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히포크라테스 신의(神醫) 유이태(劉以泰)
수많은 인물들이 역사의 시간을 살았다.
그들 중에는 탁월한 업적으로 후세에 길이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업적에 비해 세상에 덜 알려진 인물도 있으며 또는 과장되거나 왜곡돼 알려진 인물 또한 적지 않다. 어쨌거나 역사 속 인물의 진면목을 만나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일이다. 더구나 그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유의미한 인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여기, 자신 있게 한 인물을 내놓는다.
바로 조선 후기의 명의를 넘어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르쳐서 병자(病者)가 나쁜 마음을 가지도록 않게 하며, 위태할 때 자신의 의지를 굽히고 반드시 따르게 하는 심의(心醫)이며, 죽었던 사람을 살리는 신의(神醫)라 불렸던 유이태가 바로 그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1652년 거창 위천에서 태어나 1715년 64세의 일기로 산청 생초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숱한 생명을 살려낸 의사였다. 또한 두 차례나 조정으로 불려가 왕의 건강을 돌 본 어의이기도 했다.
그런데 유이태는 매우 기구한 인물이었다.
그의 생애가 기구한 것이 아니라 후세대 사람들 탓에 기구한 운명에 처한 인물이었다.
1988년 작고한 이은성씨가 집필한 드라마 중에 1975년 집필한 <집념>이란 작품이 있었다. 그 유명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을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였다. 벌써 45년 전의 작품이었다. 이후 작가는 1990년 <소설 동의보감>을 출간했다. 이후 이 소설을 바탕으로 1999년 <드라마 허준>이 제작되어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들 작품에 허준의 스승으로 그려진 인물이 있었으니 극중 인물 유의태(柳義泰)였다. 미리 밝히거니와 유의태는 허구의 인물, ‘이’와 ‘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발음으로 유이태 이름을 차용한 가공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들 작품 이후 유의태는 실존 인물처럼 여겨지고 말았다.
필자가 박사과정에 있던 2014년 11월 11일 여론기관 윈스리서치를 통하여 “허준의 스승은 누구인가?”를 여론조사 한 바 있다. 의서 <동의보감>의 편찬자 허준의 스승을 알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81%가 유의태(柳義泰)를 허준의 스승으로 답하였다. 드라마와 소설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명의(名醫)로 묘사된 허구의 인물 유의태(柳義泰)가 의서 <동의보감>의 편찬자 허준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이 허구의 인물 유의태(류의태)는 군수, 군청 공무원들과 지역 향토사학자들에 의하여 출생지, 출생년도와 출생지까지 만들어졌다. 이후 어느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어 그 지역 박물관에 영정이 전시되었다. 자치단체의 홈페이지에 지역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게시되기도 하였다. 또한, 국가 소유의 부지에 허구의 인물 가묘와 묘비, 동상과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 그것도 모자라 허구의 인물 이름을 딴 류의태상(賞)을 만들어 매년 시상해 왔었고, 가묘와 묘비, 동상에서 제(祭)을 올리는 행사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실존인물 유이태의 사적을 류의태 사적으로 바꾼 책과 허구의 인물 류의태의 설화집을 간행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느 가문이 방송과 소설에 나왔던 류의태를 자신의 조상이라고 족보에 올렸다.
그렇다면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어디서 온 인물이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柳義泰’가 문헌에 처음으로 나타난 해는 1965년이다.
허준의 어린 시절과 그의 스승을 밝힌 고문헌을 필자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와 허준의 스승을 문헌에 최초로 발표한 학자는 그 당시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장을 지낸 노정우 박사이다. 그는 진주에 거주하는 한의학자 허 모씨로부터 전해들은 산청의 신의(神醫) 유이태 이름을 진주 근처의 대성(大姓) ‘진주유(柳)씨’, 의로울 ‘의(義)’, 클 ‘태(泰)’로 만들어 박우사에서 간행한 <인물 한국사> 「허준 약전」에 허준의 스승으로 발표하였다.
유의태가 기록되어 있는 노정우의 글 「허준 약전」 내용을 읽은 소설가 이은성은 1975년 <드라마 집념>, 1990년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 스승, 그리고 1999년 최완규 작가가 이은성 원작 <소설 동의보감>을 기반으로 제작한 문화방송의 <드라마 허준>에서 유의태를 또다시 허준의 스승으로 등장시켜 살신성인의 명의로 묘사하였다. 이처럼 <드라마>와 <소설>의 영향으로 널리 알려진 유의태는 어느 한 지방자치단체에 의하여 실존인물이 되었고 그 지역의 상징인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는 산청의 실존인물이던 ‘유이태’에서 차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유의태는 허구의 인물, 유이태가 역사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유이태는 산청, 거창, 함양, 합천, 진주 지방에서 오랫동안 향반의 지위를 누리던 가문의 후손이다. 조선의 사대부 가문의 선비라면 누구나 입신양명을 갈망하였으나, 유이태는 나라에서 제수한 관직을 고사하였고 부귀와 권력을 탐하지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그가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귀천(貴賤), 친소(親疎), 민관, 빈부를 구분하지 않고 오직 헐벗고 병마(病魔)에 고생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한 인물이었다.
1931년 진주 회춘헌 약방 박주헌은 그가 펴낸 목판본 <마진편(痲疹篇)> 간행기(刊行記)에서 유이태의 ‘덕망과 의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沒後幾百年 輿擡兒童尙稱其名 當時先生之 德廣術高 可想也..
“세상을 떠난지 몇 백년이나 되었는데도 천민이나 아이들까지도 아직도 그의 명성을 말하고 있으니 당시에 선생의 넓은 덕망(德望)과 높은 의술(醫術)을 상상할 수 있다.”
이미 필자는 2016년 <조선의 참 의원 유이태>라는 책을 통해 유이태를 소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한의사학자로서 지난 수십년 간의 연구와 유이태 추적물을 총망라한 책이었다. 그러다보니 책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어려워진 측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제 다시 <조선의 히포크라테스 신의 유이태>를 평전으로 엮어낸다. 나름대로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유이태에 관련된 기록이라면 모든 자료를 섭렵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역사적인 특정 인물의 행적을 조사할 때는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항목들은 그 인물의 생몰년도, 출생지와 살았던 지역 이름, 묘소의 <묘갈문>, <저서>와 유품, 친가, 외가 및 처가의 가계, 출생지 지역과 활동지의 <문헌 기록>, <왕실기록>과 <사우들의 문집> 등 이다. 이 항목들에 의거하여 모두 살펴보았다. 이 책의 출판으로 왜곡된 대한민국 인물 역사가 반드시 바로 잡혀지고 올바른 역사를 미래의 후손들에게 전해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유이태가 남긴 정신이
이 각박한 세태에 깊은 울림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