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는 모든 것이 고맙다
아침에 눈을 떠 천장을 보니 고맙다. 침대에서 잘 내려온 것이 고맙고,
화장실에 잘 가서 아직 맑은 보기 좋은 소변을 시원하게 봐서 고맙고,
아내의 고른 숨소리를 들어서 고맙고, 깨우니 더 잔다고 뒤척이니 고맙다.
샤워하며 몸서리를 제대로 치니 고맙고 아내가 제대로 도시락 싸 주어 고맙고,
아내가 차려 준 밥을 5 숟가락 입에 제대로 잘 넣어 씹어서 넘기니 고맙고,
둘 모두 하루를 시작하는 차비를 차려 대문을 나서게 되니 고맙고,
둘째가 일어나 잘 다녀오라는 인사가 고맙다.
오늘도 일 잘하고 잘 돌아와라 하는 말에 알았어요 하는 둘째의 목소리를 들어서 고맙다.
시간 맞춰 우리 손녀 크로이 학교 가기 전 모습을 카톡으로 보게 되어 고맙고,
그 사진으로 인해 큰 아들 집안이 별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서 고맙고,
둘이서 핀치 역까지 잘 와서 고맙다.
블루칼라 의자(경로석)에 앉지 않고 일반 좌석에 앉아 가니 고맙고,
그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글과 소설을 쓸 수 있으니 고맙고,
별문제 없이 일터에 도착하여 시작 준비를 제대로 잘 했으니 고맙다.
오늘도 가족 모두 박테리아, 바이러스 그리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100% 이상 완벽하게 방어하고
막아주고 건강과 안전을 지켜 달라는 기원을 하여 고맙다.
적게 벌던 많이 벌던 열심히 땀 흘리며 별 탈 없이 일 잘하고 하루 일을 잘 마쳐서 고맙고,
다리 아직 건강하여 15kg 군장 메고 걸어서 고 츄레인 역(Go Train Station)까지 와서 기차 잘 타고
앉아서 고맙고, 맑은 정신으로 뉴스를 보고 글을 쓸 수 있어 고맙다.
도착하여 Agincourt Station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만나 고맙고,
그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 고맙고,
세 식구 모두 모여 눈 아래 보이는 맑고 청명한 여름 저녁의 멋진 경치를 19층 거실에서 보며
함께 만든 저녁식사를 편안하고 맛있게 먹어서 고맙고,
밤 샤워를 기분 좋게 몸을 흔들어 가며 해도 아무 탈 없이 잘 해서 고맙고,
컴퓨터에 들어가 쓴 소설도 정리하고 이곳에 들어와 잠깐이라도 별문제 없이 잘 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늘 같이 소설 하나 올리고 유튜브로 세계와 우주를 순회하며 곧 잊어버릴 새로운 뉴스들을
훑어보는 것이 고맙고,
마침내 샤워하고 팬티만 입은 채 창가에서 스트레칭 같은 운동을 하는 아내를 봐서 고맙고,
창문 닫고 불 끄고 아내 곁에 눕게 되니 잘 보낸 오늘 하루가 고맙다.
그 사이 잘못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다 이렇게 고마워하게 하도록 해 주어서
마침내 다 고맙다.
따져보고 다른 길이나 방법을 찾고 비판할 힘도 능력도 없고, 그런 문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기지 않고 지금까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후 내공으로 가는 길,
모든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잘 가다가 관절이 무지 아프고 붓고 해서 잠시 쉬며 막 먹었던 음식의 식욕과 육체적으로 게을렀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주는 통풍도 고맙다.
인내와 현명함과 능력과 지혜와 그 사이사이 우둔함과 망각과 좌절과 포기를 주어 잠시 쉬며
극복하는 내공 고수의 절묘한 삶의 유연 수를 펼치도록 해 주는 몸과 마음의 건강도 고맙다.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삶의 질곡을 결국은 피. 눈물로 건너게 하는 운명이 마침내는 고맙다.
그래도 밝은 하늘 아래서 웃지 못하고 그늘에 서서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생각케 하는 내 운명이
눈물 나도록 고맙다.
마음 삐딱하게 먹으면,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하고 40대 같이 미로 같은 길 벗어나 우주로
해성(comet) 을 팔러 다녔을 텐데... 그리 못하게 잡아주는 아내가 늘 옆에 있어 주어 고맙다.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같이 가라고 보여 주는 길 위로 걷든 기어가든 달려가든 가라고
분위기 잡아 주는 니가 몸서리치도록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근데, 외람되지만, 다른 운명도 니 처럼 그러냐? 물어보자.
어떤 유명 가수는 감히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하고 묻더라. 쪼잔한 아저씨 ㅎㅎㅎ.
뜻대로 안되는 게 삶인데...
돈 있다고, 권세 있다고, 잘났다고, 세상에서 가질 것 다 가졌다고 뻥 뻥쳐도, 다 알잖아.
빈 몸으로 죽고, 죽으면 끝이고 없다는 것을. 산자들의 아우성도 그들의 스테이지이고 죽은 자는
그냥 없는 거라는 것을. 이게 삶인 것을. 나는 이렇게나마 쓸 수 있다는 것도 고맙다. -끝-
첫댓글 저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것이 고맙고 조금 아파도 치료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지요
돈도 부자는 아니지만 삼시 세끼 먹고 사 것도 고맙고 소확 행 입니다
이렇게 이런 글을 읽을 수 닜는 것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