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46]100년 전, 한-중 지식인의 우정
구한말, 이름을 크게 떨친 3대 문장가로, 영재 이건창(1852-1898), 창강 김택영(1850-1927), 매천 황현(1855-1910)을 든다. 이들은 이른바 ‘신교(神交: 정신적인 사귐) 3인방’이다. 1874년 김택영이 이건창을 만나 먼저 사귀었고, 1880년 광양에서 이들은 만나려 상경한 황현과 처음 만나 3인은 평생 못잊는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됐다. 이들은 평생 고작 한두 번 만났을 뿐이나, 서로의 비범함을 글로써 알아봐 꿈에서도 그리워할 정도의 지음(知音: 중국 백아와 종자기에서 유래된 ‘최고의 친구’)이었다. 매천은 이건창이 46세에 숨지자 ‘깜짝 놀라 눈물을 줄줄 흘린다’(愕然下涕)는 시를 쓰며 슬퍼했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문 Ⅲ-26(2)]매천 황현의 신교(神交) - Daum 카페
1905년 을사늑약 후 창강이 망국을 한탄하여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오죽했으면 매천과 같이 망명하자며 절절한 편지를 썼을까(매천은 실제로 가려했으나 피치못할 사정으로 시도를 멈췄다). 창강이 중국으로 망명을 결심한 데는, 1892년에 사귄 청나라 최고의 지식인 장건(張謇. 1853-1926)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터. 장건은 근대 중국의 대실업가이자 정치가 교육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국경을 초월한 이런 큰 후원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중국인들은 한번 마음을 줬다하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정도라더니, 장건은 창강이 중국 남통(南通.강소성)에 정착하는데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줬다. 창강이 출판사 ‘한묵림서국’(韓墨林書局)에서 “(책을 펴내) 나라의 역사와 정신을 지킨다”는 문화보국(文化報國) 문장보국(文章 報國)의 신념으로 평생을 일관하는 데, 장건과의 ‘우정 30여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창강은 중국에서 <여한 9가문초> <한국통사> <교정삼국사기> <안중근전> 등 우리의 역사와 문학관련 책을 편찬하며, 매천과도 편지소통을 꾸준히 했다. 1910년 매천의 순국직후 그의 문집을 펴내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매천의 스승인 왕석보와 4부자 한시집 <개성가고>도 엮은, 간송 전형필 선생과 같은 ‘문화애국자’였다. 평생 붓으로 조국의 역사와 독립의지를 기록한 창강선생은 중국 남통에서 절망을 견디다못해 음독자결했다고 한다.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아무튼, 내가 창강 김택영에 대해 흥미를 느낀 것은, 지난 6월 28일 [찬샘통문 Ⅲ-26(2)]에 쓴 ‘매천의 신교’ 때문이지만, 그 창강의 증손자(김영준 근현대사 자료 콜렉터)를 엊그제 만나 뵙고 긴 얘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2017년 중국에서 창강 김택영선생 서거 90주기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주최측에서 창강의 후손과 장건 선생의 후손도 초청했다는 것이다. 하여, 거의 100년을 건너뛰어 얼굴도 모르던 창강과 장건의 증손이 만나 그들의 '증조부 우정'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니 어찌보면 신기하지 아니한가. 더욱 더 아름다운 이야기는, 내가 존경하는 김영준 선배께서 초대를 받아 중국을 방문하는 그의 장형(김진형)에게 ‘증조부께서 당시 장건 선생의 신세를 많이 졌으니 그 후손에게 한 턱 마음놓고 쏘시라’는 뜻으로 거금을 드렸다고 한다.
모처럼 선배를 만나 뵙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창강의 본관은 김해김씨에서 분파한 ‘화개김씨’(화개장터로 유명한 花開이다)로 본래 개성(開城)의 명문가였으며, 선배의 부친이 월남하여 사업을 크게 했다고 한다. 증조부는 직계 할아버지의 아버지이니 태평성대였다면 존안도 뵐 수 있는 직계 3대조가 아닌가. 증조부인 창강의 유품(고종의 교지, 칙명, 과거시험 답안지, 문집과 1927년 당시 부고장 등)들은 독립기념관에 모두 기부, 기념관에서 별도의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고 한다. 창강이 망명 후 중국에서 얻은 아들의 후손들과 대한민국의 직계후손들의 교류가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을 듯했다.
문득, 2013년인가 성균관대에서 교직원으로 일할 때, 퇴계 이황의 17대 종손 이치억 박사가 어느날 교정에서 고봉 기대승의 후손과 만나 둘이 400여년 전 선조들이 나눈 ‘학문적 신교’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을 본 것이 떠올랐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중국을 방문하여 사귀여 죽을 때까지 스승으로 모신 금석문학자 옹방강과의 편지 교류, 스승의 사후에도 그의 아들과 소통을 계속한 이야기, 매천의 동생 황원과 이건창의 동생 이건승이 형들이 죽은 후에도 이어간 인연 등, 집안끼리의 사귐이 대(代)를 이어 지속되는 것을 ‘세교’(世交)라 했던가. 이런 집안끼리의 사귐이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역사’를 성찰하게 하는 ‘아름다운 만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미시사가 거시사가 된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한 나라를 대표할 만한 지식인들의 ‘고급진(품격있는) 우정’이, 나아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 학문을 꽃피우는데 있어 일조를 하는 '훈훈한 미담'으로 자리잡는 게 아닐까. 아아-. 부럽다. 구한말 대문장가 3인방의 신교가. 부럽다. 1백여년 전 국경을 초월한 아낌없는 우정이. 부럽다. 짱짱한 집안 후손끼리의 세교가.
덧붙임: 어제 쓴 '제대로 기자' 장인수씨는 '흑역사 투성이'인 MBC를 2023년 퇴사(이명수기자가 터트린 김건희 7시간녹취록 보도 미흡관련)한 후, 유튜브언론 <저널리스트>를 운영하는 탐사보도 전문언론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MBC에 재직할 때 <시사매거진 2580>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등 시사-탐사보도부서에서 일했다. 장기자는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사건, 조선일보 대표일가 갑질사건,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삼부토건 조회장관련 보도 등 굵직한 시사보도로 정평이 나있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최욱의 매불쇼> 등 시사유튜브 방송에 간헐적으로 출연, 다양한 취재 비하인드와 고발성 이슈를 전달하고 있는 '참 기자'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