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소설 타임스
기혁
소설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잔뜩 멋을 부리고 화장부터 해야겠지
내가 누군지, 당신이 누군지
남아있는 인생을 이리저리 매만지면서
조물주를 걸었던 다짐과 서글픔 따위는 잊어버리고
불성실한 진실을 보면 솟구쳐오르는
거울의 구라에 충실해야겠지
좌우가 뒤바뀐 입장이라 할지라도 눈물을 흘리면
생활의 번짐만 묻어날지라도
노련한 연극배우처럼 조이고 조인
문장의 나사를 연기해야겠지 천의 얼굴을 가진 건
주인공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내포 독자들
금이 간 소설 앞에 서서 금이 간 현실에 덧칠한 형형색색
환대를 모른 척 화장을 새로 고쳐야겠지
돈과 사랑과 명예와 자존심과 그 모든 이야기의 발상지를
표정에 담고 오래 살던 동네 귀신처럼 살갑게
거울 속 낭독회에 참석해야겠지
싸구려 술집 화장실에서 쓰러진 취객을 만날지라도
피투성이가 된 주인공의 주먹을 묘사하면서
상처 하나 없는 멍 자국을 떠올려야겠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다 삶의 미지를 마저 치고
빠지고 진짜 강냉이가 털리는 날에는
약속해, 우리 모두 채플린의 스마일을 흥얼거리기로
----애지 가을호에서
기혁 2010년 시인세계(시) 등단, 2013년 세계일보 평론 등단. 시집으로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소피아 로렌의 시간』,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