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이 싫다. 독재를 하면서 정적을 제거하고 죄없는 국민들을 탄압한 것도 물론이지만,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는 새마을운동이라는 되먹지 않은 것이 으뜸이다.
잘 살기 위해 경제 계획을 하여 오늘 날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그가 저질러 놓은 범죄를 눈 감아 줄 수도 있다는 진보주의자들도 가끔 있다.
박정희 산업화 시대 농촌의 빈농들과 자식들은 마치 잡초처럼 쑥쑥 뽑혀 도시로 올라와 공순이 공돌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의 빈민들이 되었을 뿐이다. 달동네로 그들은 옮겨 온 것 뿐이다.
30 여년 전, ‘서울의 달’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김운경 작가의 작품이다. 서울의 달은 달동네로 옮겨온 농촌 빈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힘없는 그들은 모여 살아야지만 했다. 그들이 갈곳은 거기 밖에 없었다.
그들의 애달픈 이야기들이 서울의 달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진정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2014 년 김운경 작가는 또 다른 드라마로 나를 매료 시켰다. ‘유나의 거리’ 다.
유나의 거리는 도시계획으로 아파트를 짓기 위해 내쫒겨 달동네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그곳에서 어떡하던 살아야 하는 달동네 서울의 달 2 탄이다.
주인공은 소매치기를 하며 살아가고, 싸가지 없는 졸부집에 세들어 살면서, 거기서 벌어지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다.
졸부 역시 싸가지는 없지만 역시 그들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다.
드라마에 대한 소감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김운경 작가의 전화를 받았고, 그는 한창 장사하던 나의 매출을 대단히 많이 올려 주었다.
박정희는 농촌의 빈민들을 도시의 빈민으로 만든 죄도 있지만, 그 보다 더 큰 죄는 농촌의 공동체를 파괴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술을 담그지 못하게 해서 막걸리를 담가 먹던 농촌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든 것이고, 농촌 마다 존재했던 서낭당과 무당을 미신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서낭당과 무당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샤머니즘이다. 샤머니즘은 유일신의 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신뢰이고 사랑이다. 심지어 무생물에도 신은 존재한다고 믿었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사람들은 자연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막걸리 역시 그것이 일부였다. 과거에는 동네마다 양조장이 있어, 아이들은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사오다가 호기심에 막걸리 주둥이에 입을 대고 몰래 먹었다. 나도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막걸리는 벼농사의 공동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얼큰하게 취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촉매제였다.
어느새 막걸리는 밀주가 되고, 마을 마다 존재했던 양조장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서낭당과 무당을 미신을 전파하는 괴물로 여기게 되었다.
박정희의 최악의 범죄는, 농촌의 자발적인 공동체를 파괴한 것이다. 새마을 운동으로.
막걸리를 담가 보았다. 그러나 한 번 담그고 포기했다. 너무 맛있게 만들어서 데뷔하는 날, 막걸리 단지를 안고 전부 마셔버려 하루 종일 취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마트에서 조금씩 사다 먹는 현명한 방법을 취했다.
요즘 막걸리가 맛있다. 장마철에 막걸리는 딱 어울린다. 막걸리를 마시고 취해, 노래를 부르는 맛은 기가 막히다.
베란다에서 내가 키우고 있는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교실에서 배운 노래들을 복습한다. 노래교실 선생님의 훌륭한 제자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