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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의 창
시인들이여 이 봄, 눈을 크게 뜨자!
조창용(시인, 사이펀문학상 운영위원장)
2020년 봄이다. ‘봄’이라는 어휘에는 많은 뜻이 담겼다. 일반적으로 봄은 생물학적 자연의 순환적 기능을 말한다. 그 계절적 의미의 ‘봄’에는 실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사계절 중 봄만큼 다층적 구조를 지닌 용어를 보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이보다 더 반가운 계절도 없었으리라. 눈보라의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봄은 그 어떤 계절보다 반갑다. 여름이 좋다, 가을이 좋다, 겨울이 좋다는 것은 처절한 살아남기의 절박한 순간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혹독한 겨울의 시련을 겪은 사람들은 봄의 따스한 기온이 얼마나 숭고하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지 절실히 느끼며 그 봄의 기운에 희망을 얻는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 동물들의 기초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봄의 입김이다. 따뜻한 기온만이 푸른 생명을 자라게 하고 그 초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초식동물들로 인해 육식동물들이 존재한다. 이는 비단 땅덩이만의 일이 아니다. 바다 또한 적정한 기온의 편차가 있어야만 플랑크톤이 생겨난다. 플랑크톤은 대류의 흐름이 완만하고 빛의 일사량이 많아야 증식한다. 플랑크톤은 바다 생물의 기초적인 먹잇감이다. 이처럼 봄은 기온의 상승 화라는 것을 가져다주기에 이 지구상에서 1차적인 생물들의 활동성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또한 봄은 계절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시련을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적 단어이다. 오랜 감옥생활에서 풀려나는 사람, 어두운 정치적 탄압에서 풀려나는 사람들, 정적이 사라지면서 자신의 활동무대를 넓히는 사람들, 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회복기에 들어서는 사람들 등 그들에게 ‘봄’이라는 단어는 희망과 생명일 수밖에 없다. 그런 봄, 2020년 4월에 우리 대한민국은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권익을 책임 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한 나라가 발전하려면 정치가 안정이 되어야 한다. 국민이 도탄에 빠지는 것은 무소불위의 왕정정치나 이합집산의 정치야합이 성행할 때 국민들이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역사 이래로 권력에 눈이 먼 정치인들로 인해 나라가 사분오열 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굳이 다른 나라를 찾지 않더라도 고구려, 고려, 신라, 조선 등 지난 모든 우리의 역사가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의 이합집산에 애꿎은 백성들만 목숨을 잃거나 거리로 나앉았다. 그렇기에 정치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여 이 봄에 치러지는 선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문(文)을 숭상해온 우리나라는 예전의 모든 정치인들이 문인이자 시인이었다. 문과에 등극하려면 얼마나 좋은 글을 짓느냐가 그 사람의 능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써 낸다는 것은 깊은 학문이 내재되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나랏일을 하려면 당연히 글 읽기와 글쓰기는 기본이었던 것이다. 과거제 또한 요즘의 행정고시나 고시공부가 아닌 세상 이치에 맞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유와 서정이 깔린 문장이라야 장원급제를 받았다. 그런 글들이 바로 함축과 비유의 행간을 담은 시였다. 결국 시를 잘 쓰면 입신의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인이 정치를 잘못 만나면 곧잘 권력의 시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근대사회로 오면서 시인들은 정치를 싫어하게 된다. 세속의 이런저런 더부살이에 물들어가는 자신을 지키고자 정치와 멀리 했던 것이다. 또 예전처럼 시를 잘 쓴다고 행정부의 고위직에 앉는 시대도 아니기에 자연 시와 정치는 분리되었던 것 같다.
고대 서구에서는 시인들이 주술사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주술사란 신과 인간의 가교역할을 하는 접신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또한 ‘오디세이’ 등 전쟁터의 영웅이나 특정한 왕을 찬미하여 백성들을 선도하기도 하고 오히려 군주의 시녀가 되어 백성들을 현혹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인들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 같다. 이는 시인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인이라 하여 중국의 소동파나 우리나라의 김삿갓처럼 풍류시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인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자존감으로 삶을 살았던 분들도 많다. 우리가 익히 아는 최치원 선생은 신라 사람으로 신분제의 한계 때문에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 장원급제를 하여 벼슬을 했다. 또한 중국 역사의 엄청난 사건인 ‘황소의 난’으로 당나라가 도성을 뺏기고 혼란을 겪고 있을 때 황제의 명을 받아 ‘격황소서’라는 글을 황소(黃巢)에게 보내 그 글에 놀란 황소가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황소는 당나라 말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일으킨 농민반란군의 수장이었다. 나중에는 ‘대제(大齊)’라는 나라까지 만들고 짧게나마 황제를 자처한 인물이다. 소금장수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당시의 조정이 썩어빠지고 무질서한 탓이었으리라. 하지만 최치원이 관리로서 나라의 명을 거역할 수 없기에 반란의 부당성을 알리는 글을 썼다는 것은 그 당시 당나라 전역에 신라사람 최치원의 문장이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런 그가 신라로 돌아왔으나 신분제의 한계와 조정을 둘러싼 권력자들의 시기질투로 정치를 멀리하고 평생을 야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또한 우리는 고려 말 이방원과 정몽주의 시가를 통해 시인의 기질과 비범성, 충(忠)을 알 수 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하여가(何如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 ‘단심가’(丹心歌)
