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달리기 전날밤 9시경 자려고 무조건 눈을 감았다.
산행이든, 집안의 경조사든 어디 가기 전날이면 초딩 소풍가는 심정이 되는지 잠을 거의 못이룬다. 신경이 예민한 탓인지.
아님 다른 이들도 다 똑같은 마음인지. 설레임인지#$%%^@*
지난번에도 맥주, 와인으로 알콜로딩 버티다가 아침에 머리만 빙빙돈 불쾌한
감정이 살아나서 이번엔 酒님을 안모시기로 작정.
잠을 청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든다.
첫 하프는 멋모르고 달렸다치자.
이번엔 뭘 좀 안다고 생각해서인지 갑자기 두렵고, 과연 내가 달릴수 있을까?
페메 해주신다는 두분이 2:20으로 못을 박아놓으니 심한 정신적 압박감도 일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가슴이 좀 답답하고.
그러다가 진인사 대천명이라. 일체유심조의 마음으로 밀어붙이고 눈을 감는다.
새벽 5시 기상. 그런대로 개운하게 잤다.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능개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여명이 오기전에 촉촉이 내리는
비의 정취는 운치가 있지만
지금 감상에 사로잡힐 상황이 아니다.
그래도 마음을 추수리고 신문도 펼쳐본다.
오늘부터 철도노사가 파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럼 수도권 전철은 직격탄을 맞겠군.
서울 친인척 대부분이 전철로 출퇴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이 지난해 1년사이 재산이 1억이상 증가했다고?
젠장. 죽순 자라듯이 잘도 자산을 늘려가는구만.
역시 재테크의 우수자는 고위공직자들?
우리같은 서민들은 죽어라고 고생해도 늘 제자리만 겉돌겠지.
신문을 픽 내던지고 밥도 맛있게 먹고 영양가 있는 반찬도 너댓가지 먹고.
거기다 커피까지.
어쭈구리. 천하의 한동순. 오늘 여유 부리는데?
10킬로 달리는 언니를 픽업해서 간다.
언니는 10킬로만 고수한다고.
하프는 몸을 상하게 한다고.
아침부터 그런소리 들으니 많이 위축.
개개인의 코드가 다 다르니까 다양성 인정해주자.
문수구장에 도착하니 7:50분.
언니는 언니 동호회로 가버리고 간마클을 가야 하는데 한 언니가 안왔다.
그래도 내가 데려왔으니 챙겨서 가야지.
10여분 이상을 서성대다.
드디어 든든한 낭군님까지 옆에 대동하고. 정말 멋있는 아저씨다.
부부간에 살면서 다 기대를 하고 살면 안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저정도의 배려를 해준다면 가슴뭉클하고 찡하다..
그럼 한달 식탁요리가 달라도 한참 다를텐데 말이다^^
드디어 제7회 울산광역시장배 생활체육 전국하프마라톤대회가 보조구장에서
오픈식을 하려고 한다.
큰대회인가? 방송국 차량도 오고. 저 큰차안에 계시는 대빵님이 산악회 회원인데 티브이에 나오게
해달라고 말해볼까나? 하프 두번째라고 괜히 들뜨긴.
아서라 불혹이 지났으니 푼수덩어리 줌마 소리나 듣고 팔푼이 소리 들을 정도는 되지 말아야지.
나이값 못한다고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나라가 우리 한국사람이니까.
울산에서 제일 바쁘신 시장님도 오신거 같구.
작년 인권마라톤은 주차장에서 열던데. 나같은 초짜가 뭘 알겠는가.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되지.
오늘 날씨는 나를 위한 날씨라고 보면 되겠다. 천우신조로구나.
아침에 케이웨더 보니 오전에 80정도 비올 확률이라고 했는데 비님이 사라졌으니.
땀만 안흘려도 자신감이 좀 있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 때문에 늘 힘겨워하니까.
오늘 달리기는 마라닉(maranic마라톤+피크닉)으로 가자.
최대한 편안한 마음을 먹는다.
페메 하시는 분들 보니 풍선에 완주시간까지 적어놓았던데 그걸 보자 더욱더 마음이 불안하다.
