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공중 보건 전문가 한스 로슬링이 2018년 출간한 '팩트풀니스'(이창신 옮김, 김영사) 서문에서 독자에게 던진 질문 13개입니다. 문화부 기자로 근무할 때 책 소개 기사를 쓰며 대충 훑어보고 퇴직하면 통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제 정기산행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문'이 아주 빼어납니다. 20쪽 정도 되는데 책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훌륭히 갈음하고 있습니다. 서점에 갈 일이 있을 때 15분만 투자하시면 제가 왜 이 책을 소개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13개의 문제를 풀어 각자 답을 여기 적어놓아 주시면 제가 20일 오전에 정답을 알려드리며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풀어놓겠습니다. 휴일에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지 몰라 송구한 마음입니다.
1.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A. 20% B, 40% C.60%
2.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A. 저소득 국가 B. 중간 소득 국가 C. 고소득 국가
3.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4.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은 몇 세일까?
A. 50세 B. 60세 C. 70세
5. 오늘날 세계 인구 중 0~15세 아동은 20억 명이다. 유엔이 예상하는 2100년의 이 수치는 몇일까?
A. 40억 B, 30억 C. 20억
6. 유엔은 2100년까지 세계 인구가 40억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주로 어떤 인구층이 늘어날까?
A. 아동인구(15세 미만) B. 성인 인구(15~74세) C. 노인 인구(75세 이상)
7. 지난 10여년간 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A. 2배 이상 늘었다 B. 거의 같다 C. 절반 이하로 줄었다
8. 오늘날 세계 인구는 약 70억이다. 아래 중 거주 분포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A. 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 각각 10억, 아시아 40억
B. 아메리카와 유럽 각각 10억, 아프리카 20억, 아시아 30억
C. 아메리카 20억, 유럽과 아프리카 각각 10억, 아시아 30억
9.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일까?
A. 20% B. 50% C. 80%
10.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년간 학교를 다닐까?
A. 9년 B. 6년 C. 3년
11. 1996년 호랑이, 대왕판다, 검은코뿔소가 모두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됐다. 이 셋 중 몇 종이 오늘날 더 위급한 단계의 멸종위기종이 됐을까?
A. 2종 B. 1종 C. 없다
12.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A. 20% B.50% C.80%
13. 세계 기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의 평균기온 변화를 어떻게 예상할까?
A. 더 더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B. 그대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C. 더 추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15일 올리면서 답하는 이들이 많지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질문이 까탈스럽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눈팅'할 만한 자료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괜히 오답을 내밀었다가 창피를 당할까 싶기도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습니다.
정답을 공개합니다.
1.C 2.B 3.C 4.C 5.C 6.B 7.C 8.A 9.C 10.A 11.C 12.C 13.A
로슬링의 질문은 명확한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류가 개선하고 보정하고 진보의 방법으로 취해온 방법들과 개선된 조건들을 다소 부정적으로, 다소 비관적으로, 별달리 진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었습니다. 로슬링은 무지를 체계적으로 측정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정답들은 모두 하나의 방향성을 갖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현재의 조건이 과거 어느 때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며, 우리는 확실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3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확인해볼까요?
소득이 여전히 모자란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의 비율은 서구인이 잘못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사람들은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중간 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의 극빈층 비율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서구인들은 거의 같거나 거의 2배로 늘었다고 잘못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은 70세까지 늘었는데 서구인들은 아직도 한참 못 미치는 나라들이 많다고 믿는다.
오늘날 세계 인구 중 0~15세 아동은 20억명인데 유엔은 2100년이 되면 그대로일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서구인들은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유엔은 2100년까지 세계인구가 40억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주로 늘어나는 인구층은 성인 인구(15~74세)인데 서구인들은 달리 보고 있다.
70억 세계인구가 대륙별로 어떻게 모여 사는지 정확히 아는 이도 그리 많지 않다.
전 세계 1세 아동이 어떤 접종이든 예방접종을 받는 비율은 80%인데 서구인들은 그보다 형편없이 낮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니는데 같은 나이의 여성은 1년 더 적게 다닐 뿐인데 서구인들은 그보다 훨씬 더 적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멸종위기종은 대체로 많이 없어졌는데 서구인이나 심지어 전문가조차 오해하고 있다.
