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이후 쎈안토니오를 우리팀으로 정한 이후, 국내농구보다는 NBA를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농구팀은 85년도 고려대입니다. 오래된 얘기인 데다가 기록을 찾아볼 길도 없어 정확하지 않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85년도 고려대 농구팀은 평범한 듯 하면서도 특이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대단한 파이팅을 보여주던 팀입니다.
당시 고려대의 주전 멤버는 다음과 같습니다.
1.정재섭 2.최철권 3.김진 4.양중철 5.김윤호(당시에는 PG-SG-SP-PF-C의 포지션보다는 가드3명+센터2명으로 나오는 게 일반적 추세였던 것 같습니다)
이 팀의 가장 큰 특징은 선수교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전과 후보의 실력차가 커서 실질적으로 선수교체가 어려웠던 타팀과 달리 당시 고려대는 올라운드플레이어 임달식, 정확한 슈터 전창진, 포스트플레이에 능한 이민형 등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상당히 훌륭한 벤치멤버를 보유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반칙 퇴장상황을 제외하면 거의 절대로 선수교체를 하지 않는 것은 "뚝심"의 농구로 표현되는 박한 감독의 지도스타일에 따른 것으로, 주전선수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중앙대와의 경기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2명 이상의 퇴장이 발생하게 되는데 양중철이나 김윤호가 퇴장당했음에도, 한기범 김유택을 막으러 이민형이 아니라 임달식 전창진의 순서로 투입되었던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바가 있습니다)
이 팀의 공격전술은 거의 아래 두 가지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1. 정재섭이 공을 튕기면서 상대방코트를 두 바퀴 정도 휘젓다가 최철권에게 패스하면 최철권이 받자마자 점퍼를 쏘거나 골밑돌파를 시도합니다.
2.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김진에게 패스하고, 김진은 점퍼를 쏘거나 최철권에게 패스를 시도하고, 만약 김윤호가 골밑에 노마크로 풀려 있으면 그에게 패스를 합니다.
일단 양중철은 웬만해서는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정재섭은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드리블 능력을 가졌으나 슈팅은 부정확했으며, 김윤호는 골대 근처에서는 그런대로 득점능력이 있었으나 샤크를 훨씬 능가하는 자유투성공률 때문에 (림을 맞추지 못해 자유투 1구만 던지고 사이드라인 아웃처리된 적도 꽤 되며, 더구나 당시는 팀파울에서 파울시 투샷이 아니라 원앤드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함) 함부로 그에게 패스하기 어려웠습니다. 즉 고려대는 최철권과 김진 두 명이 공격을 하는 팀이었고 상대팀은 뻔히 알고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흔히 이충희를 “슛장이”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진정한 슛장이는 바로 최철권입니다. 특히 그의 잡자마자 집어던지는 슈팅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정확했고 엉성한 드리블을 치고들어가다가 우겨넣는 슛도 곧잘 들어갔습니다. (다음해인지, 아니면 기업은행 시절인 그 다음해인지 확실치 않으나, 한 경기에 97점을 넣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김진은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농구를 구사하는 이 팀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농구를 구사하던 선수로, 개인적으로 데이비드로빈슨과 함께 제일 좋아하던 선수입니다. 코트의 신사라는 별명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코트의 영감"이 어울릴 정도로 젊어서부터 안정적인 경기를 하던 선수였습니다.
수비는 공격에 비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였으며, 수비가 강했다는 해설자의 평가가 기억납니다. 2-3 지역방어를 기본으로 맨투맨, 올코트프레싱, 주로 현대전에서는 박스 앤드 원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였습니다. 당시 해설자가 이런 저런 수비전술을 설명해 주면, 어린 마음에 박한 감독의 전술 운용이 대단했던 것으로 오해를 했었습니다. (그때의 인상 때문인지 지금까지 박한 감독을 대단한 명장이라고 생각함)
특히 김윤호의 수비는 대단했습니다. 한기범-김유택의 사기라인업을 상대로 고군분투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팀과의 대결에서는 블럭샷도 심심치 않게 기록했습니다. 이 해부터 몇년간 농구대단치에서 수비상은 김윤호가 거의 독식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팀 선수들의 이러한 분업화 특성에 따라 개인기록 부문 수상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농구대잔치 2차대회에서는 전부문을 독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득점 최철권, 리바운드 김진(좀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 여러 스포츠신문에 나왔으니 오보는 아닌듯. 삼성에서는 포인트가드를 보았지만 고려대에서는 포워드로 나왔던 것 같음), 어시스트 정재섭, 수비 김윤호 등이었습니다.
그럼 고려대가 상대해야 했던 당시의 강팀들의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디펜딩 챔피언 "삼성전자"
1.신동찬 2.김현준 3.박인규 4.임정명 5.조동우(안준호)
당시에 가장 짜임새있는 팀은 단연 삼성전자였습니다. 최강의 수비형 포인트가드 신동찬, 김현준-박인규의 외곽 쌍포, 70%의 야투율을 자랑하던 골밑의 무법자 임정명, 정통센터 조동우, 가드-포워드-센터를 전부 커버하는 식스맨 안준호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데가 전혀 없는 팀이었습니다.