내가 과연 저 시간안에 들어올수 있을까?
대체 자신감이 안선다.
초보자들 사이에 부상도 입고 한다는데 완주, 기록보다는 아무 부상없이 무탈완주가 더 중요한데.
지난 동계훈련은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1월 216킬로, 2월 150킬로를 달렸다.
기본적인 남자라도 그 정도는 무리수 아닐까?
때로는 농땡이 친 적도 있지만 오늘은 약간의 여유가 있다는건 훈련을 조금이라도 해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인지.
드디어 십,구,팔,칠,육...수를 헤아리는데 내 가슴안에서 둥둥둥 먼 북소리가
요란스럽게 쿵쿵거린다.
아직온 왕초보라 그런지 피니쉬 매트를 지날때도 마음이 찡하다.
이미 마음의 짐을 벗어던졌기 때문에 새털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드디어 내 자신과의 최면에 걸린 시간이 온 것이다.
한판 굿거리장단 펼치듯이 혼자서 두어시간 신명나게 춤을 추어야 하는 마라닉의 시간.
그런데 지천명을 넘긴 언니가 생애 처음 달릴텐데 내가 달리든말든(?)
벌써 저 앞 선두에 가는 것이다.
그것도 2:10분대 페메들과.
그순간부터 난 자극을 받아 언니를 따라잡으려고(?) 달림의 욕망만 가지고 계속
따라붙였다.
날씨는 달리기에 딱 알맞은 온도였다고 본다. 버프라도 두르고 왔으면 더웠을 것이다.
달리기의 열정이 마음마저 후끈 달아 올랐는지 땀이 흐르고 또 흐르고.
체력은 빵빵한거 같은데 몸은 생각외로 제자리다. 언니를 타켓으로 삼아 달려본다.
그래 LSD하는 마음으로 달려보자.
달리면서 느낀다. 백일전보다 몸도 더 가볍고,
체중감량한게 확실히 달리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다.
5킬로 지점이다. 이제 이 정도는 부담이 없다.
그런데 7킬로 지점인 덕하검문소쪽으로 가니 반환점을 돈 마라토너들이 서서히 나타나는데
내 마음이 서서히 불안해져옴을 느낀다.
벌써 돌아오다니. 반환점 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뒤에 페메가 오든말든 무조건 쌩쌩 달렸다.
달리면서 반환점을 벌써 돈 산악회, 동호회 회원들이 한동순, 우향...외치니까
그때부터 약간의 자신감이
더 생겨 마구마구 달려본다. 반환점을 돌고 검문소 다 올 무렵에 언니를 잡았다(?)
이 언니 몰래 훈련을 했나? 아니면 기본적인 운동체력이 되는건지. 요가와 다른운동 한다더니
그게 많이 받쳐준건지 한번도 안쉬고 달리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달렸다.
보조를 같이하며 달리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아이구 챙피해라.
명색이 훈련팀이면서 LSD도 제대로 못달리는 수준인데다 지금도 거의 꼴찌수준.
뒤에는 몇 명밖에 안남았고 서서히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잠시 정차하고 있는 도로 차량들은 모두 우리를 보고 있을테지.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달리자.
너무 오버하는가 싶을 정도로 달리는데 팀장님이 우리 무리쪽으로 오기 시작하더니
코치를 해주신다.
"너무 빠릅니다. 여긴 서서히 달려주어야 합니다. 자. 여기선 속도를 내셔야 합니다."
나와 뒤에 오시는 언니에게 열심히 코치를 해주시니 용기도 서서히 난다.
세심하고 사려 깊은 분이다
보조를 같이하며 마지막 구간을 최선을 다하며 달리고 또 달리며 힘껏 끌어본다.
드디어 고비는 16킬로에서 예외없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막다른 길목에 다다라 빠져나갈수도 없는 그 상황처럼 그 고통의 시간과 대면하고 만 것이다.
이겨내야지.
이 순간이 지나면 하이파이브 외칠 일만 남는다.
