마천은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자신이 받은 고통에 아파만 할 것이 아니라 주문왕, 공자, 좌구명의 길에 따라 승화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그의 고통은 치욕에 그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사기'를 ‘발분지서(發憤之書)’라고도 말한다.
이들은 모두 하고자 하는 뜻에 막히고 맺힌 바가 있어서 자신의 길을 펼칠 수 없었다. 따라서 지난날의 일을 풀이하여 다음 세대에게 생각을 펴 보이려고 했다. 此人皆意有所鬱結, 不得通其道, 故述往事, 思來者.
(보임안서 報任安書)
공자는 훗날 사마천과 같은 궁형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며 자신이 찾아낸 평화의 길을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달갑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이 고립은 사마천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비할 수 없지만 그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 자신의 생각을 허무하게 만드는 고통을 주었다.
아마 자신을 찾아오는 제자가 없었더라면 공자는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제자들과 좋은 세상의 그림을 그리고 그를 위한 방도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가 단어로 문장으로 변해서 '논어'가 탄생했다. 사마천도 궁형 이후 꽁꽁 맺힌 한과 똘똘 뭉친 심사를 글로 풀어내서 '사기'를 써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와 사마천은 울분이 창작의 동기라는 점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 되었다.
4. 줄탁동시(咄啄同時)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려면 자신의 약한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야 하지만 그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밖에서도 쪼아야 한다. 새끼가 안에는 쪼는 것을 ‘줄(咄)’이라 하고 어미가 밖에 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려면 자신의 약한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야 하지만 그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밖에서도 쪼아야 한다.
새끼가 안에는 쪼는 것을 ‘줄(咄)’이라 하고 어미가 밖에 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줄과 탁이 같은 시간에 일어날 때 병아리는 두꺼운 껍질을 뚫고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공자가 아무리 학식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혼자였더라면 기나긴 시간의 고통을 견뎌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의 주위에는 자신을 찾아와서 인문의 가치를 공감하고 인문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논어'에 나오는 토론의 마당이 펼쳐질 수 있었다.
공자는 이 마당에서 거니는 기쁨을 이렇게 읊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鄰).'
(논어 이인편 25장)
즉 보이는 옆이든 보이지 않는 먼 곳이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공자는 느꼈고, 이 느낌은 그가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공자와 제자의 관계도 줄탁동시의 사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줄탁동시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발분망식을 한 다음에 사람을 계속 끌어갈 수 있는 힘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 제자 중염옹(冉雍; 자는 중궁仲弓)은 출신이 나빠서 그걸 핸디캡으로 여겼다. 공자는 중궁을 얼룩소에 비유한 적이 있다.
털빛이 붉고 뿔이 가지런하더라도 얼룩소 새끼라면, 제관이 그 녀석을 제물로 쓰려고 하지 않겠지만, 산과 강의 귀신이야 어찌 그 녀석을 내버려 두겠느냐(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
(논어 옹야편 6장)
소가 제물로 쓰이려면 색깔, 생김새, 영양 상태 등 다양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얼룩소는 조건을 다 갖춰도 제물이 될 수가 없다. 얼룩소 자체가 결격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는 산천의 귀신이 조건을 다 갖춘 제물을 흠향(歆饗)하리라고 보았다.
이 이야기는 중궁의 태생을 얼룩소에 견준 비유이다. 중궁의 신분이 변변찮아서 누구도 눈여겨 보려고 하지 않았다. 공자의 눈에는 중궁의 신분이 들어오지 않고 그의 인품과 열정이 들어왔다.
공자와 중궁의 관계도 줄탁동시에 해당된다. 공자가 있기에 중궁은 인문학을 배우고 싶고 힘들지만 살려는 의지를 돋을 수 있다. 아무도 중궁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공자는 그를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알아준다는 것은 매달릴 절벽에서 손을 내미는 것과 같았다. 중궁과 공자는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넘어서는 세기의 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이런 친구를 만난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다.
세상에는 우정 이야기가 큰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없다. 내가 아플 때 위로하고, 내가 쓰러질 때 손잡아주고, 내가 외로울 때 이야기 들어주며 내가 기쁠 때 함께 떠들어주는 친구야말로 어둠에 있는 나에게 앞길을 비춰주는 등불과 같다.
