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브에서)
“공민왕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이며, 충혜왕의 동복 아우이다. 초명은 기(祺), 이름은 전(顓)이며 몽골명은 바이앤티무르[伯顔帖木兒]이다. 공민왕의 어머니는 덕비 홍씨로 원나라 공주가 아닌 고려 여성이었다. 1330년에 태어난 공민왕이 전례에 따라 볼모로 원의 연경에 간 것은 12살 때였다. 이후 조카인 충정왕이 폐위되어 1351년 12월에 귀국할 때까지, 약 10년을 연경에서 살았다. 그 사이 두 차례의 왕위계승에서 실패하는 아픔을 겪다가, 21세 때 원 위왕(魏王)의 딸 보타시리[寶塔實理,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하면서 왕위계승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공민왕 [恭愍王] - 고려 재건을 위해, 개혁을 단행하다 (인물한국사, 정성희, 장선환)
원나라에서 볼 때 공민왕이 펴는 여러 정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대놓고 말은 하지 못하고 봉투에 넣어 글로 쓰서 보냈다. 伯顔 帖木兒 라는 몽골 이름을 지어 보내니 받으시오.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공민왕은 12세 때 볼모로 가서 연경에서 약 10년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편지를 보자마자 속으로 “이것들이 날을 욕하고 있구나” 면서 웃었다. 이 시대가 티무르 제국과 거의 같은 시기였다. 공민왕은 4 汗國이 망하고, 티무르 제국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고, 국내에서도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원나라도 멀지 않았구나, 하는 사실을 간파했지만, 정작자기 나라가 한 순간에 넘어지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었다.
여러분께서는 위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아마도 한 분도 저게 욕이 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1958년 중국 공산당이 중국어 발음을 통일 시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의 변화를 기록할 것입니다. 어느 단계에서 위의 글이, 이해되기 시작하는지, 살펴 보십시오.
伯 顔 帖木兒
바이앤 티무르
(이 글에서 佰자를 특히 ‘배’라고 하지 않고 ‘바이’라고 했다. ‘호’자를 “하오”라고 하는 것처럼. 이렇게 해야 우리말과 달라지게 되니까. 그리고 ‘兒’를 ‘르’로 발음을 바꾸었다. 이렇게만 바꾸어도 우리말과 다른 중국어라는 것으로 변화한다. 다음은 원나라 때의 발음)
배애 티무어 (말의 변화를 잘 보세묘)
(다음은 고려, 조선 때의 발음)
배아 티무아
(다음은 한국의 사투리 발음)
배어 치무아
(다음은 한국의 다른 사투리)
배어 쳐무거
(다음은 한국 표준어)
배워 쳐먹어
위 이름은 사실, 기껏 왕을 만들어 주었더니, 원나라를 벗어나려, 해?
(어디서) ‘배워 쳐먹어(ㄴ)’ 짓이야! 라는 욕이었다.
한 가지 더, 원나라 공주의 이름
“보타시리[寶塔實理]”의 뜻을 아십니까? 이 글은 공민왕을 도와 무엇이든,
‘보태시리’라는 뜻이다. 공주가 공민왕과 결혼하기 전, 공주가 어떤 각오를 하고, 시집을 왔는지, 아주 잘 나타낸 이름이라고 판단된다. 몽골 및 원나라가 우리말을 사용한 것은 명백하다.
이 사실을 네이브도 모르고, 우리나라 국어원에서 박사중의 박사도 몰랐다.
그저, 뜻은 모르지만 원나라에서 지어준 이름이거니 했다.
지금의 중국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을까?
인물 한국사를 쓴, 여러분, 부끄럽지 않으세요? 얼마나 부끄러우세요?
옛날에 한글은 없었고, 단군조선의 글자밖에 없었는데, 우리말을 쓰고 싶기는 한데, 여러분같으면 어떻게 하실 꺼라고, 생각하십니까?
漢字 이전에 사용되던, 단군조선의 글자와 말을 하루빨리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참 역사를 발굴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