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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카페 게시글
자유토론 스크랩 "부러진 화살" 영화는 실제보다 더 잔혹했다.
가는 세월 추천 0 조회 29 12.01.26 18:2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김명호 교수가  판사에게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을 들고 송파에 있는 박판사의 집에 찾아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험문제의 오류를 지적 했다고 해서 사학 재단과 파워 엘리트 집단의 과오를 덮으려는 거대한 악의 무리들과의 싸움의 본질이다.

 

교수집단, 재벌, 사학재단에서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는 수학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적 사고와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거대 권력에 분노 한 것이 사건의 출발 일 수 있다.

 

실제 사건이 터지고 본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연대를 했으나 의식의 편차에서 행동이 통일 되지 않은 점도 있다. 김명호 교수카페의 운동에 대한 의식의 차이로 인하여 편를 가른  것도 파워 엘리트들이다.

 

김명호 교수의 투쟁에 연대 했던 사람들은 해고 노동자, 택시노동자, 사법피해자 모임, 일반 시민등이 있다. 택시노동자들이 왜 이 투쟁에 연대를 하면서 송파 경찰서, 서초동 법원,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주도 하면서 김명호 교수 투쟁이 사법개혁으로 발전 하기를 간절히 원 했던 것이다,

 

초롱이라는 여자분은 대법원 앞에서 소복을 입고 1인 시위를 하고 택시노동자들은 집회를 하면서 본 문제가 국민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했지만 찬잔속 푹풍에 지나지 않은 점은 애석하기 그지 없다.

 

법의 존재가치가 가진자의 무한한 욕망을 보호 해주기 위해서 존재하지만 석궁사건은 법의 존재가치가 소수의 가진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음를 국민에게 인식 시켜주기에 충분하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탐욕의 질서속에 야만적 욕망을 추구하는  사회 인가를 가늠케 하는 사건 이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법 피해자중 가장 처절하게 법에 대한 감정이 나쁜 계층이 노동자 세력 일 것이다.

 

이 때 당시 용산 구청에서는 가난한 철거민들이 할머니가 단식을 80여일 했으며 오만한 용산 구청장의 행정 권력은 건설자본의 이윤을 위하여 도를 넘는 탄압이 진행 되고 있었다. 택시노동자와 해고 노동자들이 두 운동을 연대 하면서 김명호 교수를 위하여 특별면회를 했고 성동구치소에서 인권 탄압에 의한 집회 투쟁도 하였다.

 

어느날 김교수를 면회 갔는데 단식 중이라고 했는데 김교수가 일반 시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단식중에 교도관이 주는 요구르트를 먹었던 것이었다. 투쟁에 대한 기본적 인식도 없는 한 수학도가  현?사회에서 벌어지는 비과학적 사고가 진리가 되는 순간에 김명호 교수의 사고체계의 혼란이 심했을 것이다. 또한 필자가 법이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김교수는 법은 잘되어 있는데, 법을 운영하는 "쓰래기 같은 판검사가 문제라고 하면서"  대답에 "대한민국의 법은 잘못 되었다고 하자"!가르치려는 부분을 보면서 지식이 많은 교수들은 가르치는게 습관화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워지지 않는다.

 

분노한 교수와 법을 아는 박변호사와의 만남이 있기전에 박찬종변호사가 변호를 맏았는데. 법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갈등이 초래 한 부분을 보면 변호사 직업이 법의 테두리내에서 문제를 해결 하려는 점이 강하다는 생각이드는 점은 도데체 법은 합리적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영화내용을 보면 흥행적 요소로 왜곡된 부분이 있지만 김교수의 투쟁은 모순과 이성에 대한  처절한 투쟁이 었다. 영화 보다 더 잔혹한 사법권위를 지키려는 법조인들과 이성에 동의된 조직환 되지 않은 노동자 시민이 연대를 한 사회적 투쟁 이었다. 사법피해자 모임의 일괄된 투쟁 전선을 형성 하지 못한 부분은 각 개인의 탐욕이 내재된 자신만의 문제 해결을 최우선적으로 생각 했기 때문이다, 사법 피해자 한분이 증거조작으로 수십억대의 재산을 강탈 당했는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자문을 해달라고 하길래 좋다.응했지만 승소하면 수억의 돈을 준다기래 사양하고 그냥 소주한잔이면 됩니다. 한 사래가 있다. 사법피해자 주변에 사건 브로커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건을 수주하려는 이중적 행동과 법원에서 파견한 프락치들이 많존재 하는 것을 보면서, 법제처에서도 김교수의 투쟁이 확산 시키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카페지기의 자기중심적 문제 해결방식에 조직을 분열 시키고 반대 하는 사람들을 카페 출입정지 시키는 무소 불위의 행동을 보여 준적이 있다.

 

김교수를 면회 하면서 이문제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본질이 노동자를 착취하여 소수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과의 투쟁이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김교수의 철학적 한계에 단순 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연대를 하면서 해고노동자들에게 따스한 밥을 사준 이도 이었고 가슴에서 울어 나오는 분노에 호프지에서 토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동료들인 교수 집단에서는 한번도 연대 하지 않았고, 교수라는 집단도 경쟁이 주도하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처신하는 지식을 파는 장사치에 불과 하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이 땅의 수 많은 사법 피해자가 있고, 이들을 조직화 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탐욕의 경쟁 구도에서 자신 만이 살고픈 마음에서 기인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재판과정에서 항의 하다 감치 받는 것도 해고 노동자였다.  겨란을 투척 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또한 투쟁 쪼끼를 입지 못하게 하는 법원의 행위가 법을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법원이 법을 어기는 것은 이 땅의 법이 사법권을 지키는 권위 의식에서 인간의 평등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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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27 08:39

    첫댓글 다음에는 박판사가 본인 스스로 가슴에 석궁을 꼽을 수있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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