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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계의 신화적 존재, 이소룡李小龍...브루스 리...
검정색 줄무늬가 들어간 노란색 쫄쫄이 트레이닝복은 쌍절곤과 함께 브루스 리, 즉 이소룡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다.
(노란색 쫄쫄이 트레이닝복의 정식 명칭은 점프 슈트Jump Suit다.)
영화 <빌을 죽이라! Kill Bill>에서 우마 서먼이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이 노란색 쫄쫄이를 입고 등장해 젊은 세대에게도 눈에 익은데...
쿠엔틴 타란티노와 유하가 이소룡의 광팬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노란색 쫄쫄이 패션은 이소룡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왼쪽 : 영화 <빌을 죽이라! Kill Bill>의 우마서먼)
왜 이소룡이 지금 보아도 좀 많이 튀고 어떻게 보면 유아틱(?)해 보이는 노란색 쫄쫄이 트레이닝복을 입었을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찌보면 촌스럽기 짝이 없는 개나리 꽃빛
노란색 쫄쫄이가 태어난 배경을 밝히기 전에 먼저...
이소룡 영화는 언제 처음 한국에 상륙했을까? 이소룡의 첫번째 작품은 <당산대형>이지만 이 영화보다 먼저 <정무문>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처음 한국에 소개된 이소룡 영화 <정무문>
이소룡이 사망한지 일주일이 지난 1973년 7월 27일. 지금은 사라진 피카디리 극장에서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이소룡이 아직 국내에서 유명해지기 전이다. 한자 표기 옆에 <리 샤오룽>이라고 씌여있다.
'개봉 급박!' 좀 웃기는 표현이지만 이 시대 광고 카피가 이랬다.
영화 <정무문>은 이소룡이라는 위대한 무술가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지만
또 하나 듣도 보도 못한 흉악한(?) 무기가 하나 탄생하는데 바로 쌍절곤이다.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처음 선보인 쌍절곤’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한쪽에 봉을 쥐고 힘껏 휘두르면 다른 쪽 봉의 파괴력은 무려 700kg에 육박한다.
사실 쌍절곤은 원래 무기가 아니라 오키나와에서 벼 타작할 때 쓰는 도리깨였다.
오끼나와 원주민들이 일본인의 침략에 대항해 그곳 절에 사는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쿵푸와 접목시킨 무기가 마로 쌍절곤이다.
일본의 ‘가라테’라는 무술도 한자어로는 ‘당수唐手’ 즉 굳이 번역하자면 ‘중국인의 손’이다.
나중에 빈손, 즉 공수도空手道라는 이름으로 변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태권도의 원류도 실은 일본 가라테다. 우리 고유의 무술 ‘택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원류를 따지고 보면 결국 쿵푸가 원조임이 분명하다.
첫번째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두번째로 개봉된 <당산대형>
한국에서도 이소룡의 진가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무문>이 개봉된지 석달만에 이소룡의 첫 출세작 <당산대형>이 개봉된다.
잠시 개봉 당시의 광고 카피를 살펴보자!
"불세출의 쾌남아!", "이소룡의 대표거작!"
"세계를 주름 잡는 희대의 무술왕 <이소룡>의 새 시대가 왔다!"
"감히 이 사나이에게 도전할 자는 누구인가?
희대의 카피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당시 극장 입장료.
조조 280원 일반 330원 !!!
단, 문예진흥기금 별도다.
<당산대형>은 1973년 10월 28일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했다.
정확히 일 년 뒤 이소룡의 세번째 작품 <맹룡과강>이 '대개봉'된다.
이소룡이 사망한 후 1년이 지난 후다.
1974년 10월 피카디리 극장 개봉
"이태리 로마 현지 로케"
"이소룡 영화의 고별작"
라고 광고했지만 물론 두 작품이 더 남아있다. 척노리스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 이후 아이들의 '마빡'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소룡 광풍이 불기 시작한 것.
바야흐로 코흘리개들에서 멍게처럼 여드름이 성성한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쌍절곤'은 '사나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골목에선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리 .... '아비요!~~'
애비를 부르는 난데없는 소리에 애비들은 뒷통수가 깨진 아이들을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소룡 쌍절곤 특수에 병원 외과만 신이 났다.
그야말로 쌍절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쌍절곤은 당시 쿵푸 스타를 꿈꾸는 '무술 소년'들의 아이콘이었다.
명실상부한 이소룡의 대표작이다.
순서로 따지면 <맹룡과강>이 먼저 제작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마지막 작품인 <용쟁호투>가
<맹룡과강>보다 앞서 1973년 12월말 ‘X마스, 신정특선 프로’로 개봉된다.
이 영화는 이소룡 영화의 종결자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이소룡 영화로는 처음으로 개봉된다.
"명우名優는 가도 명연名演은 남는다.”
