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3: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개역개정판)
제93문
문: 신약의 성례가 어느 것입니까?
답: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주 섬겨 살리니 (새찬송가 447장)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160년전인 1866년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John Ernest Bode는
세 자녀의 견진성사를 앞두고 작사했다는 이 찬양을 부를 때면
눈물이 핑 돌았다. (주로 어르신들이 눈물 많아지셨다고 하시던데...)
영국의 영향력 있는 교회음악가였던
Dr. Arthur Henry Mann의 멜로디가 워낙 유려하기도 하지만
가사가 참으로 아름답다.
주 나와 함께 하면 전쟁도 겁없고
주 나를 인도하면 늘 안심하리라
끝까지 쉬지 않고 주 따라 가리니
주 넓은 사랑으로 늘 인도하소서
천주교회, 영국성공회, 동방교회에서 공히 주장하는 7성사
곧 세례, 성체, 견진, 고해, 병자, 성품, 혼인
세례 성사 (Baptism): 죄를 씻고 다시 태어나는 성사.
견진 성사 (Confirmation): 성령을 받아 신앙을 성숙하게 하고 증거하는 성사.
성체 성사 (Eucharist):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영적 양식으로 삼는 성사.
고해 성사 (Penance): 죄를 용서받고 교회와 화해하는 성사.
병자 성사 (Anointing of the Sick): 환자에게 영적, 육체적 치유의 은총을 베푸는 성사.
성품 성사 (Holy Orders): 사제, 부제 등 교회의 직무를 맡도록 안수받는 성사.
혼인 성사 (Matrimony): 남녀가 부부로 결합하는 성사.
일곱가지 성사 중에서
주님의 직접적 언급은 사실 세례와 성찬 뿐이고
가장 유명한 고해성사는 복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기준 때문에 성례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견진성사는 우리로 치면 입교식과 같다고 하던데...
중학교 3학년 당시
중등부 회장님이셨던 민경태 형제님은
입교문답 당시
그냥 조심해서 올라가도 되는 단상을 (굳이) 점프해서 올라가
옆에 있던 친구들을 킥킥대게 만들었다.
얼마 전 어느 여자 연예인의 세례식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한때는 시대를 풍미하던 패션의 아이콘이었으나
100억원 가까이 되는 돈을 쇼핑 등에 사용하고
인생의 여러 풍파를 지나
서울의 어느 (통합측) 교회에서 다시금 세례를 받는 그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렇다면
구약의 성례는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그리고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끝으로 할례..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 (쟤네들 말로 성체..)
할례는 새 언약의 시대인 신약에서 세례로 대체되고
유월절은 어린 양을 죽여 피를 뿌리고 (이후 식사를 하는...) 성례로서, 신약의 성찬으로 대체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에 우리만큼 민감한 존재가 온 우주에 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도 떡 문제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도 당신 본인을 생명의 떡으로 지칭하셨으며
그 생명의 떡과 피를 나누어주시고 먹고 마시게 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 당시 무리들처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요 6:26)에 주님을 따라는 경우가 많다.
아니, 배부르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성찬보다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잠언 23:3)을 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잠언 23장 3절을
맛있는 음식을 멀리하고
청빈하게 살아라... 이렇게 적용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권력자나 부자가 베푸는 호의(맛있는 음식) 뒤에 숨겨진 불순한 의도나 뇌물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경고하며,
물질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절제와 지혜를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맛집은
일상의 소권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막강한 영향력은
SNS는 물론
일상의 현장에서도 언제든지 발휘된다.
모든 여행에서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은
사실상 맛집이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서
우리가 욕망을 인식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을 끊임없이 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점심과 저녁에도 어딘가에서 줄서 있을 맛집의 대기행렬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우리의 열망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열망만큼이나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에서, 캄보디아에서, 중동에서
그리고 삶과 죽음을 오고가는 수많은 전역(戰域)에서
살고 싶음... 단지 그 하나의 열망을 가진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으며,
살아 남음... 단지 그 하나의 목표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치열하게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데...
그와는 별도로
누군가는
남들이 누려야할 평화와 풍요까지 누리면서도
더 강력하고 강렬한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세례와 성령세례, 성찬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면서
세상의 일들과
세상의 맛있는 음식들을 6시간 단위로 기다리는 나 자신을 보면
새 언약의 약속을 믿는 성도에게 행하는 표와 인을 가진 사람인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첫댓글 https://youtu.be/mDnsPFR1Sb8?si=tjb1OQ8EvHCyip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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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JNuVLLOVR8?si=hGCNb_dy_e2jVS1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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