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4~35)
시메온이 축복하는 대상을 '그들', 즉 요셉과 마리아로 밝히고 있다. 당시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꽤 오랫동안 안고 있었으며, 깊은 관심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하여 축복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듯 하지만, 시메온은 자신이 감히
구세주 예수님을 축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부모들만을 축복했다고 본다.
이제 아기 예수님의 부모를 향해 시작된 시메온의 축복은 곧 마리아에게로 이어진다.
이것은 아마도 마리아가 요셉보다 더 깊은 영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예수님으로 인해 직접적인 고통을 받는 당사자가 마리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셉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 즈음에 일찍 죽은 것으로 전해지며, 마리아는
그 이후까지 살아 예수님께 대한 온갖 비방과 더불어 십자가 처형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많은 사람들'로 번역된 '폴론'(pollon; many)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의
지대함과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이가 없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쓰러지게도 하고'로 번역된 '프토신'(ptosin; falling)의 기본형은
'프토시스'(ptosis)이며, 그 뜻은 '무너짐', '넘어짐'을 뜻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어지게 될 자들은 교만하여 꼿꼿이 서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구세주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비참하게 넘어질 것이다.
반면에 '일어나게도 하며'로 번역된 '아나스타신'(anastasin; rising)의 기본형
'아나스타시스'(anastasis)는 '일어서다'를 의미하는 동사 '아니스테미'(anistemi)의
명사형으로 '일어섬'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비참한 죄의 상태(예레17,9)로 인해 절망하여 넘어져 있던 자들은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 은총으로 말미암아 일어설 것이다.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루카 복음 2장 12절에서도 나오지만, 예수님 자신은 '표징'(sign)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표징이 되기 위해서 '정해지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반대를 받는'으로 번역된 '안틸레고메논'(antilegomenon;which will
be spoken against)는 '반대'를 뜻하는 '안티'(anti)와 '말하다'를 뜻하는 '레고'
(lego)의 합성어로서 '반대하여 말하다', '적대적으로 말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는 수동태 현재 분사로 쓰여 '적대적인 말을 듣는', '비방을 받는'이라는
뜻이며, 이 상태가 예수님께는 항상 현재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항상 반대를 받으신 예수님의 공생활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와 비방의 최고 절정은 인류 구속을 위한 성혈의 제단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자 되심을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었지만, 그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멸망'의 표징인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여기서 '칼'로 번역된 '롬파이아'(romphaia; a sword)는 전쟁 때 살상용으로 사용되는
'큰 칼', '긴 창'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여기서 비유적으로 영혼을 가득 채운 '큰 고통'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당신의 피'로 번역된 '수 ~아우테스'(sou ~autes; your own)는 고통을 당하게
될 대상을 강조하는 표현이며, 직역하면 '너 여자 자신의' 이다.
마리아의 영혼에 칼에 찔린 듯한 아픔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루카 복음 2장
34절 후반절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생애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자들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다 드러내
단죄하며,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배척과 수난과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아들의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영혼을 뒤흔들 듯한 고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이 땅에서 수난은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세사의 섭리 안에서 이미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여기서 '생각'으로 번역된 '디알로 기스모이'(dialogismoi; the thoughts)는
'마음속의 궁리', '뒤틀어진 생각'등을 의미하는 '디알로기스모스'(dialogismos)의
복수이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대체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루카5,22; 6,8).
여기서도 이 단어를 사용해 장차 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실제로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실 것이 예언되고 있다
(마태23,25~27; 마르7,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