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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백과 - 통영중앙시장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1. 19. 1:56
통영중앙시장
요약 통영중앙시장은 한려수도의 관문인 통영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동피랑벽화마을과 강구안 문화마당 등 유명 관광 명소와 가까이 있어 관광객들과 지역 주민을 상대로 활어를 비롯해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1. 통영중앙시장 개요
통영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통제영을 설치한 이후이다. 통영이라는 이름도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통영은 1900년까지 고성에 속해 있었고, 인접한 거제와 함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다. 한때는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충무가 되기도 했고, 오늘날의 통영시가 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통영의 시장은 통제영의 관리를 받으며 개설되었고, 매월 2, 7일에 장이 섰다. 통영의 시장은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는데 특산물로는 쏨뱅이와 쌀, 해산물 등이 있었다. 또한 통제영의 영향으로 전복이나 소라, 조개껍데기 등으로 만드는 나전칠기가 대표 특산물이 되어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통영시장을 비롯해서 아침시장, 가축시장이 있었고, 이에 더해 일제가 운영하는 부산수산주식회사 통영지점, 통영수산주식회사, 통영식량품판매조합 등이 개설되어 있었다.
통영의 중심 시장인 통영중앙시장은 2000년대에 들어서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주변에 형성된 동피랑벽화마을, 강구만 문화마당 등이 관광지로 부각되면서 시장도 활력을 되찾았다. 또한 서호시장은 과거 뱃사람과 부두 노동자들을 위해 새벽에 열리는 시장으로, 2009년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통영중앙시장에 노점들이 자리 잡은 모습
2. 통영중앙시장의 어원
통영이라는 말은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통제영(統制營)을 설치한 것과 관련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4년에 두령포로 통제영을 옮기고, 이 지역의 이름을 통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통영(統營)이라는 말은 통제영에서 왔다. 통영중앙시장은 지역의 이름과 중심 시장이라는 중앙이 더해져서 생긴 이름이다.
3. 통영 지역의 특색과 시장 형성 과정
통영 지역은 역사적으로는 전쟁, 지리적으로는 평화라는 상반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통영의 역사가 임진왜란 때 군영에서 비롯되었고, 오랫동안 군사도시로 성장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때에도 매립에 의해 건설된 통영항은 군함이 드나드는 군항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통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하나로 손꼽힌다. 한산도에서 여수를 잇는 국립해상공원인 한려수도의 동쪽 관문에 위치해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와 점처럼 떠 있는 섬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통영은 고성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오랫동안 통영과 인접해 있는 도시인 고성과 거제에 속해 있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군사도시로 발달하고, 남해안 해운의 중심지로 부각되었지만 행정구역은 시대에 따라서 고성과 거제에 번갈아 속했다. 300년 가까이 존속했던 통제영이 폐지된 것은 1895년의 일이었다.
1900년에는 통영 지역과 고성군, 거제군의 일부가 통합되어 진남군이 되었다가 1914년 거제군을 통합하면서 처음으로 통영군이 되었다. 그러나 1953년에 거제군이 분리되고, 통영은 1955년 이순신의 시호를 딴 충무시로 승격된다. 그렇게 충무시와 통영군으로 나뉘었다가 1995년 현재의 통영시가 되었다.
따라서 통영 지역의 시장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과거 같은 행정구역이던 고성과 거제의 시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통영 지역은 지리적으로 고성과 거제 사이에 위치해 있어 두 상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고성과 거제에는 모두 5곳에서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동국문헌비고》(1770)에 따르면 고성 읍내장(1, 6일)을 비롯해서 배둔장(4, 9일), 거제 읍내장(4, 9일), 하청장(1, 6일), 아주장(2, 7일)이 개설되어 있었다.
즉, 당시 고성 지역에 2곳에서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고, 거제에는 3곳에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가운데 고성 읍내장과 배둔장은 고성시장과 배둔5일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에는 나오지 않지만 오늘날의 통영 지역에 시장이 개설된 것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3년의 상황을 기록한 것에 따르면 통제영이 설치되면서 성내 장대(將坮)에 있던 시장을 옮겨서 통제사가 관리했고, 1895년에 통제영이 폐지된 이후 1908년에 재무서(財務署)에서 관리했다고 나온다.
