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다.
1347년,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하게 된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된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
(프랑스어: 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한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 섯 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