고려가 혼란한 틈을 타 이성계는 왕의 명을 거역하고 위화도 회군을 한다. 나라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후일 조선 3대 임금이 되는 이방원이 고려의 가장 큰 충신인 정몽주를 설득하고자 ‘하여가’로 마음을 떠본다. 이미 현실적인 패권을 장악한 무리의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위압이다. 그럼에도 정몽주는 고려가 망할지언정 주군을 바꿀 수 없음을 ‘단심가’라는 시로 답을 한다. 이는 당시 두 사람이 시만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서로의 학식과 깊이를 가늠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결국 이방원은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간파하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테러로 죽이고 만다. 물론 이는 정치적 사건으로 문학적인 상상력과는 동떨어지지만, 그만큼 글깨나 쓰는 시인(문장가)들이 정치적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큰 정치인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시를 잘 써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인(시인)들의 행적들은 근대로 넘어오면 더욱 더 두드러진다. 나라가 뺏기고 일제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자 이광수, 최남선, 모윤숙, 유치진, 서정주 등 친일적 시를 쓰거나 행적을 한 분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총칼 앞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을 하지만, 그 총칼 앞에서 당당했던 분들이 있으니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왜? 시인은 정신을 먹고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육사, 이상화, 윤동주, 김구, 신채호, 한용운 등 모두 시인이자 항일 운동가였다.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을 했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독립이 이루진 것만은 아니다. 김구, 김규식, 신채호 등 당시의 항일 운동가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가 만나 2차 대전 종식 후의 세계 여러 나라의 독립을 논의했다. 독립의 기본적인 근거는 2차 대전 발발(1939년) 이후의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지배를 당한 민족만을 거론했다. 우리나라는 2차 대전이 일어나기전인 1910년 한일합병으로 나라를 빼앗겼기에 회담의 주제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장제스가 대한제국의 독립을 거론하였고 이후 포츠담 회담을 거쳐 일본과의 전쟁이 종식되면 독립을 보장받은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장제스의 발언을 이끌어낸 것이 우리의 독립군들이다. 당시 장제스는 중국내에서 중국인민들의 항일의지를 모아 대규모 군사를 조직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그런데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로인해 중국내에서도 항일의 투쟁심에 불을 당겨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장제스는 “100만 군대가 할 수 없는 일을 조선의 청년 한 사람이 해냈다”고 극찬했다. 그러한 윤봉길 사건의 지휘를 김구가 한 것으로 알고는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이후 8년간 장제스와 김구는 함께 움직인다. 하여 카이로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김구 등 항일 운동가들이 장제스에게 찾아가 국제회담에서 반드시 조선의 독립을 거론해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장제스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또 단재 신채호는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고, 이승만은 없는 나라도 팔아먹는다.”고 울분을 토하며 비판을 했다. 이승만은 미국에게 우리나라를 국제연합국이 통치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물론 하루빨리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의 다른 방편이라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어 가고 독일, 이탈리아가 패망해가는 마당에 굳이 그러지 않아도 우리의 독립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민족보다는 친미정부를 세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사심이 강했던 것으로 신채호는 판단, 진정한 민족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못할까 우려했던 것이다. 결국 신채호는 일본에 잡혀 1936년 2월 21일 뤼순 감옥에서 해방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이처럼 뛰어난 문장가(시인)들은 자신이 내장한 지식과 민족적 자존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고초를 겪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육사, 윤동주도 모두 총칼 앞에 민족의 자존을 세우다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다. 한편 세계에서도 시인들이 정권을 잡아 권력을 남용한 사례도 많이 있다. 몇 만 보자면 중국의 근대 혁명기를 이끈 마오쩌둥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인이었고 소련의 스탈린도 시를 쓰다 나중 혁명의 길로 돌아선 인물이다. 아르헨티나인이지만 쿠바 혁명의 기수 체 게바라도 시를 썼다. 이산하 시인이 그의 문집에서 시만 골라 『먼 저편』 이라는 시집을 국내에서 발간한 바 있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인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권력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시적재능은 뛰어났지만 일제를 찬미하고 조선의 청년들을 가미카제에 내모는 친일문학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그러한 일본의 찬양도 모자라 군부 독재자의 미화로 펜대를 움직였던 사람이다. 하지만 권력의 반대편에서 정신과 육체적인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현실적 정치를 깨부수려 한 저항시인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몇 분만 열거하자면 김지하, 신동엽, 박봉우, 박노해, 채광석 등 우리 문단의 한 축을 이루었던 분들이다. 그러다 자유주의(개성주의)가 발전하면서 시인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멀어져 갔다.
봄을 이야기하다 엉뚱하게 시인들의 정치이야기만 풀어놓았는데, 그 이유는 독자들도 잘 알 것이다. 4월15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손으로 얼마나 훌륭한 일꾼을 뽑아야 할 것인가? 이는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아주 중요하다. 당을 떠나 나라를 위하고 어려운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우리 국민들은 반드시 철저한 검증을 거쳐 뽑아야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대로 돌릴 수 있다. 국제 외교가 100년의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을 시급히 복원하고 우리 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회복하여 강건한 위치를 가지지 못하면 언제 중국의 동북공정에 녹아버리거나 일본의 그늘에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과거의 역사가 이를 잘 말해주지 않는가. 그렇기에 우리 시인들은 정치와 멀리 있지만 정신만은 역사의 올곧은 최치원, 김구, 신채호, 이상화, 윤동주 시인 등 선배들의 정신을 채워 선거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시인의 책무가 혼자 앉아 시만 쓴다고 시인이 아니다. 시는 세상의 결과물이고 시를 통해 민족의 독자를 형성하고 나아가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하는 철학적, 인문학적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우리 시인들만이라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어 무엇이 진짜인지, 제대로 알고 이 봄의 만찬을 확실하게 즐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창용|시인. 사이펀문학상 운영위원장, (사)부산시인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부산장애인총연합회 회장. 시집 『새가 되어 오리라』, 『어느 마지막 바람결에』 외. |
첫댓글 의미심장한 글. 잘 보았습니다.
감시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