거꾸로 이런 친구와 우정을 계속 나누려면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발분망식해야 한다. 발분망식(發憤忘食)과 줄탁동시(咄啄同時)는 나와 친구가 오래 함께 길을 걸어가게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 發(필 발)은 ❶형성문자로 発(발)의 본자(本字), 发(발)은 간자(簡字), 彂(발)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필발머리(癶; 걷다, 가다)部와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殳(몽둥이 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필발머리(癶)部는 발을 좌우(左右)로 벌리다에서 벌리는 일, 弓(궁)과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殳(수)는 치는 일, 음(音)을 나타내는 癹(짓밟을 발)은 나중에 풀을 밟아 죽이는 것이라고 일컬어지지만, 본디는 물건을 치거나 튀기거나 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發자는 ‘피다’나 ‘쏘다’, ‘드러나다’, ‘밝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發자는 癶(등질 발)자와 弓(활 궁)자, 殳(창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發자의 갑골문을 보면 癶자와 又(또 우)자, 矢(화살 시)자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도망가는 사람을 향해 화살을 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發자의 본래 의미는 ‘쏘다’나 ‘발사하다’였다. 그러나 금문에서부터는 矢자가 弓자로 바뀌었고, 소전에서는 又자가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의 殳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의 發자는 활과 몽둥이를 들고 누군가를 뒤쫓아 가는 모습이 되었다. 發자는 본래 화살을 쏜다는 뜻이었지만 누군가를 추격하기 위해 발자국을 따라가는 모습에서 ‘나타나다’, ‘들추다’, ‘밝히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發(발)은 (1)차, 배, 비행기 따위의 출발을 나타내는 접미어 (2)지명(地名)이나 날짜를 나타내는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전신(電信), 전화(電話) 등의 발신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피다 ②쏘다 ③일어나다 ④떠나다 ⑤나타나다 ⑥드러내다 ⑦밝히다 ⑧들추다 ⑨계발하다 ⑩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⑪빠른 발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쏠 사(射), 펼 전(展), 세울 건(建), 창성할 창(昌), 우거질 번(蕃), 성할 성(盛), 설 립/입(立), 세울 수(竪), 일어날 기(起), 일 흥(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붙을 착(着)이다. 용례로는 법령을 공포하거나 명령을 내림을 발령(發令), 증서나 영장 따위를 발행하는 것을 발부(發付), 소식이나 우편이나 전신 등을 보내는 것을 발신(發信), 채권이나 승차권 따위를 발행함을 발권(發券), 움직이기 시작함을 발동(發動), 마음과 힘을 떨쳐 일으킴을 발분(發奮), 총포나 활 따위를 쏨을 발사(發射), 한 상태로부터 더 잘 되고 좋아지는 상태로 일이 옮아가는 과정을 발전(發展), 어떤 일을 생각해 내는 것 또는 그 생각을 발상(發想), 무슨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냄을 발심(發心), 의견을 내놓음이나 무엇을 생각해 냄을 발의(發意), 땅 속에 묻힌 물건을 파냄을 발굴(發掘), 미개지를 개척하여 발전시킴을 개발(開發), 숨겨진 물건을 들추어 냄을 적발(摘發), 길을 떠남 또는 일을 시작하여 나감을 출발(出發), 일이 자주 일어남을 빈발(頻發), 불이 일어나며 갑작스럽게 터짐을 폭발(爆發),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처벌을 요구하는 행위를 고발(告發), 액체나 고체가 그 표면에서 기화함을 증발(蒸發), 정당하지 못한 일이나 숨기고 있는 일을 들추어 냄을 발간적복(發奸摘伏), 죄나 잘못 따위가 없음을 말하여 밝힐 길이 없음을 발명무로(發明無路), 장차 운이 트일 땅이라는 뜻으로 좋은 묏자리를 이르는 말로 발복지지(發福之地), 강성해지기 위하여 분발하다는 뜻으로 개인이나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분발하는 것을 발분도강(發憤圖强),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분발 노력함을 발분망식(發憤忘食), 사냥개를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가리켜 잡게 한다는 발종지시(發踪指示) 등에 쓰인다.
▶️ 憤(분할 분)은 ❶형성문자로 愤(분)은 간자(簡字)이다.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솟아 오른다는 뜻을 가진 賁(분)으로 이루어졌다. 마음 속에 뭉쳐 있는 것이 일시(一時)에 솟아 오른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憤자는 '분하다'나 '성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憤자는 心(마음 심)자와 賁(클 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賁자는 큰북을 그린 것으로 ‘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賁자에는 '끓어 오르다'나 '성내다'라는 뜻도 있는데, 예전에는 전쟁을 치르기 전에 북소리를 울려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었기 때문이다. 憤자는 이렇게 ‘끓어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賁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북소리를 들은 병사들의 사기와 분노가 극에 달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憤(분)은 분(忿). 분심(忿心). 분기(憤氣)의 뜻으로 ①분하다, 원통하다 ②성내다, 분노하다 ③번민하다, 괴로워하다 ④어지러워지다, 어지럽히다 ⑤힘쓰다, 분발하다(마음과 힘을 다하여 떨쳐 일어나다) ⑥왕성하다, 가득 차다 ⑦분노(憤怒) ⑧분(憤), 분한 마음 ⑨원한(怨恨)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슬퍼할 개(慨)이다. 