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주보 No.1029 (2023.8.13.)
■ 103위 성인_성녀 이연희 마리아(1804~1839)
이연희는 남명혁의 부인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사리에 밝았다. 회장인 남편을 도와 공소를 세워 주교와 신부를 맞아들였고, 교우들을 가르쳐 성사를 준비하는 등 언제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에서 열두 살 된 아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이는 주님의 영광입니다 라며 모정을 억눌렀고, 자신 역시 혹형과 고문을 감내하였다. 형조로 이송되어 다시 3차례에 걸친 형문을 받았으나 역시 굴하지 않았다. 결국 같은 해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3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며 매일 저녁 9시에 주모경을 함께 바칩니다.
■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이스라엘을 북쪼 지방에 자리한 갈릴래아 호수에서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그 수면이 해저 200미터여서 1년 내내 따뜻합니다. 그런데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헤르몬 산은 최고봉이 2,800미터라 겨울에는 눈이 쌓일 정도로 춥습니다. 이런 온도 차이 때문에 갈릴래아 바다에서는 종종 거센 풍랑이 일어납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찬 기운이 갈릴래야 호수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 맞바람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날씨에 배라도 타면, 2,000년 전 풍랑 중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한 제자들의 모습도 떠올려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다는 이 기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사건은 단순히 그분의 놀라운 능력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창조주 이자 구세주이심을 드러내 준 기적입니다. 예부터 물은 혼돈과 죽음의 세력을 상징했습니다. 사실 물은 생명을 주지만, 동시에 죽음도 가져오는 양면성을 지녔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홍수가 세상을 망하게 하였지요.
창세기에서는 세상 창조 이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어다(1,2) 이에 따르면, 창조 전에는 불모지, 어둠, 물, 그리고 주님의 영이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영을 제외한 셋은 태초의 혼돈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는 말은, 물로 상징화된 혼돈(죽음)의 힘을 주님의 영께서 내리누르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혼돈을 제압하시며 빛을 만들어 낮으로 삼으시고 어둠은 밤으로 삼으십니다(5절). 이로써 세상에 첫 질서가 잡힙니다. 물 역시 주님께서 반으로 갈라 절반은 하늘에 두고-구름과 비를 의미하겠지요-나머지 절반은 땅에 두신 뒤 바다와 뭍으로 구분하시어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조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에 앞서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혼돈의 힘을 제압하고 막아주는 거라는 점입니다.(이사 45,18) 다시 말해, 창조는 피조물들에게 안전한 생활 공간을 마련해주는 일이므로, 창조력은 구원과 직결되는 힘입니다. 천지창조가 성경의 맨 앞에 배치된 까닭도 하느님께서 세상에 행하신 첫 번째 구원 행위라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기적도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혼돈과 죽음의 세력을 제압하시는 분이라는 사실말입니다. 더구나 이 기적은 창세 1,2뿐 아니라 하느님으로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이라고 찬양한 욥 9,8도 상기시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갈릴애아 바다의 등을 밟으심으로써 창조주로서의 당신 권능을 증명하셨습니다.
■ 녹양동성당_주임신부(최재영 세례자요한)_밤9시 주모경 및 가정을 위한 기도 바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