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영도 : 시조시인. 호는 정운(丁芸).
경상북도 청도(淸道) 출생. 시조 시인 이호우(李鎬雨)의 여동생이다.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가는 고유의 가락을 시조에서 찾고자 노력하였으며,
간결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정운 이영도는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고 홀로 되어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부임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의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남보다 피가 뜨거운 서른 여덟 살의 청마는
스물 아홉의 청상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은 大地 처럼 까딱 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 이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3년 동안 편지를 쓰고 시를 써댔다.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 않던 정운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으니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 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달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1967년 2월 13일 저녁,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붓을 영영 놓게 된 것이다.
통영 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
그녀는 일찍이 결혼하여 21살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기르고 있었다
청마는 1947년 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 사랑은 시작됐으나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청마는 1967년 2월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 편지를 계속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 것은 전쟁때 불타 버리고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정운은 시전문지 '현대시학'에 '작품상' 기금으로 기탁 운영해 오다 끝을 맺지 못하고
1976년 3월 6일 예순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뜬다.
.
탑(塔)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이영도 정운 선생이 1976년 예순의 나이로 타계한 뒤 무남독녀 박진아씨가 유품을 정리하니
미리 써둔 유서가 나왔고 유서에는 딸에게 사위에게 외손에게 부탁하는 말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죽음을 알릴 사람의 이름과 화장해 달라는 말,
그리고 장례비에 써달라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남에게 신세지기를 꺼리고 신세를 지면 갚으려고 하는 분이었기에 당신의 죽음 역시
비록 딸이지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였던 모양이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경남 통영시에서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정운 선생이
청마 유치환과의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이다.
첫댓글 하늘구름아...
문학소년 가토야
그리미는 ..
이미
문학 소녀이던데~^^
사랑
우체국
편지
고독
정향
그리움
하염없이...등등..
잊고 살았던 청춘의 단어들을 이곳에서 만나네*
선희야
너도
예술하는 사진 올려봐
선희 친구가
써놓은 단어들이
새삼스럽게
따스하게 와닿는다 .. ^^
정말이지 언제 들어도 읽어도 좋은 명시죠
누가 또 이러한 아름다움으로 이쁜시를 노래 할련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했노라
파도야 파도야 어쩌란 말인가 님은 꼼짝도 안는데....
정말 몸살나는 그리움들입니다 ㅎㅎ
구름아 고마벼
덕분에 좋은 명시에 다녀 간다
탑(塔)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내본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네
내가
우체국을 갈땐 안 좋은 일들로...
공사대금이나
물품대금을 안주는 회사를
상대로
내용증명 보낼때만 가고 있다보니
낭만은 사라지고
악닥구니만 남는구나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략 ..
봄비사랑의
안 좋은 기억들이
이 시를 통해
좋은 기억으로 치환되기를~
좋은글 접하고 가네~
행복한 밤 되소서~
갑자기
회자정리 라는
친구가 생각나네 ..
좋은 글과
멋진 사진들을
올리곤 했는데 ..
다시
그럴 수 있기를~
우표사서
침발라 많이부쳤는데
소통할수있는게
그거밖에없으니
옛추억소환잠시
이런사랑이있었으니
이렇게 좋은시로
남아서 추억도새록새록
~
청마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 행복
젊은 날
행복이란 시를 공감하며
한때를 살았었는데
감성도 감정도
모두 퇴색해버린 지금의 내 모습
정운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시를 좋아하는 하늘구름 친구
자네가 어떤 친구인지
보고 싶다네...
하루종일 컴앞에서
온갖 詩 를 읽은 적이 있었네...
때로는 영롱하게
때로는 몽롱하게
때로는 진취적이게
때로는 게으르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환희에 차게
다가오는 詩 한구절이
배고픔도 졸음도 잊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