장날은 매달 2, 7일이었고, 백중과 연말에는 장날이 아니어도 임시로 장이 섰다. 그 기록에 따르면 시장은 오랫동안 번성했는데 쏨뱅이, 쌀, 해산물 등이 특산물이었다. 그러나 통제영이 폐지된 이후에 시장의 장세에 변화가 생겼다.
쏨뱅이의 경우 과거 장날마다 1,500~1,600원 정도의 거래가 있었지만 1913년에는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쌀 또한 과거에 50~60석이 거래되었는데 10석으로 그 양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해산물의 거래는 나날이 늘어서 장날마다 1,000원 안팎의 거래를 기록했다.
통영의 정기시장의 경우 시장에 나오는 상인은 조합원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과거 통제영의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생긴 관행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이나 어패류를 판매하는 소규모 상인들은 조합에 가입하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했다. 1913년 당시 시장의 유지와 보수를 위해 한국인 상인은 매달 5원, 일본인 상인들은 매달 2원씩 시장세를 내야 했다.
당시 통영시장에 나온 상인들은 많은 때는 1,500명, 평균 1,000명이었고, 고객은 많은 때는 5,000명, 평균 3,000명으로 시장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장을 찾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고성과 거제의 일부 지역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해의 연 거래액은 공식적으로는 14만 7,366원이었지만 실제로는 21만 8,478원을 기록했다.
위의 기록에서 일본인 상인들이 시장에 출장했다는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라 인근의 부산이 개항된 이후 일본인이 밀려들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본격적으로 이주가 진행되면서 고성과 거제, 통영 등 부산과 가까운 해안가에 자리를 잡은 것과 관련이 있다.
1924년의 기록에 따르면 통영시장은 통영면에 위치해 있었고, 장이 서는 면적은 약 3,620m2 정도였다. 통영시장은 과거 통제영의 통제를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공설시장이었다. 장터는 당시 명칭으로 통영면 부도정(敷島町)이었다.
조사 당시인 1923년에 통영시장에는 장옥이 있었고, 장날은 변함없이 매달 2, 7일이었다. 장날 주로 거래된 품목은 해산물과 공산물, 농산물이었고, 하루 거래액은 평균 1만 5,000원 정도로 연 거래액은 99만 1,997원을 기록했다.
장옥의 사용료는 한 번에 1칸 당 10전이었고, 노점은 한 번에 2전씩 징수를 했다. 또한 시장 상인은 거간이 12명, 중간도매상이 5명, 소매상인이 100여 명이었다. 시장을 찾는 고객은 하루 평균 1,000여 명이었다.
또한 그때 통영 지역에는 통영시장 외에도 아침시장과 가축시장, 부산수산주식회사 통영지점, 통영수산주식회사, 통영식량품판매조합 등이 개설되어 있었다. 이들 가운데 부산수산주식회사는 부산에 본점을 두고 어시장을 운영했던 회사이며, 통영식량품판매조합은 채소나 과일 등을 주로 판매하는 시장으로 이들 모두 일본인들이 수산물과 곡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세운 시장이었다.
아침시장의 유형은 역시 공설이었고, 당시의 지명으로 매립해서 형성된 통영군 신정(新町)에 위치해 있었다. 장옥은 따로 없었으며, 장이 개설되는 시간은 매일 오전 4시부터 6시까지였다. 아침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시장이 새벽에 열렸기 때문이다.
아침시장에서 주로 취급한 물품은 해산물과 공산물, 농산물이었고, 하루 평균 거래액은 100원 정도였다. 시장에 나오는 상인은 소매상인으로 약 65명 정도였다. 아침시장을 이용한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과 고성군 인접 지역의 주민들이었다.
가축시장 또한 공설시장이었고, 당시 지명으로 통영면 정량리(貞梁里)에 위치해 있었다. 시장의 면적은 약 367m2였고, 목책과 계류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통영가축시장에서 주로 취급한 것은 소였다. 장날은 2, 7일이었고, 하루 평균 1,000원 정도의 매상을 기록했다.
