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온전하길
박영란
세상의 소란스러움은 해가 바뀌어도 흘러넘쳐 내 집에 머물고 있다. 발도 없는 것들이 401호까지 무단으로 와 내 곁에 있다.
그 와중에 쌍둥이들이 외갓집을 처음 다녀갔고, 새 며느리도 함께 다녀갔다. 그들이 다 가고 나서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며 허리를 펴자, 허리가 뜨금했고 다리는 부어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관절 주사를 맞으며 조용히 집에 있었다. 그 조용한 틈새, 신청하지 않는 백화점 카드를 전해준다는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로 인해 벌어진 일은 보이스 피싱이었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심란함만으로도 넋을 빼고 있었는데, 그 역시 혼을 빼는 일이었다.
2025년의 새해 첫 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에 칩거하고 있어도 황사처럼 스며들어 서걱대는 세상사가 참으로 웬수같다. 자식이 웬수라더니, 자식 걱정에 버금가는 수심이 우리를 저 깊은 우물 아래로 내동댕이 친 느낌이다. 새해를 맞는 희망도 계획도 의지도 저 수면 아래서 동사하였다. 무얼 해 볼 기분이 나지 않는다. ‘계엄’이니, 탄핵이니 무안공항 참사로 희생자가 180명이라는 이런 일들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그런 심정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집 밖을 나가면 ‘수괴’니 ‘감옥’이니 ‘애도’ 등 책속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날 선 언어들이 마음을 뒤흔든다. 눈을 뜨고 있는 이상 보이는 거리 곳곳의 현수막 글귀들은 끊임없이 신경을 자극하고 울화가 치밀게 하고 갑자기 슬픔을 끌어안긴다. T.V, 신문, SNS 등 어디서건 언어의 공격을 받고 사는 5천만 대한민국 사람들. 코로나 바이러스만 바이러스는 아니다. 이 거칠고 난폭한 말들이 공기처럼 떠돌고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우린 알기나 할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사실 믿기지 않는 한바탕 꿈 같다. 하지만 팩트이다. 보이스 피상만해도 그렇다. 남의 일처럼 들었을 때는 ‘어쩜 그렇게 어리석게 당하는가’ 내심 한심했다. 그런데 그 일이 내 일이 되었고 의심하면서 함정에 빠진 꼴은 일러 말하기도 부끄럽다. 이 상황을 스스로 구덩이를 파 자살골을 넣은 대통령과 같다는 생각이 왜 드는지. 비약이 너무한가. 물론 국가냐 개인이냐 하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지만, 어리석음의 귀결은 같다. 자업자득. 돌이키며 가슴을 치고 뼛속까지 후회를 하지만. 흘러간 강물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쪽박을 깬 사람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는 사람들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자칭 깨어있는 나도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나서야 거듭 통장을 확인하고 잠을 자다 또 깨곤했다.
자신이 믿는 진실이라는게 얼마나 허구였는지. 타인이든 자신이든 그 바닥을 보았을 때 오는 자괴감. 그것 또한 떨치기 어려운 열패감에 빠진다. 돌아보면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는 자신에게 놀라고, 농락당한 기분에 우울해진다. 살다보면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일이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이 있다. 비행기 바퀴에 새가 끼어 착륙할 수 없어 일어난 대참사를 신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사라진 무수한 생명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삶도 장담할 수 있기나 한건가. 어느 한순간 차를 타는 것도 걸어 다니는 것도 불안하다. 위정자들 또한 그들이 잡을 권력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끌고 갈지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주권을 행사하는 내 한 표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정치의 벽 앞에 우리의 이 노심초사가 소용이 있기나 한 걸까. 어찌해 볼 수 없는 내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눈 내리는 이 엄동설한에 좌,우로 나뉜 군중들이 밤을 새면서 그들이 지키려는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참으로 숭고한 일인지 어리석은 일인지 그것도 애매하다. 하지만 아까운 시간이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데,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거기에 쏟아야 할 금쪽같은 시간과 에너지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진흙탕에도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초연하고 싶다. 바람이 너무 거창한가. 우선은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맹꽁이는 되지 말자. 누구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지인의 카톡에 이런 글귀가 올라와 있다. ‘하느님 올 한 해도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렇다. 부처님 하느님, 당신들의 소리 소문없는 자비로 이 땅의 평화가 내 곁에 와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박영란 선생님의 깊은 마음 동감 합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무섭고 정신이 없습니다. 가까운 아우도 보이스 피싱을 당했습니다.
대형사고로 사람들이 떼 죽음을 당하고 불이나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아집에서 국민들을 괴로움으로 몰아넣고 경제가 마비되고 온 세상을 지뢰밭으로
선한 사람들의 눈까지 빼어가려고 하는 세상이 무섭습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가 어떻게 평화가 올지 걱정 속에서
그래도 선생님의 건강이 빨리 회복 되시길 빌게요. 하루속히 건강찾아 자주 얼굴 뵙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