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치앙마이는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성지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은 도시이다.
디지털은 스마트폰 • 노트북 • 인터넷 등과 같은 IT 기기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의미한다.
노마드는 유목민 혹은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디지털 노마드는 원격 근무자(Remote Worker)를 의미하는 말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방식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주로 카페나 해외 휴양지 등에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프리랜서 • 1인 기업가 • 작가 • 프로그래머 • 디자이너 등 온라인으로 결과물을 전달할 수 있는 직업군이 많다. 최근에는 원격 근무(Remote Work)가 보편화되면서 일반 직장인들 중에서도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치앙마이의 가장 큰 매력은 가성비이다. 치앙마이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콘도미니엄과 세련된 카페, 맛있는 현지 음식을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다. 덕분에 적은 비용으로도 쾌적한 생활 환경을 유지하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업무 환경이 매우 잘 구축되어 있다. 태국 통신사 AIS의 'AIS Fibre' 같은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여 동남아 내에서도 인터넷 속도가 매우 빠른 편에 속한다.
또한 펀스페이스 • 옐로우 • CAMP 등 유명한 공유 오피스가 많으며, 24시간 운영되는 곳도 있다.
공유 오피스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와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일하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이다.
님만해민 • 올드타운 • 싼티탐 등 도시 곳곳에 콘센트와 Wi-Fi가 완비된 워크 프렌들리 카페가 즐비하다.
⬆️ 님만해민에 있는 Yellow Coworking Space 모습.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와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일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개발자 • 디자이너 • 마케터 등 다양한 분야의 노마드들이 치앙마이로 모여든다. 정기적인 밋업(Meetup)이나 세미나가 자주 열려 새로운 인맥을 쌓고 정보를 공유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치앙마이는 디지털 노마드 도시이다.
✅️ 코워킹 스페이스를 카페로 착각
내가 한 번은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올드타운을 거닐다가, 칼라풀하게 꾸며진 멋스러운 건물 안팎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올드타운에 있는 Punspace Wiang Kaew에서 디지털 노마드들이 야외 Coworking하는 모습.
커피 한 잔하려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입구에서 직원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그제야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노트북을 펼쳐 놓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 실내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카페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일반 회사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어색한 공간이었다.
‘참 묘한 곳이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바로 코워킹 스페이스, 펀스페이스였다.
[13] 느린 도시
치앙마이가 흔히 1달 살기의 성지이자 느림의 미학이 있는 도시로 불리는 데에는 지리적 • 문화적 • 사회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단순히 물리적인 속도가 느린 것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여유롭기 때문이다.
태국인들의 국민 정서인 '짜이 옌옌'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서두르거나 화를 내지 않고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태도가 치앙마이 특유의 평온한 분위기를 만든다.
바쁜 현대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와 대조되는 이 여유가 여행객들에게는 '느린 도시'라는 인상을 준다.
치앙마이는 과거 란나 왕국의 수도로서 고유의 예술적 전통이 깊다. 손으로 직접 짜는 직물 • 세밀한 은공예 • 목공예 등은 기계로 찍어내는 속도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핸드메이드' 문화는 도시 곳곳의 예술인 마을(반캉왓) 등에 녹아 있어 도시의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만든다.
올드타운의 사각형의 해자와 성곽 안에 수많은 고대 사찰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같다. 고층 빌딩보다는 낮은 건물들과 골목길이 많아 시야가 탁 트여 있으며, 이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느긋함을 제공한다.
또한 북부 태국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은 물리적으로도 도시의 팽창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방콕 같은 대도시의 마천루 대신 고층 빌딩 제한이 있는 올드타운과 주변의 풍부한 녹지는 거주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과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
도심 바로 옆에 도이수텝이 위치해 있고, 주변이 울창한 정글과 농경지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의 시간표는 인위적인 시계보다 느리게 흐르기 마련이다. 치앙마이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흐름에 맞춰 생활하는 방식을 고수하며 도시의 속도를 조절한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디지털 노마드들이 치앙마이를 찾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만이 아니다. 저렴한 물가 덕분에 적게 일하고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다운시프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 몇 시간씩 책을 보거나 작업하는 풍경이 일상인 이곳에서 '느림'은 곧 '휴식'이 된다.