세계 인구 중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80%인데 서구인들은 그보다 못하다고 믿는다.
(이 책을 쓴 것은 2017년이라 기후 위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정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기후 전문가들은 100년 동안 지구가 더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로슬링은 이런 착각과 오류, 무지가 빚어진 이유로 10가지 본능을 꼽습니다. 간극, 부정, 직선, 공포, 크기, 일반화, 운명, 단일 관점, 비난, 다급함입니다. 이 가운데 기자 생활을 하며 기자란 직업이 갖는 속성 중에 가장 핵심적인 기제가 두려움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가장 고개를 크게 끄덕이던 것이 네 번째 공포 본능이었지요. 148~149쪽 '주목 필터'를 통독해 보셨으면 합니다.
책에서 인상깊게 본 대목은 우리가 생각하는 생활과 문화의 차이는 대륙이나 인종, 종교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소득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위 사진을 보면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소득수준이 같은 곳에서는 식수, 이동수단, 요리, 식사, 잠자리가 비슷합니다.
또 194~195쪽을 펼쳐봅시다. 유엔의 세계 인구 성장 예상치가 옳다면,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득이 지금처럼 꾸준히 높아진다면, 앞으로 20년 뒤에는 세계시장의 무게중심이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옮겨간다. 오늘날에는 북대서양 주변의 부유한 국가에 사는, 세계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4단계 소비자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 세계에서 소득이 꾸준히 높아진다면 그 비율은 2027년 50%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2040년에는 4단계 소비자의 60%가 서양 이외의 지역에 살 것이다. 그렇다. 나는 서양의 세계경제 지배가 조만간 끝날 거라고 본다.
북아메리카와 유럽 사람은 세계 인구 상당수가 아시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경제적 영향력 면에서 '우리' 서양인은 80%가 아니라 20%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과거를 그리워하느라 이 수치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중략)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중요성도 오판한다. 우리 중 다수가 미래에 무역을 장악할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왜 그렇게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중국 봉쇄, 인도 유인에 목을 매다는지, 철저하게 전략적인 안목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밀어붙이는지,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방 정책을 표방하려 했는지 세계사가 나아갈 방향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86쪽에서 다음 쪽으로 넘어가는 대목도 읽어보시죠. 세계는 수치 없이 이해할 수도,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국가는 정부 없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지만,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공공 부문도, 민간 부문도 늘 정답일 수는 없다. 좋은 사회에서 나온 척도라도 단일 척도가 모든 사회 발전을 이끌 수는 없다. 이것 또는 저것을 아주 택할 게 아니라, 사안에 따라 이것과 저것을 두루 택해야 한다.
아울러 296쪽에서 다음 쪽으로 넘어가는 대목에 집중합시다. 우리가 손가락질하기 좋아하는 대표적 사람들인 사악한 경영인, 거짓말하는 언론인, 외국인을 살펴보자. (중략)
지식인과 정치인 사이에서는 언론을 손가락질하며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게 유행이다. (중략)
우리는 언론인을 손가락질하기보다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언론은 세상을 왜 그렇게 왜곡해 보여주는 걸까? 의도적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중략)
2013년 BBC와 CNN은 우리가 제시한 문제를 자사 사이트에 올려 사람들이 직접 풀어보게 했는데, 사람들의 정답률이 눈 감고 찍은 것보다도 못한 이유를 분석한 수천 개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그 중 우리 주의를 사로잡은 글 하나는 이랬다. "언론 종사자 중 이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중략)
(물론 미래의 아동 수, 예방접종률, 여성의 교육 수준에 대한) 언론인과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지식수준이 일반인보다 나을 게 없고, 침팬지보다 못한 것 같았다. (중략) 이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계를 크게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한스 로슬링은 2017년 2월 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혜안에 탄복하게 되는 대목이 341쪽에 나옵니다. 과거 폭력 전력이 있는 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을 잃었을 때 자만심과 향수에 빠져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상황을 막는 데는 엄청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구시대적 서양이 새로운 세계에 평화롭게 통합될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