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km 꽂는 日, 150km도 벅찬 韓… 마운드 ‘스피드 혁명’ 절실
[우물 안 한국야구]
2009년 WBC 구속 차이 ‘0.6km’… 올 대회선 ‘7.6km’ 크게 벌어져
日, 탄탄한 기본기-선진 기술 도입… 스피드에 제구력도 갖춰 ‘세계 최강’
韓, 외국인 의존 시스템부터 바꿔야
2009년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한국 투수들의 패스트볼 계열 평균 속도는 시속 146.3km였다. 8강 진출국 중 2위로 선두 일본(평균 146.9km)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 대회에서 일본이 우승, 한국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14년이 지난 2023년 제5회 WBC에서 일본 투수들은 패스트볼 평균 시속 153.5km를 기록했다. 도미니카공화국(평균 153.7km)에 근소하게 뒤진 2위다. 한국은 145.9km로 오히려 퇴보했다. 대회에 참가한 20개국 가운데 16위에 머물렀다.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에 속했던 호주(17위·144.7km), 체코(19위·139.6km), 중국(20위·138.4km)을 앞섰을 뿐이다.
올해 WBC에서 일본은 2006년, 2009년에 이어 통산 세 번째 정상에 올랐다. 반면 한국은 2013년, 2017년에 이어 3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한때 일본 야구는 한국을 ‘숙적’이자 ‘라이벌’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라이벌로 불리기에는 수준 차가 너무 크다. 이제 한국과 일본의 패스트볼 속도 차이(7.6km)가 한국과 중국의 차이(7.5km)보다 크다.
● 뛰는 일본, 기는 한국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올해 WBC에서 일본 투수들의 스피드와 구위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투타를 겸업하는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와 지난해 일본프로야구에서 퍼펙트게임을 작성한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는 가볍게 100마일(약 161km)을 넘겼다. 두 투수는 이번 대회에서 100마일 이상의 공을 모두 58번이나 던졌다. 이들 외에도 일본 투수들 대부분이 150km대의 패스트볼을 구사했다. 한국 투수 중에서는 이의리(KIA)와 곽빈(두산)이 150km대의 공을 던졌다. 하지만 제구가 전혀 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못하는 빠른 볼은 무용지물이다.
일본 투수들의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반면 한국 투수들의 탄착점은 오른쪽 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치우쳐 있다(그래픽 참조). 제구에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이 많았다. 한때 160km의 빠른 공을 던졌던 한기주(은퇴)는 “160km를 던질 때는 한가운데만 보고 던졌다. 공이 코너로 향하면 아무도 못 치는 공이 되곤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구속이 전부는 아니다. 류현진(토론토)은 LA 다저스 시절이던 2019년 140km 중후반대의 패스트볼에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MLB 전체 평균자책점 1위(2.32)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류현진조차 패스트볼에 힘이 떨어지면 변화구의 위력이 반감되며 난타당하곤 했다.
● 외국인 투수에게 의존하는 한국 야구
대회 개막 전부터 한국 투수진은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들었다. “언제까지 광현종이냐”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김광현(SSG)과 양현종(KIA)을 뽑아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난해 평균자책점 10위 가운데 7명이 외국인 투수였다. 구단들도 젊은 투수를 육성하기보다는 즉시 전력으로 활용 가능한 외국인 투수 선발에 열심이다. 수도권의 한 구단 스카우트는 “현재 KBO리그는 외국인 선수의 활약 여부에 따라 순위가 갈린다. 대부분 팀의 ‘원투펀치’가 외국인 투수들이다. 한국 야구의 미래가 더 어둡다”고 말했다.
일본은 정반대다. 지난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평균자책점 5위 안에 든 10명은 전원 일본 투수였다. 외국인 선수들은 주로 불펜 투수로 나섰다.
비슷한 체격 조건에도 일본 투수들이 더 빠르고 정확한 공을 던지는 것은 잘 갖춰진 기본기에 ‘트래킹 시스템’ 등 각종 선진 기술들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미국전 선발로 나섰던 왼손 투수 이마나가 쇼타(DeNA)는 178cm의 신장에도 150km대 초반의 빠른 공을 던졌다. 고교 시절 140km대였던 패스트볼은 프로 입단 후 유연성 운동과 근력 강화에 집중하면서 더 빨라졌다.
한국 야구에도 최근 들어 150km대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다듬어 제구와 스피드를 고루 갖춘 투수로 성장시키느냐 하는 것이 한국 야구 앞에 주어진 과제다.
이헌재 기자
美야구, NASA학자 영입… 日은 MLB 접목 “한국, 2008년 올림픽 金에 취해 외딴섬 돼”
[우물 안 한국야구]
한국야구, 2026년엔 웃을 수 있을까 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B조 한일전에서 4-13으로 패한 뒤 경기장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한국 야구가 뒷걸음치는 동안 세계 야구는 외연 확장에 성공하면서 한국 야구는 더 큰 어려움과 마주하게 됐다. 도쿄=뉴시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야구의 세계화’다. 실제로 다른 종목과 비교해 국가대표 팀끼리 맞붙는 국제대회가 많지 않은 종목 특성상 WBC는 각 나라의 ‘야구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기도 했다.
2006년 초대 대회와 2009년 제2회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이 선전하면서는 미국에서도 ‘동양 야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MLB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과학자, 경제학 박사 등을 영입해 데이터 분석을 진행한 뒤 원래 장점인 ‘힘’으로 동양 야구를 누르기로 했다. MLB 타자 사이에 ‘뜬공 혁명’ 붐이 일면서 홈런이 쏟아지게 된 이유다. 그러자 투수들도 시속 160km 이상으로 구속을 끌어올리는 ‘스피드 혁명’을 통해 타자들에게 맞섰다.
제1, 2회 대회 챔피언 일본도 3, 4회 대회에서 푸에르토리코(미국령)와 미국에 무릎을 꿇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일본은 ‘기(技)의 야구’에 MLB의 장점인 ‘빅볼’까지 접목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일본 야구계에서 장거리 달리기, 지옥 훈련이 차지하던 자리를 웨이트트레이닝과 스트레칭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스즈키 이치로(50)와 오타니 쇼헤이(29)가 이 변화를 보여준다. 이치로는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장타력을 포기했다. 그 대신 안타 치고 도루하는 ‘동양 스타일’로 MLB 무대에서도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따낼 수 있었다. 반면 오타니는 시속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고 홈런을 펑펑 쳐내는 ‘미국 스타일’로 MVP에 올랐다.
그 사이 한국 야구계는 WBC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금메달)에서 따낸 성적에 취해 ‘외딴섬’이 되고 말았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일본은 선수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다 보니 야구하는 사람 다수가 해외에서 건너온 이론이나 방법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교 다닐 때 교과서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은퇴하고 코치를 한다. 그러면서 본인들만 야구를 아는 것처럼 외부인들을 배척하다 보니 세계 야구와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황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