시장에 나오는 상인은 100여 명이었고, 통영군 축산동업조합의 중개에 따라 거래가 행해졌다. 수수료는 3%, 감정가는 소가 1원, 송아지가 20~50전이었다. 통영가축시장을 이용한 사람들은 해남과 마산, 부산, 진주, 고성, 사천 등 통영과 인접한 도시였다.
1930년대 통영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장날 통영시장에 나오는 고객은 수만 명을 헤아렸고 그 때문에 장옥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도로변에 난전이 펼쳐져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당국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정에 새로운 장터를 마련했지만 상인들은 장터를 옮기지 않았고, 오히려 인근 조일정(朝日町)과 북신리로 장을 넓혔다.
한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제가 통영에 통합되면서 통영 지역의 시장은 크게 늘어났다. 그 때문에 1930년 후반 통영 지역의 시장은 7곳이 개설되어 있었다.
이들 가운데 5곳은 오늘날의 거제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거제의 경우 《동국문헌비고》에 등장했던 거제 읍내장과 하청장이 존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청장은 2군데에서 개설되고 있었다. 당시 통영과 거제 지역에 개설되어 있던 시장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930년대 말 통영과 거제 지역의 정기시장 개설 현황
시장 이름 | 위치 | 장날 | 연 거래액 |
통영시장 | 통영군 통영읍 부도정 | 매일 | 1,317,802원 |
아침시장 | 통영군 통영읍 신정 | 매일 | 24,315원 |
거제장 | 통영군 거제면 서상리 | 4, 9일 | 123,500원 |
하아장 | 통영군 장승포읍 아도주리 | 3, 8일 | 53,684원 |
욕지장 | 통영군 원량면 동향리 | 4, 9일 | 63,970원 |
하청장 | 통영군 하청면 하청리 | 2, 7일 | 15,933원 |
하청장 | 통영군 연초면 덕지리 | 2, 7일 | 66,318원 |
자료 : 《조선의 시장》 문정창, 1941년
시장 안에는 고추를 빻고 기름을 짜는 오래된 가게도 있다
커다란 생선을 뜰채로 떠낸 상인
4. 시장의 발달 및 변천 과정
통영 지역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에 거제군이 분리되었고, 1955년에 충무시가 승격되면서 통영군과 나뉘었다. 거제군이 분리된 것은 한국전쟁 때 이곳에 거제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것과 관련이 깊다. 포로가 많을 때는 17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오늘날 통영 지역에는 통영중앙시장을 비롯해서 새터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서호시장, 중앙활어시장, 거북시장(북신시장)과 수산물위판장까지 포함해서 5곳에 시장이 개설되어 있다.
1) 통영중앙시장
통영중앙시장은 통영의 중심지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통영시장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번영했던 전통을 이어받아 해방 이후에도 꾸준히 번영했다. 1950~1970년대에는 기존의 수산물과 농산물에 더해서 한복이나 비단 등 포목을 중심으로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 산업화가 시작되고 육로 교통이 발달되면서 전국의 다른 전통시장들처럼 조금씩 쇠퇴했다. 그러나 침체된 상태는 아니고, 1980~1990년대까지는 수산물을 중심으로 꾸준히 장세를 유지하며 지역의 중심 시장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통영중앙시장이 침체기에 빠진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대형마트들과 백화점이 등장하고, 1996년에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거의 시장을 폐쇄해야 할 정도로 크게 약화되었다.
통영중앙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동피랑벽화마을이 시장 뒤에 조성되고, 2008년 한려수도조망케이블의 설치, 2010년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의 개통과 관련이 있다.
동피랑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으로 과거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에 있다. 2007년 통영시는 낡고 오래된 동피랑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해서 공원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2007년 시민단체가 나서서 ‘동피랑 색칠하기 - 전국벽화공모전’을 개최했고, 전국의 미대생과 개인 등 18팀이 동피랑 마을의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동피랑마을의 벽화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통영시는 동포루 복원을 위해 집 3채만 허물고, 마을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철거 대상이었던 낡은 동피랑마을은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통영중앙시장의 생선 좌판을 지나 조금 걸으면 벽화가 그려진 동피랑마을로 가는 길이 나온다. 동피랑마을의 좁은 골목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의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곳이다.
