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우리는 수많은 관계에 묶여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던 관계도 시간이 흐르면 의무가 되고 때로는 피하고 싶은 부담이나 깊은 상처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예수님 역시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과 꼼짝없이 매이는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3년 동안 늘 같은 무리와 식사를 하고 험한 길을 걸으셨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신성을 가지셨기에 제자들의 눈에 보이는 허물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의심과 앞으로 저지를 배신까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과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다 아시면서도 주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유월절이 다 되어 예수께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정점은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수건과 대야를 들고 무릎을 꿇으신 섬김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서열이 가장 낮은 종의 몫이었습니다. 마땅히 섬김과 영광을 받으셔야 할 만왕의 왕께서 가장 낮고 천한 종의 자세로 무릎을 꿇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섬김이 위대한 이유는 그 발들의 미래를 알고도 씻기셨기 때문입니다. 조금 뒤면 로마의 검 앞에 두려워 도망칠 발들이었습니다. 유다의 발은 은 30에 스승을 팔아넘기기 위해 가야바의 뜰로 향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발을 건너뛰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물보다 앞서 찾아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용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수건과 대야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14절) 우리는 흔히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까’라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그 방에서 유일하게 잘못이 없고 유일하게 발 씻김을 받을 자격이 있으셨던 분이 먼저 무릎을 꿇으셨고 화해의 다리가 되어주셨습니다. 관계의 회복은 죄 있는 자가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죄 없는 이가 베푸는 용서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무릎 꿇으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나를 조건 없이 씻기시고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볼 때 우리도 용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던 것 같이 수건과 대야를 드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먼저 무릎 꿇고 용서의 손길을 내밀 때 예수님의 숭고한 사역의 흔적이 우리 가정 위에 피어날 것입니다.
기도 : 주님께서 수건과 대야로 용서하시고 회복을 보여주셨듯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용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