"현대"
1.박수교 2.이충희 3.이원우(이장수) 4.이문규 5.박종천(?)
비록 전 해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삼성에게 패했지만 그것은 "업셋"에 가까운 사건이고, 당시 최강은 현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수퍼 울트라 에이스인 이충희를 보유하였을 뿐 아니라, 현 국가대표 선수인 장신슈터 이장수가 출장 기회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멤버를 보유했던 팀입니다. 다만 센터가 다소 약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대학대회 전관왕 "중앙대"
1.허재 2.강정수 3.박경영 4.김유택 5.한기범
이 팀은 이미 사기 라인업을 거의 완성한 상태로서, 사실 삼성-현대에게 밀릴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김유택과 한기범은 이미 국가대표 주전급으로서, 상대팀 입장에서는 올라주원과 로빈슨의 트윈타워를 상대로 비슷한 수준의 센터 하나도 없이 물량작전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신입생 허재는 1번부터 3번까지 혼자 다 하다시피 했고, 나머지 두 명의 선수도 속공과 3점슛을 곧잘 넣어주는 등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연세대"
1.유재학 2-4.정덕화 한만성 5.고명화
이 팀의 선수 구성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추계대학대회에서 중앙대에게 1패를 안겨줌으로서, 중앙대-고려대와 함께 3팀 공동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최강 포인트가드 유재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무도 이 팀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밖에 스카우트파동으로 조기 은퇴한 (농구계의 김종부) 이민현을 보유한 기업은행이 비교적 강했고, 산업은행과 한국은행도 에이스 한명씩을 보유하고 한방을 노리는 상황이라 만만치는 않았습니다.(한국은행 에이스는 오동근인데, 산업은행 에이스는 기억이 안나네요... 정인교였던가?)
이 해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는 별로 인상적인 경기를 못하고 금방 탈락해 버렸고, 중앙대 역시 삼성 및 현대와의 대결에서 영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삼성은 강력한 인상과 팔꿈치를 자랑하는 임정명을 비롯하여 조동우와 안준호 등 인사이드 멤버 모두 몸빵이 되는데다가 공격력도 상당히 갖추고 있어서 중앙대의 공포의 트윈타워조차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는 없었고, 외곽에서는 전자슈터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현대는 이충희 외에도 박수교와 이원우까지 신들린 샷을 날려대고, 이문규가 골밑에서 나름대로 궂은 일을 잘 해 주면서 중앙대를 셧아웃시켰습니다.
그에 반해 고려대는 삼성을 한 번 잡았고, 현대와도 매 경기 피말리는 접전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아쉽게도 농구대잔치에서조차 중앙대와의 맞대결에서는 승리를 챙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해는 3차대회 6강리그를 마치고, 준결승 없이1-3차대회 승점으로 상위 2팀이 결승을 치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현대가 삼성에게 지난해의 패배를 설욕하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시절 뛰던 분들중 상당수가 현재 감독으로 경쟁중인 것 같군요... 김진 감독이 스승인 박한감독의 뒤를 이어 명장의 반열에 오르기를 기원합니다. 물론 스승의 단점은 닮지 마세요!!
첫댓글글쓰신 님의 놀라운 기억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도 그당시 고려대를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제 기억으로는 전창진 감독은 경기에 자주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중철 선수가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김윤호 선수(192센치로 기억합니다) 가 신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중앙대의 트윈타워에 놀라운
주시기 바랍니다..) 85~86 농구대잔치는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이 현대 : 삼성이 아니라 현대 : 중앙대였습니다.. 2차대회에서는 중대가 현대에게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했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현대가 2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었죠.. 중대가 당시 현대나 삼성에게 상대전적에서 다소 열세였지만, 간혹 이길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질때는 큰 점수차로 지더군요.. 아직 나이들이 어려서 경험부족을 드러냈었죠.. 중대 감독님께서도 자주 흥분하셨고..ㅋㅋ 암튼 허재가 입학한 85년부터 중대는 대학무대를 평정했었고 이듬해 강동희가 입학하면서 더이상 할 얘기가 없어지죠.. 하지만 전 그당시 중대보다 고대가 더 좋았답니다^^
반갑습니다... 84년이나 86년에 있었던 일들과 혼동이 되어 정확치 않은 내용이 많이 포함되었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제가 쓴 내용대로입니다. 박경영은 졸업후 삼성전자로 간 이후 거의 종적을 감추었지만, 대학때는 확실히 주전이었고, 강정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맹활약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대:중앙대의 결승전은 다음해, 즉 86년 농구대단치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씀을 들으니 85-86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가물가물... 하여튼 이때의 중앙대는 완전히 완성된 팀은 아니었고, 한기범이 나가고 강동희가 들어오면서부터 삼성전자를 완벽하게 제압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나는군요...