⬆️ 삥강이 유유히 흐르는 카페에 앉아, 시간마저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여유 속에 몸을 맡긴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1달 살기' 여행자들이나 디지털 노마드들은 치앙마이를 쉼의 공간으로 정의한다.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도시의 정체성과 결합하면서, 치앙마이는 현대인들에게 대표적인 슬로우 시티로 각인되었다.
● 느린 태국 운전 문화
태국 특히 치앙마이의 운전 문화는 한국에 비해 심리적인 속도는 '느긋'하지만, 실제 도로 흐름은 '복잡'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태국인들의 '사바이 사바이'(편안히 편안히)라는 느긋한 성격이 운전에도 반영된다.
앞차가 조금 늦게 출발하거나 끼어들기를 해도 경적을 울리는 일이 드물다. 경적을 울리는 행위 자체를 매우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좁은 길에서 차가 끼어들려고 하면 의외로 잘 양보해 주는 편이다.
태국 교통법에서도 경적은 사고 예방이나 위험 경고를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단순히 앞차가 1~2초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경적을 울리는 것은 법적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현지 경찰이 보기에 소란을 피운다고 판단할 여지는 있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차선 사이를 누비기 때문에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들을 살피느라 급가속이나 급회전을 자제하며 조심스럽게 운전하게 된다.
⬆️ 차선을 누비는 수많은 오토바이
태국은 교차로 우회전(한국의 좌회전 개념. 태국은 좌측통행) 대신 먼 거리를 가서 유턴해 돌아오는 구조가 많다.
중앙분리대가 끊긴 지점에서 U턴 신호 없이 반대 차선으로 직접 U턴해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 차선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다.
U턴할 때는 흐름을 읽고 스스로 타이밍을 가늠해야 한다. 그러나 성미 급한 운전자는 그 짧은 기다림조차 견디지 못한 채, 성급한 유턴으로 도로의 흐름을 가른다. 이는 가장 흔한 사고의 원인이 된다.
나 또한 그 위태로운 순간들 속에서 몇 번이나 심장이 내려앉는 아찔함을 겪었다. 조수석에선 있지도 않은 브레이크를 혼자 열심히 밟아대며 ‘마음의 제동’을 걸었다.
⬆️ U턴 신호등이 따로 없다. 상대방향에서 오는 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 반대편에서 U턴해 들어오는 차량에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한국인이 운전할 때는 이 두 가지, 오토바이 • U턴이 제일 위험하고 어렵다.
✳️ 태국은 차량이 좌측통행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왼쪽으로 통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습이었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에 마주 오는 사람을 오른손으로 방어하거나 무기를 사용하기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 관습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영국에서는 좌측통행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18C 말, 영국은 교통 질서를 정비하면서 좌측통행을 공식화했다. 대표적으로 1794년 런던 도로 규정에서 좌측통행 원칙이 명확히 정해졌다.
같은 시기 프랑스 나폴레옹이 지배한 유럽 대륙은 우측통행을 채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에서는 좌측통행이, 유럽 대륙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우측통행이 자리 잡게 되었다.
영국의 영향으로 인도 • 호주 • 일본 • 태국 등 일부 국가들도 좌측통행 체계를 따르게 되었다.
▪︎태국은 식민지 지배를 받지는 않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주변의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 • 인도 등과 교류가 많았다.
이들 지역이 영국식 좌측통행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국도 자연스럽게 좌측통행 체계를 도입하게 된다.
또한 철도와 도로 시스템을 정비하던 시기에 영국식 기술과 기준이 일부 들어오면서
좌측통행이 제도화되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의 영향을 받아 좌측통행 체계를 사용했으나 1945년 광복 이후에 미국 군정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측통행으로 변경되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철도 • 교통 시스템을 영국에서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좌측통행 체계가 함께 들어왔고, 이후 도로 교통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20C 초에는 일본이 이를 법으로 공식화하여 좌측통행을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
▪︎미국이 우측통행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8C 대형 화물 마차 운행 관행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과거 콘네스토가 마차(Conestoga Wagon) 같은 대형 화물 마차가 널리 쓰였다. 이 마차의 마부는 보통 왼쪽 뒤편 말에 올라타거나 마차 왼쪽에 앉아 오른손으로 채찍과 고삐를 다뤘다.
