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remote control
정은율
가끔은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어 애태우기도 하고
때론 엉덩이 밑에 깔려
숨 쉬는 방법 연구하며 참고
과부하로 버튼이 뜨거워져도
화내지 않고 참는 법 익히며
늘 적당한 거리에서
자신의 존재감 뿜어낸다
방전된 배터리 충전하려고
더 빠르게 원격제어에 나서는
우리 집 말하는 리모컨
다양한 채널로 쉴 틈 없이
나를 향해 버튼 눌러 댄다
순간 인내의 벽 무너져 내리고
가쁜 호흡 꽁꽁 동여맨다
이런 날 어디 오늘뿐이겠는가
긴 시간 원격조정에 간혹
에러가 나기도 하지만
옹이까지 어루만지던 마음
채널 깊숙이 스며들고 나서야
서로의 소중함 깨닫는다
리모컨의 또 다른 의미가
나를 다시 출발선에 세운다
너와 나의 거리는 몇 미터나 될까
오지 않는 택배
며칠째 햇살은 몸살을 앓고
당신의 얼굴은 황금빛으로 출렁입니다
시간의 잎새 어깨에 매달려 떨어지고
벌레 소리 씨앗처럼 여물 때면
당신 생각에 또 뒤척입니다
허기진 하루 길 위에 누울 때
계단을 오르면 슬픈 무게로
문 앞에 웅크린 채 졸고 있는 모습
언제부터 기다렸을까 울컥 당신의
문드러진 지문 조각들 끌어안고 들어와
목울대 뜨겁도록 한참을 꺽꺽이다
전화를 걸곤 했지요
몇 겹의 계절 감으며 보낸 날들
이젠 올 수 없는 당신인 줄 알면서도
때가 되면 혹시나 하여 현관문 앞
텅 빈 계단만 멍하니 바라봅니다
올해도 태양은 몸살을 앓고
당신의 얼굴은 황금빛으로 출렁입니다
詩를 노래하며
서점에 가면 동면하고 있는 많은 시집을 본다.
시가 문학 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처럼 간주 되는 것은 시가 문자로 전달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독자와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시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소리를 통해 독자와의 교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낭송이다.
누군가 책 속에 잠들어 있는 시를 찾아 재생산해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면 그 시는 분명 새롭게 해석될 것이다.
그래서 낭송자는 시가 갖는 주제 의식, 비유와 상징, 상상력, 이미지, 리듬, 시적 형식을 잘 파악하여 시인의 심상을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시가 노래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쓴 시를 노래하지 않는다. 아니 노래하려 애쓰지 않는다. 함께 공유하려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시집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고 나만의 시로 잠재우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시인이 글을 쓴다. 그러나 자신이 쓴 시를 맛깔스럽게 읽어 독자와 교감하는 시인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책 속에 갇힌 시들은 분명 노래가 되어 많은 독자와 소통하기를 원할 텐데….
그래서 나는 읽고 또 읽으며 시인의 심상을 이해하고 노래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오늘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