허재 들어오기 직전인 84년도에는 고려대가 주로 우승을 많이 했었고, 이때는 전창진(2학년)이 주전이었던 같습니다... 단, 85년도 주전은 확실히 양중철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1학년 허재도 대단한 선수긴 했지만, 정말로 무서웠던 건 김유택이었다고 봅니다. 더구나 옆에 한기범까지 있다니... 아이쿠..
이장수 선수 참 입이 멋진 선수였죠.(스티브 부세미도 입이 튀어나온 분인지...?) 당시는 신장이 190이 넘으면 무조건 센터인 시절인데, 이장수는 점퍼가 정확한 외곽플레이어였던 것 같습니다. 현대 센터는 84년까지는 박종천이 주전이었는데, 85년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나지만, 이장수가 아니었던 건 확실합니다.
첫댓글 글쓰신 님의 놀라운 기억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도 그당시 고려대를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제 기억으로는 전창진 감독은 경기에 자주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중철 선수가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김윤호 선수(192센치로 기억합니다) 가 신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중앙대의 트윈타워에 놀라운
파이팅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나지만, 중앙대와의 대결에서 고대가 거의 이기지 못하죠.. 물론 당시 1학년이었던 허재의 존재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허재가 입학하기전에 고대는 대학무대에서 중앙대에 고전은 했었지만 거의 최강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제가 틀렸다면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85~86 농구대잔치는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이 현대 : 삼성이 아니라 현대 : 중앙대였습니다.. 2차대회에서는 중대가 현대에게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했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현대가 2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었죠.. 중대가 당시 현대나 삼성에게 상대전적에서 다소 열세였지만, 간혹 이길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질때는 큰 점수차로 지더군요.. 아직 나이들이 어려서 경험부족을 드러냈었죠.. 중대 감독님께서도 자주 흥분하셨고..ㅋㅋ 암튼 허재가 입학한 85년부터 중대는 대학무대를 평정했었고 이듬해 강동희가 입학하면서 더이상 할 얘기가 없어지죠.. 하지만 전 그당시 중대보다 고대가 더 좋았답니다^^
한가지 질문하나만 더! 중대 베스트 5에 3번 박경영 선수가 아니라, 장일 선수 아니었나요?
반갑습니다... 84년이나 86년에 있었던 일들과 혼동이 되어 정확치 않은 내용이 많이 포함되었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제가 쓴 내용대로입니다. 박경영은 졸업후 삼성전자로 간 이후 거의 종적을 감추었지만, 대학때는 확실히 주전이었고, 강정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맹활약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대:중앙대의 결승전은 다음해, 즉 86년 농구대단치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씀을 들으니 85-86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가물가물... 하여튼 이때의 중앙대는 완전히 완성된 팀은 아니었고, 한기범이 나가고 강동희가 들어오면서부터 삼성전자를 완벽하게 제압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나는군요...
허재 들어오기 직전인 84년도에는 고려대가 주로 우승을 많이 했었고, 이때는 전창진(2학년)이 주전이었던 같습니다... 단, 85년도 주전은 확실히 양중철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1학년 허재도 대단한 선수긴 했지만, 정말로 무서웠던 건 김유택이었다고 봅니다. 더구나 옆에 한기범까지 있다니... 아이쿠..
박수교... 박종천... 김진... 유재학... 윽 그시절을 보지는 못했지만 상상의 나래가 새록새록...
최철권 후덜덜
잘 읽었습니다. 다만 박종천은 주전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현대 포스트는 이문규-이장수(영화배우 스티브 부쉐미 닮은 분)가 지키다 최병식-이호근으로 갔던 것으로..
이장수 선수 참 입이 멋진 선수였죠.(스티브 부세미도 입이 튀어나온 분인지...?) 당시는 신장이 190이 넘으면 무조건 센터인 시절인데, 이장수는 점퍼가 정확한 외곽플레이어였던 것 같습니다. 현대 센터는 84년까지는 박종천이 주전이었는데, 85년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나지만, 이장수가 아니었던 건 확실합니다.
전 최병식, 이호근선수부터 농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ㅎㅎ 엄청나게 터프하신 두분이죠 ㅎㅎ
터프하신 분들이라면 삼성의 손영기-서지태가 생각나는군요.. 손영기:"허재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서지태:"진위저(김유택), 한지판(한기범), 다주거따. 씨팔러마(식사하셨슈)"
아 그때 작은아버지께서 농구를 엄청 좋아하셔서 농구 대잔치하면 경기장 앞에서 텐트 치고 자고 그랬었는데 ㅎㅎ 언젠가는 그런 날이 다시 오겠죠 ^^ 삼성과 현대가 한판 붙는 날이면 완전 전쟁이였죠 ㅎㅎ
최철권도 지긋지긋한 무릎때문에..ㅋ저당시 박종천이 주전 맞구요 박종천이 무릎부상으로 쉬는동안 김성욱 최병식이 기아에 대응하는 유일한 더블포스트로 자라다말죠..ㅠㅠ이문규가 훗날3점을 장착하지만 저당시엔 거의 블루워커 인사이더였죠!!
코트의 영감ㅋㅋㅋ
임달식은 허재 아구리 멕인 선수 아닌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