이는 마부가 오른손으로 왼쪽에서 채찍을 다뤄야 오른편의 말들을 보다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필의 말이 함께 움직일 때는 맨 뒤에서 조정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 콘네스토가 마차의 마부는 여섯 필의 말 가운데 왼쪽 맨 뒤의 말에 올라타고 있다.
이 경우 도로 오른쪽으로 가야 중앙 쪽 시야 확보가 쉽고 마주 오는 마차와의 간격을 보기 편했다.
영국 식민지였지만, 미국에서는 초기부터 영국식 좌측통행을 그대로 따르지 않은 지역이 많았다. 특히 광활한 도로와 화물 운송 중심 환경에서 우측통행이 더 실용적이었다.
1792년 펜실베이니아 주, 1804년 뉴욕 주가 우측통행을 법제화하였다. 이후 점차 전역으로 확산되어 1860년대 남북전쟁 무렵에는 사실상 전국의 기준이 되었다.
20C 초 차동차 회사 헨리 포드의 포드 모델 T가 '왼쪽 운전석 + 우측통행' 구조를 대중화하면서 오늘날 체계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 헨리 포드의 포드 모델 T
✳️ 좌측통행 차량은 왜 운전석이 우측일까?
마주 오는 차와의 안전 거리와 추월 시 안전 간격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측통행에서는 차량이 도로의 왼쪽으로 달리고, 마주 오는 차는 중앙선 오른쪽에 있다.
따라서 운전자가 중앙선 쪽인 오른쪽에 앉아야 마주 오는 차량과의 안전 거리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추월 시에도 안전 간격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앞차를 추월할 때 중앙선 쪽 시야가 가장 중요하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으면 반대편 차선 상황을 더 쉽게 확인 가능하고 안전한 추월이 가능하다.
✳️ 여객기는 대부분 좌측접현
여객기가 보통 왼쪽으로 승객을 태우고 내리게 하는 이유는 역사와 운영 효율이 함께 굳어진 결과이다
초기 항공은 해운 용어와 관행을 많이 이어받았다. 배가 항구에 접안할 때 주로 왼쪽(port side)으로 대던 관습이 항공에도 이어졌다.
옛날 배가 주로 왼쪽으로 접안한 가장 큰 이유는 조타 장치 때문이다. 과거에는 배 뒤 오른쪽에 긴 조타용 노를 달아 방향을 틀었다. 당시 선원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에, 오른쪽이 조종하기 더 편했다.
⬆️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도 선미 우측에서 오른손으로 노를 조작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그래서 부두에 댈 때 오른쪽으로 붙으면
조타용 노가 부두에 부딪혀 손상될 수 있고
배를 다루기도 불편했었다.
이 때문에 조타 노가 없는 왼쪽을 부두 쪽으로 붙이는 관행이 생겼다.
공항 터미널의 탑승교 • 계단차 • 지상 장비도 대부분 왼쪽 탑승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세계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기장도 대개 왼쪽 좌석에 앉는다. 탑승교에 붙을 때 왼쪽 시야 확보가 좋아 접현 • 정렬이 수월하다.
따라서 지상 작업과 승객 동선도 분리되어 있다. 비행기 오른쪽은 급유 • 수하물 적재 • 기내식 탑재 • 정비 차량 이동이 많이 이뤄지는 쪽이다. 승객을 왼쪽으로만 태우면 사람과 장비 동선이 겹치지 않아 더 안전하다.
⬆️ 치앙마이 공항의 주기장. 여객기는 좌측으로 접현해 승객을 맞이하고, 우측에서는 케이터링과 수하물 하역 작업이 분주하게 이루어진다. 그 너머로는 도이수텝이 능선을 드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