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네가 해라
류현우
말이 참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향해 입을 열기 전, 나는 늘 한 박자 늦추려 애쓴다. 지적은 생각보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가볍게 던진 한마디가 화살이 되어 되돌아올 때가 많다.
“그럼, 네가 해라.”
이 짧은 문장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상대를 향해 겨눈 비판의 날 끝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되돌아온다.
살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일의 순서가 꼬여 있거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틀렸다’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단정 속에는 상대가 기울인 수고와 보이지 않는 사정을 단번에 지워버리는 무심함이 숨어 있다.
물론 필요한 지적도 있다.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고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순간이 그렇다. 문제는 ‘지적질’이다. 상대를 돕기보다 우위에 서려는 마음, 이해하기보다 판단하려는 태도. 듣는 이는 금세 안다. 이 말이 나를 위한 조언인지, 아니면 말하는 이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인지를. “그럼, 네가 해라”라는 반발이 튀어나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 말 속에는 억울함과 자존심, 그리고 무시당했다는 서운함이 얽혀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만히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과연 그 자리에 서서, 같은 조건으로 그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 내 비판은 설 자리를 잃는다.
마음에 차지 않고 눈에 거슬리는 순간일수록, 때로는 침묵이 더 큰 울림이 된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가 스스로 깨달을 시간을 존중할 뿐이다. 타인의 훈수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훨씬 깊고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지적 대신 질문을 건네려 노력한다. “혹시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라는 한마디는 “틀렸습니다”라는 단정보다 훨씬 부드럽게 다가간다. 상대를 낮추지 않으면서도 함께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그 작은 차이가 관계의 결을 바꾸고 마음을 살린다.
결국 말은 타인을 베는 칼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여야 한다. 오늘도 나는 입술을 다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이 정말 상대에게 필요한 말인가, 아니면 그저 내 욕심에서 비롯된 조급한 말인가. 그 짧은 질문 하나로, 나는 오늘 또 한 번 입을 닫고 마음의 다리를 놓는다.
첫댓글 역시 류성룡의 후예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올리실지 기대 됩니다.
고마버예~~^^
조 선생님^^
"결국 말은 타인을 베는 칼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여야한다."
류현우 선생님의 글 중 위에 문장에 눈길 마음길이 멈췄습니다.
저 보고 쓰신 글 같습니다.
깨우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 선생님~^^
부족한 글에서 마음의 다리를 발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그 문장은 타인을 향한 글이기도 하지만, 저 자신에게 했던 경계의 말이었습니다.
제 글이 선생님의 눈길과 마음길에 따뜻한 다리가 된 것 같아 내심 흐뭇합니다. 건강하고 다정한 날들 보내셔요.^^
앞으로 '관계의 결을 바꾸고 마음을 살리는 말' 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맞아요.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