라는 광고 문구가 이색적이다.
드디어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어 1978년 5월 한국에서도 개봉된다.
이 영화는 이소룡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을 때 이소룡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영화는 미완성으로 남을 운명이었지만 돈벌이에 급급한 영화 제작자들이 대역 배우를 쓰고
앞 뒤도 연결 안되는 시나리오를 짜깁기해 그야말로 최악의 저질영화로 만든다.
이 영화는 고인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었다.
사망유희의 한 장면
이소룡이 직접 제작을 맡은 이 영화의 출연진은 아주 독특하다.
미국의 NBA 농구 선수인 카림 압둘 자바가 출연하다.
카림은 밀워키 벅스와 LA레이커스의 에이스 센터로 활약한 역대 최고의 농구 스타였다.
카림의 신장은 무려 2m가 넘었는데 이소룡과 무려 60cm나 키차이 났다.
카림 압둘 자바와의 결투 장면은 <사망유희>를 구상하던 단계에서 이미 촬영되었다.
<사망유희>는 이소룡이 탑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1층에서 5층까지 차례로 고수를 만나 결투를 하는
줄거리의 영화다.
카림 압둘 자바는 마지막 5층의 최종 결투장면에서 등장하는 거인이다.
만약 지금 제작된다면 최홍만이 그 역을 맡았을 텐데...
어쨌든 바로 이 장면에서 그 유명한 노란색 쫄쫄이 트레이닝복이 등장한다.
시중에서 파는 저질 노랑 쫄쫄이
이소룡의 대표적인 사진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노란색 쫄쫄이.
어느 누구도 감히 소화해내기 힘든 노란색의 검은 줄무늬 점프 슈트를 과연 누가 생각해낸 것일까? 이소룡 자신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좀 더 시계를 앞으로 돌려야 한다.
이소룡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모두 홍콩에서 보냈다.
그은 유명한 길거리 싸움꾼이었다. 한마디로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였다.
10대 후반으로 구성된 ‘호랑이파’를 조직해 아무런 목적과 이유 없이 싸움을 하고 다녔다.
한편으로 엽문 사부의 문하에 들어가 영춘권을 사사받았다.
오로지 싸우기 위해 무술을 배운 것이지만 많은 무술의 고수들이 그렇듯...
이소룡 또한 무술 수련을 통해 인생의 깊은 의미를 하나씩 깨달아간다.
이소룡의 집에서는 학교보다는 교도소에 갈 가능성이 높은 이소룡을 미국에 보내기로 하는데...
이소룡도 뭔가 자신의 미래에 생각한 바가 있었던지 1959년 미국행을 선택한다.
미국 시애틀에 정착한 이소룡은 그곳에서 ‘준판쿵푸도장’을 연다.
아내인 린다 에머리와 만난 곳도 이 도장이다.
이소룡은 제자들에게 도복보다는 평상복을 입도록 했다.
철저히 실전을 중요시하는 이소룡은 실제 싸울 때는 도복보다는 평상복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망유희 이전의 작품을 잠깐 살펴보자
그의 대표작인 용쟁호투의 한 장면이다.
두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이소룡은 상체 근육이 드러나는 런닝셔츠나
아니면 이처럼 맨몸 스타일로 즐겨 출연했다.
이소룡은 무술을 쿵푸로 시작했지만
쿵푸의 여러 문파의 권법은 물론 킥복싱과 권투, 가라테
심지어 필리핀의 전통 무예 에스크리마에 이르기까지
실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술이라면 문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절권도切拳道는 이소룡 자신이 만든 문파다.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무술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다.
그는 무술의 체계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맞는 것을 감각에 맞게 받아들이는 것이 '절권도'의 핵심이었다.
나중에는 '절권'이라는 이름 자체도 후회했다고 말한다.
이소룡에게 도복이나 전통 따위가 중요할리 없었다.
<사망유희> 촬영시 카림과 함께 취한 포즈
그의 제자인 댄 이노산토는 유작 <사망유희>에서 노란 점프 슈트를 입은 것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그(이소룡)는 전통에서 비롯된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모든 배우가 그렇지만 이소룡도 자신에 대한 확신 신념이 남달랐다.
카림 압둘 자바와의 대결 장면에서 카림의 가슴께 밖에 오지 않았던 키와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현실적 방법으로 노란 슈트를 착용했을지도 모른다.
이소룡이 노란 슈트를 입게된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남이 하지 않는 길, 어떤 새로운 길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과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참고자료 : <이소룡, 세계와 겨룬 승부사 Fighting Spirit> 블루스 토마스/ 류현 역)
첫댓글 하피즈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존경하는 무술인이죠 ^^
아..... 절권도가 이소룡이 만든 거군요. 잘 읽었습니다.
이소룡 짱....
역시 이소룡 ㅡㅡ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