갓길쪽에는 부상을 당했는지 아저씨 한분이 절뚝거리면서도 달리시고.
달려야 한다. 쌩쌩 나르다시피 달리다가 어느순간 멈춰선다.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순간 우리 회장님이 나타나시고 사진을 찍어주시고 부회장님도 오셔서 물을 주시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찡한게.
그래 이제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은 내 관할이지.달리는거야. 날으는 언더우먼처럼 신나게 쌩쌩 달리는데 보조구장 오르막이 나타난다.
아뿔사. 발바닥에 강력접착제 붙여놓은것처럼 한발자욱도 걷기가 어렵다. 얼굴이 어디 달아난것처럼 멍하다.
영혼이 날아가버렸나? 제정신이 아닌거 같다.
그순간 또 팀장님이 쉬면 안된다고 말씀 하시는데 팀장님이고 뭐고 이 자리서 주저앉고 싶다.
그런데 그 코스부터 많은 구경꾼들이(?)구경하고 있는데 도저히 걸을수는 없었다.
트랙이 눈앞에 보이고 저기를 한바퀴 돌아야 완주하는데....그래도 발이 안떨어진다.
순간. 이걸 왜 난 시도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번에는 완주하기 10분전에 표정관리 한다고 백만불짜리 미소도 지어보고 그랬는데
이번엔 2:20분 언더로 들어온다고 무리하게 집착하다보니 미소고 뭐고 트랙에서조차 걷는것도 힘들다.
드디어 저기 FINSH LINE이 보인다.
저 피니쉬매트만 밟으면 끝난다.
마지막 1분정도를 남겨놓고 전속력을 다해 달리고 또 달린다.
아...
드디어 반백리 길을 달리고 달려서 무탈완주를 했구나.
오늘만이라도 자화자찬하자. 한동순. 너 대단하구나.
내가 21.0975km 하프를 무사히 완주했구나.
하프 마라토너들 1천여명중에 꼴찌는 안했다니 다행이다.
950명정도가 남자고 50명 정도가 여자였다니.
저번처럼 꼴찌도 안하고 뒤에 20여명 따라오고.
9049 한동순 하프여자일반부 02:10:25.91
그러나 2시간 20분대만 고수했으면 힘들진 않했을텐데 욕심 내고 달리다보니 과유불급이
아닌지 모르겠다.
5킬로마다 고저 코스가 어디인지, 반환점을 돌아도 몇분대로 시간을 잡았는지
완만한 코스인지, 경사도가 심한 코스인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달리면서 여유있게 기록체크의 여유는 아예 없다.
정신없이 완주하고 보니 칩도 반납하는것도 우왕좌왕 내던지고.
어떤 기념품을 주는지 등수안에 들면 어떤 상품을 주는지도 더더욱 모르고.
운영이 깔끔하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한쪽에선 막걸리나 두부도 준다는데 거기까지 갈 겨를도 없고.
간마클로 가서 따뜻한 라면 먹고 커피 마시는게 최고의 행복이다.
내꺼야 언니를 비롯하여 여러 회원님들이 자봉하시는데
이번 3.26 대회때는 떡중에서 제일 맛있는 떡을 찬조해야겠다.
내 마라톤 역사상 28:56초 단축이 어디 쉬운가 말이다.
마라톤을 하다보니 1분거리도 상당이 따라잡기 어려운걸 알았다.
오늘의 마라톤 단축은 여러 가지 운대가 맞았다고 본다.
날씨가 나를 받쳐(살려)주었고
물론 지난 겨울 추우나, 바람부나 동계훈련을 꾸준히 해왔고, 이렇게 좋은 기록이 나오고 보니
참으로 정직한 마라톤이란걸 알았다.
아침에 하프에 대해 한말씀 한 언니 때문에 기분이 많이 암울했는데 완주하고 나니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이 샘솟고 말았다.
무릎 안좋은 산악회 회원들 다신 산에 안간다고 죽는소리 하면서도 또 다시 빌빌빌 거리며
산에 오르는 거나, 하프 죽어라고 달리면서 다신 대회 안나간다 하면서 완주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아 다시 대회 참가하게 되고.
