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 스피치’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자이들러가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BBC가 17일(현지시간) 전했다. 오랜 매니저 제프 아가시는 전날 고인이 사망한 사실을 방송에 확인해주며 “데이비드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곳인 뉴질랜드에서 자신에게 최고의 평화를 안겨준 플라이낚시를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최후의 모습을 이렇게) 각본으로 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37년 런던에서 태어난 자이들러는 2010년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시 주연, 톰 후퍼 연출의 이 작품으로 이듬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모두 12개 부문 후보로 지명돼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도 휩쓸었다. 그는 이 각본 초고를 30년 전에 이미 완성했는데 주인공 조지 6세의 부인이었던 엘리자베스 대부인과 친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모두 탐탁치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스카 수상 연설을 통해 "욕설을 썼다는 이유로 날 런던타워에 가두지 않은 것에 감사드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막상 2010년 영화가 완성돼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이 나왔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매우 흡족해 했다. 말더듬이로 대국민 연설에 공포증을 갖고 있던 조지 6세가 언어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선동적인 연설가 아돌프 히틀러 나치 총통에 맞서 영국인들이 떨쳐 일어나게 만드는 과정을 실감나게 스크린에 옮긴 퍼스의 명연기는 미국 아카데미는 물론, 영국아카데미(Bafta)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겼다.
이 영화의 연극 버전은 6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4개 대륙에서 공연됐는데 자이들러는 직접 각본 작업에 함께 했다. 2012년 런던 웨스트엔드 윈덤 극장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브로드웨이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다.
자이들러는 2차 세계대전 초기 런던 대공습 때 미국으로 이주해 코넬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 친구 중 한 명이 미국 작가 토머스 핀천이었다.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일본 괴수물 번역 일을 하다 1960년대 호주 시리즈물 'Adventures of the Seaspray' 극본 작업에 참여하면서 TV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왕과 나', 'Quest For Camelot', 'Madeline: Lost in Paris' 같은 작품에도 손을 보탰다가 그리스 출신 선박왕의 전기물 '오나시스, 세계 최고의 부자'로 첫 번째 작가조합상을 수상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코미디물 'Tucker: The Man And His Dream' 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