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루카 4,24ㄴ-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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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당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방식이라면서
시돈지방 사렙타 마을의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을 거론하십니다.
이것이 회당에 있던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방식,
하느님을 바라보는 그들만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집 내지 독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이런 아집과 독선으로는 결코 우리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물 수 없습니다.
자기 본위의 삶으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누군가는 손을 들어 하늘의 달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달을 바라보고자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달을 가리키고 있는 그 손을 자르고,
심지어는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에 불과합니다.
그런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계셨던 사람들이었기에,
특히 그 어떤 사람들에 앞서 가장 먼저 복음을 전파하고 싶으셨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대상자가 바로 그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철저하게도 무시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불경한 사람으로 단죄하고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려고까지 하지요.
이제 고향마을 사람들은 예수님 복음, 구원의 기쁜 소식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이방인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복음의 수혜자가 됩니다.
세례 받은 지 오래 되었다고 해서,
단체장을 맡는다고 해서
절대로 신앙의 잇점이 붙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진지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하느님의 자취를 찾아나가려는 매일의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동족으로부터 발길을 돌리시는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묵상하며,
우리 각자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지 진지하게 반성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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