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드리나이다.”(10,21)
철부지로 살아가는 행복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인 메시아 위에 주님의 영, 곧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이 머물게 될 메시아 시대를 노래합니다(11,1-2). 그 시대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왔고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유다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잘 지키지 않는 무식한 철부지들인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보여주신 하느님께 기쁨 가운데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루카 10,21).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며 신뢰와 존경을 드러내시고,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 고백하며 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십니다(10,21).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주도권을 인정할 때 순수하고 참된 감사가 우러나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10,21) 하시며 당신이 행하신 모든 업적을 하느님께 돌려드립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0,22).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알아보지 않고서는 행복을 누릴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들에 비추어 삶을 성찰해봅니다. 지식정보 시대인 오늘날처럼 수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유익하고 필요한 것처럼 보여도 탐욕과 타락을 부채질 하는 정보도 많고, 왜곡되거나 그릇되고 거짓된 정보들도 넘칩니다. 이런 지식들이 진정 하느님을 보는 눈을 열어주고 사랑의 지혜를 깨우쳐주지 못합니다. 영적 지혜도 자기만족과 이득을 얻는데 악용되기도 합니다.
마치 환자가 인터넷에서 본 의학상식과 정보를 가지고 의사에게 따지듯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두뇌 게임’을 하거나, 하느님의 힘이 아닌 세상 지식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되짚어보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더 열심히 추구해야 하는 건 하느님을 아는 지혜임을 상기해야겠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려면 참으로 그런 세상의 지식들을 내려놓는 무장해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3,19) 하느님 앞의 철부지란 성 프란치스코처럼 복음 말씀을 해석 없이 단순하게 받아들여 철저히 사는 그런 순수함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은 자신이나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살기에 주님의 영이 그 위에 내리는 메시아의 시대를 '지금, 여기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철부지들은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며, 자신이 행하거나 이루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도구삼아 이루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를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행하시므로, 어떤 순간에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길 줄 아는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행복한 철부지일 것입니다.
머리속을 채우는 지식과 경험의 껍데기 속에 갇힌다면 번민과 걱정 근심, 그리고 욕망의 회오리에 휩싸이고 말 것입니다. 세상 지식 뿐 아니라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교만은 더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10,23)라는 예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행복한 철부지가 되어 주님을 기다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