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9. 주일 큐티
시편 121:1 ~ 8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 The perfect protector
관찰 :
1) 도움을 구할 바
- 1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 시편 기자는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기에 산을 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산으로 눈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분이심을 시편 기자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산을 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에 의지하여 살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 2절.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시편 기자(아마도 거의 다윗)는 자신의 도움이 누구로부터 오는 것인지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기가 막힌 굴곡 속에서도 자신이 살아있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시편 기자는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또한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된 도움은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신뢰할만한 것이고, 가장 소망스러운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 perfect protector이신 여호와
- 3절.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산을 오르고 있는 형편에서는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가파른 산을 오를 때 실족하는 것은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파르게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실족하지 않도록 한 발 한 발을 도와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빈다. 우리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 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는 perfect protector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분 또 없습니다. 어디에서 누구와 이런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경험적으로 perfect protection을 경험한 가운데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5절.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 시편 기자는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 쬐이는 태양에 계속 노출되면, 뜨거운 정도를 넘어서 화상을 입고, 죽을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때 조그만 그늘이라도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좀 더 넓은 그늘이라면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태양이 작렬하는 상황에서 그 태양을 가려주는 존재가 되시는 분이 지키시는 여호와이시라는 고백입니다.
- 6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 지키시는 여호와는 낮의 해가 상치 못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밤의 달이 해코지를 못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낮이건 밤이건 누구이건 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의지하는 분이 바로 perfect protector이십니다.
- 7절.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 하나님은 환란을 면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도가 당하고 있는 환란이 무엇이던지 간에 그것을 면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지혜는 성경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알아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닫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 고백을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지키시는 분”. 지금은 세상이 발달되어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상당한 부분에 대해서 건강도 지킬 수 있습니다. 살을 빼기 위해 고급 트레이너를 붙이고 그것에 모든 것을 다 걸면 건강도 지킬 수 있습니다. 집도 지키고, 사람도 지키고. 하지만 영혼은 결코 하나님 외에 누구도 지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비밀이자 엄청난 말씀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을 지키시는 분께 우리의 영혼을 맡겨야 합니다. 다른 신은 우리의 영혼을 지킬 수 있는 실력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오직 우리 주 하나님 여호와만이 우리의 영혼을 온전히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 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하나님은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을 지금부터 영원히 지키시는 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더 많은 것을 묵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시를 맺습니다. 이것이 시의 묘미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여호와의 지키심의 영역을 묵상하고 찬미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집에서 나와서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영역을 다 지키시는 주님, 그것도 영원히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시고, 언제나 부르고 채움 받기에 참으로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가르침 :
1) 121편의 시편 기자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위경에 있었는지를 밝히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을 소망하며 그 위경을 극복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제 시편 121편은 실제로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노래입니다. 산을 오르며,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을 주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찬양합니다.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가볍게 되는 이유가 바로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묵상하고 의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2) 눈을 들어 산을 보는 것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불어 닥치는 거대한 문제들을 직면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망해야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의지할 것이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할 분은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으로만 모든 도움과 모든 위로와 모든 은혜를 공급받게 됨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태양을 신으로, 달을 신으로 모시는 이방 족속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았던 시편 기자는 해와 달이 상치 못하는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가, 세상의 문화가, 세상의 부요가, 세상의 신들이 성도를 위협하는 일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문명의 핵심이고, 포스트 모던을 통해서 사탄 마귀가 부리는 수작의 핵심입니다. 이 상황에서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태양도 달도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태양과 달의 위협에 대해서도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4) 태양과 달이 신이 아니라는 이 고백은 태양과 달을 신으로 섬기는 모든 이방과 척을 지는 고백입니다. 이방인들 틈 속에서 살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면 죽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perfect protector이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생명을 보존 받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에 숨겨진 사탄의 괴계에 반대할 때 많은 핍박이 몰려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 하나님만이 perfect protector이심을 믿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나 옳은 선택이고, 최선의 선택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perfect protector이십니다. 아무리 소망이 없고, 갑갑하고 답답해도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되면 참된 위로와 안식과 평안을 얻게 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것이 시편 기자의 고백이자 나의 고백이고, 중심이고 배짱입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성실해야 합니다. 좀 의지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다른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삶의 정황에서 피하는 것은, 나태한 것은 주님의 원하심이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태도를 늘 면밀히 살피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늘을 또 내일의 오늘을, 그리고 모레의 오늘을 성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게 될 때, 우리는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로 그곳에 거하게 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정상의 자리에 나아가도록 날마다 주어지는 오늘을 여호와를 의지하며 충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가장 중요한 바탕은 오늘 시편 기자가 고백하고 묵상하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산에 오르며 부른 노래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나를 새롭게 하고, 나를 온전하게 할 것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