용례로는 분하여 성을 냄을 분노(憤怒), 몹시 분하게 여김을 분개(憤慨), 성을 벌컥 낸 마음으로 분한 마음을 분심(憤心), 몹시 분하여 마음이 아픔을 분통(憤痛), 분한 생각이나 기운을 분기(憤氣), 몹시 분하여 성냄을 분격(憤激), 분한 마음이 치밀어서 속이 답답함을 분울(憤鬱), 벌컥 성을 내면서 분해 하고 있음을 분연(憤然), 일을 그르쳐 패함이나 분하게 짐을 분패(憤敗), 분에 못 이겨 죽음을 분사(憤死), 분하고 한스러움을 분한(憤恨), 분해 하며 부끄러워 함을 분괴(憤愧), 분하여 일어나는 독한 기운을 분독(憤毒), 마음과 기운을 가다듬어 힘씀을 분려(憤勵), 몹시 분하고 억울하게 여기어 한탄함을 상분(傷憤), 분한 일을 겪은 뒤 아직 가라앉지 않는 분기를 여분(餘憤), 분한 마음을 품음을 함분(含憤), 강퍅하게 분노함 또는 그런 분노를 강분(剛憤), 앙심을 품고 분개함을 앙분(怏憤), 공적인 일에 대하여 느껴지는 분개심을 공분(公憤), 몹시 분개함을 격분(激憤), 가슴에 가득히 쌓여 있는 분기를 울분(鬱憤), 원통하고 분함을 통분(痛憤), 의를 위하여 일어나는 분노를 의분(義憤), 홀로 분개함을 고분(孤憤), 몹시 분개함을 개분(愾憤), 한탄하고 분개함을 한분(恨憤), 부끄럽고 분함을 참분(慙憤), 분함을 느낌을 감분(感憤), 마음속에 품은 분기를 내분(內憤),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이 북받쳐 오름을 이르는 말을 분기충천(憤氣衝天), 신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분노할 만큼 증오스럽거나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신인공분(神人共憤),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분발 노력함을 이르는 말을 발분망식(發憤忘食), 마음속 깊이 분하고 한스러움을 일컫는 말을 각골분한(刻骨憤恨), 슬프고 분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음을 이르는 말을 비분강개(悲憤慷慨) 등에 쓰인다.
▶️ 忘(잊을 망)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 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亡(망; 숨다, 없어지다)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忘자는 ‘잊다’나 ‘상실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忘자는 亡(망할 망)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亡자는 날이 부러진 칼을 그린 것으로 ‘망하다’나 ‘잃다’, ‘없어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없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亡자에 心(마음 심)자를 결합한 忘자는 ‘마음을 없애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잊으라는 뜻이다. 忘자를 보니 ‘미망인’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하지만 미망인은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未忘人(미망인)이 아니라 ‘아직 따라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의 未亡人(미망인)이다. 그래서 忘(망)은 주의하는 마음이 없어지다, 잊다는 뜻으로 ①잊다, 기억(記憶)하지 못하다 ②버리다, 돌보지 않다 ③끝나다, 단절되다 ④소홀(疏忽)히 하다 ⑤망령되다 ⑥상실하다, 잃어버리다 ⑦없다 ⑧건망증(健忘症)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사실을 잊어 버림을 망각(忘却) 또는 망실(忘失), 집안을 망치는 못된 언동을 망덕(忘德), 은혜를 잊음을 망은(忘恩), 잊어 버림을 망기(忘棄), 나이를 잊음을 망년(忘年), 근심을 잊는 일을 망우(忘憂), 보고 듣는 것을 자꾸만 잊어 버림을 건망(健忘),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잊지 아니함을 불망(不忘), 잊지 않게 하려는 준비를 비망(備忘), 기억에서 사라짐을 소망(消忘), 잊을 수가 없음을 미망(未忘), 정신이 흐려 잘 보이지 않음을 혼망(昏忘),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 버리는 경지를 망아지경(忘我之境),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함을 망은배의(忘恩背義), 자신과 집안의 일을 잊는다는 망신망가(忘身忘家),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을 망우지물(忘憂之物), 나이 차이를 잊고 허물없이 서로 사귐을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교제하는 벗을 망년지우(忘年之友) 등에 쓰인다.
▶️ 食(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은 ❶회의문자로 饣(식)은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 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 먹을 것, 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썼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食자는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饣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食(식)은 ①밥 ②음식 ③제사 ④벌이 ⑤생활 ⑥생계 ⑦먹다 ⑧먹이다 ⑨현혹케하다 ⑩지우다 그리고 ⓐ먹이, 밥(사) ⓑ기르다(사) ⓒ먹이다(사) ⓓ양육하다(사) ⓔ사람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음식을 청해 먹은 값으로 치르는 돈을 식대(食代), 부엌에서 쓰는 칼을 식도(食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일을 식사(食事),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음식점이나 식당에서 먹을 음식과 바꾸는 표를 식권(食券), 밥을 먹기 전을 식전(食前), 식사를 마친 뒤를 식후(食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식기(食器), 음식만을 먹는 방 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을 식당(食堂), 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을 식겁(食怯), 음식에 대하여 싫어하고 좋아하는 성미를 식성(食性), 음식(飮食)을 만드는 재료를 식료(食料), 남의 집에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식모(食母), 음식(飮食)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을 식욕(食慾),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식언(食言), 각종 식품을 파는 가게를 식품점(食品店), 음식을 먹은 뒤에 몸이 느른하고 정신이 피곤하며 자꾸 졸음이 오는 증세를 식곤증(食困症),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식갈역진(食竭力盡), 식객이 삼천 명이라는 뜻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음을 식객삼천(食客三千), 나라의 녹을 받아먹음을 식국지록(食國之祿), 근심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을 식불이미(食不二味),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식이위천(食以爲天)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