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힌츠페터는 폭동이 발발하여 진압군이 삼엄한 포위망을 펼친 광주를
두 번씩이나 들어가고 나왔다.
2. 힌츠페터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길잡이 '김사복'이 공항까지 마중 나왔고,
김사복은 힌츠페터와 숙식도 같이 했고, 택시운전을 하며 끝까지 힌츠페터를 호위했다.
3.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 '김사복은 조총련 한민통 요원'이었다.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김사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힌츠페터와 움직이는 '공작원'이었다.
4. 당시 광주에는 방송국이 불타는 등 언론에 대한 폭도들의 감정은 나쁜 편이었다.
그러나 힌츠페터가 도착한 광주에는 항상 일단의 폭도들이 환영을 하며 마중을 나왔다.
5. 힌츠페터를 태워주고 취재를 도와주던, 힌츠페터가 동승했던 무장차량에
같이 있었던 폭도들 대부분은 북한군 '광수'로 밝혀졌다.
6. 힌츠페터도 평양 노동당 창건 기념식에 참석한 사진이 발견 되었다.
힌츠페터는 '푸른 눈의 목격자'가 아니라 601호 광수, '푸른 눈의 광수'였다.
7. 힌츠페터를 광주까지 대동했던 김사복은 오리무중이다.
언론들이 김사복을 애타게 찾았지만, 다른 광수들처럼 김사복도 존재가 없었다.
김사복은 '얼굴 없는 광수'였다.
8. 힌츠페터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광주폭도들을 과도하게 미화하는 반면에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정체성과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는
증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9. 힌츠페터가 촬영한 자료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며 반대한민국 세력과 북한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10. 좌익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간첩이나 반역자들이 미화되고 숭상되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들과 빨치산들이 영웅시 되었고, 반역자 김석범은 4.3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힌츠페터도 그런 경우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