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특집
굴뚝
유금란
찬바람이 나는가 싶더니 굴뚝마다 연기가 오르고 있다. 꾸역꾸역 저마다 토해 놓는 모양이 참 다양하다. 옆집 것은 수줍은 소녀가 게워 내는 속말 같기도 하고, 건너편 집 것은 수다스러운 아낙 입에서 튀어나오는 뒷담화 같다. 멀리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은 발정 난 수컷의 속마음인 양 음흉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굴뚝은 사람의 몸 구조와 많이 닮았다. 입에서 토해내는 ‘말’과,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내장에 쌓인 것을 빼내는 ‘배변 행위’는 ‘배출한다’라는 의미에서 많이 닮아있다. 화가 쌓이고 소화가 되지 않으면 병이 되듯, 굴뚝도 막히면 탈이 난다. 뚫려야 잘 돌아가는 소통의 이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볼 때마다 대기 오염을 염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드는 내 이중적 감정의 출처이다.
시드니의 난방은 대체로 난로나 에어컨디셔너에 의존한다. 한국의 온돌에 익숙한 나는 이민역사가 20년이 되었는데도 겨울만 되면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를 떨치질 못한다. 거금을 들여 온돌 매트나 온돌 침대를 마련해 보지만 구들장에서 올라오는 온기하고는 느낌이 달라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온돌의 온기는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서는 가슴 속까지 데워주는 따듯함이 있다. 그런데 지금 집에서 사용하는 가스난로의 온기는 몸 주변에서 겉돌다 마는 느낌이다. 멀리서 저 혼자 열을 올리는 사랑처럼 말이다. 열을 내고 난 찌꺼기를 제대로 배출할 굴뚝이 없어 그런가 싶다. 지붕 위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있으면 자동으로 그 아래에서 몸을 달구고 있는 벽난로가 그려진다. 그 속엔 촉촉한 열기와 다정한 저녁이 함께한다. 생각만 해도 훈훈해진다. 그런데 이 장면은 지금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고 있다.
요즘 새로 짓는 집에는 굴뚝이 없다. 지구온난화 방지책으로 벽난로 설치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만 해도 카운슬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벽난로를 설치하지 못한다. 이미 허락된 벽난로가 있는 집의 주가가 높은 이유이다. 오늘같이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 동네에 나무 태우는 냄새가 퍼지는 날이면 내 그리움의 촉수는 어김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해 질 녘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집마다 피어오르던 연기에서는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그것은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낸 한 가정의 식솔들이 먹거리를 해결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할머니는 저녁을 지을 때마다 윗말 통할머니네 굴뚝을 살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독거노인인 통할머니 집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으면 할머니는 바로 내게 밥 한 사발과 반찬 두어 가지를 들려 보내셨다. 주발을 채반에 받쳐 보자기에 싼 밥 보따리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겐 쉽지 않은 심부름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녀오려고 나는 몹시 서두르곤 했다. 오가는 길에 땔감을 지고 윗말로 향하던 동네 삼촌들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반갑던지. 먹거리만큼이나 귀했던 땔감들. 거지나 다름없던 통할머니가 천수를 다할 수 있었던 것은 굴뚝을 살피는 마을의 눈동자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동네 인심이 연기가 되어 하늘길을 타고 다니던 시절, 굴뚝은 누군가의 속사정을 헤아리는 메신저였고 온정의 통로였다.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한옥이었던 우리 집 겨울은 창문마다 문풍지를 바르고 마루에 난로를 놓으면서 시작되었다. 그해, 아버지가 해외 나가 계셨을 때이다. 방에 불이 잘 돌지 않자 엄마는 마루에만 놓던 난로를 안방에도 설치했다. 그런데 이음새가 단단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자 연통이 기우뚱하며 중간이 빠지려 했다. 다급해진 엄마는 내게 단단히 붙들고 있으라 하고선 난로를 놓아 준 철물점 아저씨를 부르러 갔다. 엄마가 다시 집에 올 때까지 나는 벌을 받듯 연통을 받치고 있어야 했다. 억겁의 시간이었다. 연통이 빠져 가스가 퍼지면 동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기에 나는 집안의 운명이 내 손에 있기라도 한 양 혼신을 기울여 연통을 지켰다. 알루미늄 빛깔의 연통만 보면 그때의 장면들이 자동으로 딸려 나와 공연히 마음이 불안해진다. 며칠 전 엄마와 전화를 하다가 나는 불쑥 엄마에게 그날의 일을 따지듯 물었다.
“엄마, 그때 기억나? 아버지 싱가포르로 일하러 갔을 때, 안방 난로 연통 빠지려고 했던 사건? 그때 내가 그거 잡고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는 모르지?”
엄마는 그날을 기억하기는커녕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몰랐다. 아차 싶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 없이 집안을 혼자 건사하던 엄마의 맺힌 한을 내가 풀어 주어야 한다. 쏟아낸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의외였다.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무슨 일인가 싶은 건 나였다. 이어 자신이 너무 무식했다며 자아비판까지 강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충분했다. 엄마에게 사과의 말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맏딸로서 힘든 적이 많았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앞으로 내 기억의 굴뚝에서 연소 되지 못했던 그 날의 그을음은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끔 아들과 대화를 하다가 놀랄 때가 있다. 이 아이가 나로 인해 상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상처를 안고 있어서이다. 그나마 기회가 되어 속내를 털어낸 것들은 다행인데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해 아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갇혀있을 검은 연기는 어찌할 수가 없다. 굴뚝이 집 뒤에 높이 솟아 있는 것은 앞에서 하지 못한 답답함을 뒤에서 편하게 풀라는 뜻일 것이다. 답답한 마음의 굴뚝을 스스로 청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굴뚝이 사라진 도시는 각박하고 아파 보인다. 혈전이 돌아다니다 막힌 혈관처럼 언제 터질지 불안하다. 누군가의 가슴에 꽉 들어차 있는 시커먼 연기가 하늘 높이 낭창낭창 날아가게 해달라고, 햇빛과 달빛이 슬며시 안으로 들어가 상처 어루만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바람은 굴뚝 자리에서 저리 거세게 소리 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밥 냄새가 나지 않아도 좋다. 불꽃처럼 살고 싶었던 내 푸른 날의 아궁이 한 가닥 가져와 시린 마음에 군불을 지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어떠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