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8/0000923556?sid=103 전 세계에서 학계라는 모호한 집단명칭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집단은 한국 역사학자들이 유일하다. 이들이 말하는 학계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계를 뜻한다는 것은 이제 전국의 많은 역사시민운동가들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건재하다. 전국 각 대학의 역사학과와 국고로 운영되는 역사관련 국책 기관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뿌리가 너무 깊고 넓어서 뿌리뽑기가 쉽지 않다.
위 글은 한국 역사학계의 문제점과 일제 강점기의 역사 왜곡, 그리고 현대 역사학계의 한계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 학계'라는 용어의 문제 한국 역사학자들은 '학계'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함.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일본 극우 논리인 '임나일본부설'을 반영한 사례가 있음. '학계'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집단으로 지적됨.
2.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비판 한백겸의 저서가 삼한의 강역을 한반도 남부로 축소한 점에서 비판받음. 최치원, 김부식 등이 고구려와 삼한의 연결성을 주장한 것과 달리, 한백겸은 이를 부정. 이는 일본 식민사학의 기반이 되었고, 현재 한국 역사학계에서 이를 계승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됨.
3. 정약용의 '강역고' 한계 정약용은 한사군의 낙랑군을 한반도 내로 비정하는 '반도사관'을 수용. 당시 지식인들은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보았으나, 정약용은 조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를 한반도로 국한시켰다는 분석.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이를 악용하여 '낙랑군=평양설'을 확립.
4. '기자동래설'의 문제 고려·조선의 유학자들이 평양을 기자조선의 중심지로 조작한 역사 왜곡 사례. 실제 기자의 무덤은 중국 하남성에 존재하며, 이를 두예가 기록. 중국 총리 주은래도 '기자동래설'을 역사 왜곡으로 규정.
5. 해방 이후의 식민사학 잔재 해방 이후에도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절 친일파들이 득세하며 식민사학을 유지.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와 신석호가 학계를 장악해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정설로 만듦. 전통적 식민사학자와 뉴라이트의 차이를 지적하며, 뉴라이트는 친일 성향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냄.
6. 역사 왜곡의 폐해와 극복 역사는 구체적 행위로 왜곡되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사회적 대가가 뒤따름. 한국 역사학계의 식민사학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두울 수 있다는 경고. 사회적 진영을 넘어 역사 바로잡기의 중요성을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