이렇게 동피랑벽화마을이 관광명소가 된 후 다음해인 2008년에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2010년에는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완공되면서 통영에 관광객들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통영중앙시장은 눈에 띌 정도로 활기를 되찾았다.
시장에는 싱싱한 수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상인이 주문받은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통영중앙시장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신선한 활어를 중심으로 시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좌판을 10개에서 100개로 늘렸다. 싸고 신선한 활어 판매가 활성화되자 인근의 채소를 파는 채소 골목도 함께 살아났다. 최근 통영중앙시장은 평일에 5,000여 명, 휴일에 1만여 명의 사람들이 찾고 있다.
건어물 가게가 모여 있는 골목
말린 생선들
2) 서호시장
서호시장 근처에 있는 통영항은 과거 바다였다. 서호시장을 비롯한 통영항 일대는 1906년에 매립이 시작되어 9,256m2의 부지가 생겨났다. 매립된 땅에 건설된 통영항은 일본의 군함들이 기항하는 군항이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통영항 주변에 시장이 생겼는데 그것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아침시장이었다. 시장이 있었던 지명을 따서 신정시장이라고도 불렀고, 새터시장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해방 이후 일본이 물러가자 이 땅은 황무지가 되었다. 이곳에 터전을 일군 것은 해방 이후 외국에서 돌아온 교포들이었다. 갈 곳이 없었던 이들은 이 땅에 판잣집을 짓고, 노점을 하며 생활을 영위했다.
새벽부터 일찍 시작되는 항구의 특성에 따라 노점들도 새벽에 좌판을 펼쳤다. 뱃사람이나 항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밥집과 새벽에 들어오는 해산물을 파는 노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규모를 갖추고 시장이 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시장이 바로 서호시장이다.
서호시장 입구
서호시장은 새벽부터 시작된다. 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동이 트기 전부터 항구로 돌아오고, 새벽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과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둠을 밀어내고 새벽과 시장을 연다.
이런 배경 때문에 통영에서는 ‘아침에 서호시장, 오후에 중앙시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중앙시장이 서호시장의 특화된 상품인 활어를 팔기 시작한 것도 서호시장이 오전에 활발한 시장임을 활용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 서호시장은 오후에도 문을 열고 있다. 서호시장은 수산물 외에도 통영과 섬 지역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서호시장은 2009년에 문화관광형 육성 사업에 선정되어 시설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활어 골목에 아케이드가 설치되는 등 시장이 말끔하게 정비되었다.
아케이드가 설치된 서호시장 내부
활어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골목
3) 거제고현종합시장
거제고현종합시장의 생성은 거제 포로수용소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거제에 포로수용소가 만들어진 것은 1950년 11월 27일로 거제군 신현면 고현리에 있었다. 한때 17만 3,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다.
여기에 흥남항에서 미국의 군함을 타고 거제로 피난을 온 피란민까지 가세해서 거제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거제가 통영에서 분리된 것은 그즈음인 1953년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가 석방된 이후 수용소 사람들이 철수했고, 강제 징발되었던 수용소의 부지를 민간인에게 돌려주는 과정에서 장이 개설되었다. 당시에는 매월 5, 10일에 장이 섰다. 고현종합시장은 1980년에 건물을 세우고, 시장 등록을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고현종합시장은 상가 건물을 중심으로 해서 4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 농수산물, 잡화, 채소, 노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4구획의 끄트머리에는 활어를 파는 곳이 자리하고 있다. 2층에는 포목점과 미용실, 옷을 수선하는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5. 시장의 위치와 거래 품목
중앙시장과 서호시장은 모두 바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의 끝자락인 통영IC를 나가서 통영시청을 지나서 중앙로오거리에서 바다로 향해 가면 중앙시장이 나온다. 중앙시장의 서북쪽에는 통제영지가 있고 동쪽에는 동피랑벽화마을, 남쪽에는 강구안 문화마당이 위치해 있다.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중앙시장에서 해안을 따라 통영항으로 향하면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의 주차장 건너편에 서호시장이 위치해 있다.
중앙시장과 서호시장 모두 활어가 주요 거래 품목이다. 이 외에도 농산물과 공산물, 잡화, 생활필수품 등을 거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