아...
이래서 마라토너들이 중독증처럼 마라톤을 하게 되는구나.
풀 50회 달리고 100회 채우는 분들.
대회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보물같을까.
시간의 흐름이 지나면 무덤덤해질까?
지금 나는 한없이 떨리고 기쁘고 만족감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나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 하프 완주.
이 고통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받아들이고 싶다
메달을 받는다
“완주메달은 당신의 마라톤 역사입니다”란 글이 내 마음을 저리게 만든다.
오늘 이 기쁜 감정과 감동이 없어지지 않게 반나절 황금같은 시간 보내가며 완주기를 쓴다
땀의 댓가들.
2005-09-25 울산 마라톤 10킬로 1:15:57
2005-11-20 인권 마라톤 하프 2:39:21
2006-03-01 울산시장배 하프 2:10:25
2006-01-09 부산 신항만 단축마라톤. 16킬로 1:48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은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와 자신감을 줄수 있는 계기가 되죠 아자! 아자! 화이팅!
우향님도 드뎌 중독에 걸렸네요. 하여튼 대단 하심다. 근간에 울산에 철녀 한명 탄생 빰빠라~~~
무섭당...나보고는 뛰지말라 카더라 무름 연골 작살 난다꼬, 오래 산행 할려면은
꿈은 이루어지고 역사는 새로이 써진다.이제 산사랑회에서 보기 힘들어 지겠군요.다른 물에서 논다고 보기 힘들테고 혹 산행에 참여하더라도 앞서 달려가 버려 보기 힘들테니...이리저리 보기 힘들겠수~~무서븐 걸들이 판치는 산사랑회여~!! 남성들이여 각성하라!!!
축하합니다...의지의 남창인입니다...산에서 쌩쌩 달리면 따라다니기 바쁘겠슴다...마라톤에 중독되지는 마시고 즐기시고..산행도 즐기시고........모레 얼굴볼수 있겠져??
다섯개의 산악회 이제 모두 정리(?)하고 여기 친정인 산사랑밖에 없심더. 우향 마음 아니껴? 하하.
3.1절날 덕하 검문소 못 미쳐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있어 열심히 찾다가 열심히 뛰는 우향님 발견! 뒤따라온 차땜시 응원도 못해주고... 우향 화이팅!
우향님 추카 ~추카~ 내친김에 올 가을 경주동아마라톤 풀코스에서 함께 뜁시다. 우향님 화이팅!
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다는 뜻이죠.....우향 홧팅임다.....산적 요즘 차체 및 엔진 보링중임다.매연이 너무 많아서리..오늘로 금주 16일째 (정말로 한방울도 입 안대고..) ... 92년 이후로 이틀이상 쉰적이 없는데(한병은 안먹은걸로 쳤는데도..ㅠㅠ) ...내가 생각해도 신기함다...경주 벚꽃 반똥가리 신청했음(하프)
참고로 보링기간 3월19일 꺼정임...혹시 그전에 만나면 참고 바랍니다.
내친김에 아예 싹뚝 선을 그어버리심이 어떨지....나도 요즘 심각히 고민중임다. 절주할 것인가 아님 줄일것인가로!! ㅋㅋㅋ
반똥가리씩이나? ㅠㅠ 거금 이만냥과함께 오키로 신청했심더 (회사에서 때거리로 동원됨)퍼떡 뛰고 한잔하면서 있을께ㅋㅋ
ㅎ 보링기간?도 아예 정해놓고 휴주?합니까요?? 마라톤 반똥가리라 하시길래 혹 5km인가 싶었는데 하프라니??산에다 도로까지? 취미생활을 추가할까 생각중임다..열심히 휴주하시고 질주 잘 하시길~~
산적 오라버님. 경주 벚꽃 같이 뛰기로 해요. 전화 연락 해요. 별밤 오라버님. 안뛰시나요? 가을에 풀 같이 뛰어요
회사 동호회서 한 4~50명 출전할거 같네요..걍 뛰면서 만나죠...아마 속도가 비스무리 한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