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칫밥도 맛 있다.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 줄도 잘 모르겠지만 고령자일수록 밖에서 식사를 한다던지 친구를 많이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있다. 자칫 잘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고 그러다보면 뜻 아니 치매라는 올가미에 갇혀버릴 가능성이 있기에 하는 말인 것 같다.
시쳇말로 99 88 하다 234 하기 위해서 가장 보편적인 건강관리를 위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친구나 만나는 사람을 통해 건강한 생각을 갖을 수 있도록 하는 방편으로 권하는 말인 듯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 한 것 같아 안타깝다
몸은 노쇠해 가고 기력이 빠져 후들거리는 무릅을 끌고 친구 만나러간다? 친구 말고라도 대화 할만한 상대를 찾아 나선다고?
평균 여명이 83세를 훌쩍 넘어간다는 요즘이라고들 말하던데 80줄을 넘고보면 알게 모르게 소식없이 이 지구를 먼저 떠난 친구들이 대다수이고 그나마 아픈 무릅 구완 못하고 턱없이 멀어진 청력때문에 고래고래 소리지르거나 상대말도 못 들은 척 눈만 검벅거리느니 아예 집안에 들어 앉는 편이 훨씬 자선적(慈善的)일 수 있다는 자조적인 웅변앞에 누가 토를 달 것인가?
숫제 집안에 들어 앉아 꾀죄죄한 소파에 파묻혀 아침부터 밤까지 "눈칫밥" 얻어 먹어가며 아무런 바람도 없이 TV채널만 올렸다 내렸다하다 어쩌다 리모컨에 걸려든 흘러간 옛 영화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 주연의 "애수(哀愁) Waterloo Bridge"를 보다 저도 모르게 젖은 눈물 닦다가 아내로부터 핀잔 받기도 하지만 차라리 이게 편한 것을 어쩌란 말인가?
공교롭다 하기도 뭣하지만 내 아내의 절친 5 사람 중 친구 네사람은 일찌감치 "삼식이"란 질곡에서 해방된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아내만이 철저한 "삼식이" 봉사자이다. 어쩌면 희생자일는지도 모른다.
6년 전, 이 노구가 대장암에 걸렸을 때 나는 대장암 수술을 거부했었다. 내 이유는 명확했다. 80대에 수술을 받고 다행히 살아 난다고 한들 내가 사는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냐하는 것과 내가 나이 들어 경제활동을 중단한 뒤에 손에 남은 것도 없는 주제에 남겨 둔 가족들의 금전적 손실을 끼쳐서야 되겠느냐하는 이유때문이었다.
2~3개월을 버티다가 담당교수와 가족 친지들의 설득(Friendly Persuade)에 따라 수술받고 5 년 생존확률(5 Year Survival)을 거쳐 6년째 살고 있다.
대학 그리고 고등학교 동기 동문회의 간사를 맡고 있다. 사회복지를 위한 공공 시설에서 봉사하며 교통비 정도의 용돈도 번다.
99 88의 범주 안에서 1주일에 한 두 편의 수필과 시를 쓰고 행여 치매의 노예가 될까 봐 옛날 중고교에서 배웠든 수학 ( 2차방정식 근의 공식을 유도하고 삼수선의 정리)을 풀기도 한다 (이과계가 아닌 사회계열 출신이지만 내가 좋아한다)
친구와의 외식약속을 제외하면 매일 거의 100% "삼식이"의 눈칫밥을 챙겨 먹는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궁시렁댄다. "남들은 일찍암치 "삼식"운전을 마쳤는데 나는 왜 "삼식이"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지?"
나는 매일 "눈칫밥"을 먹는다. 우리말 국어사전에 "눈치를 보아가며 얻어 먹는 밥이란 뜻으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지 못하는 상항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눈칫밥"이라는 뜻과 내 일상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90을 다 산 나이에 정량 밥(식당밥공기보다 약간크다)이 좀 모자란듯 하지만 소식을 위하여 가급적 과반을 하지 않는다.
"눈칫밥"인데 그렇게 맛이 있느냐고 아내가 묻기까지 한다.
"암! 맛있고 말고"
지난 2019년 3월에 암 수술 받지않고 2~3년동안 그냥 사는데까지 살다 조용히 떠나겠다는 내 의지를 꺾은 담당교수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이 바꿔놓은 하늘의 천기(天機)를 어느 누가 감히 운운할 것인가?
오늘 아내와 함께 마트에 가서 통김치를 사왔다. 집에 오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게장과 김치한포기를 개봉하여 밥상에 올려 놓았다. 먹다 보니 밥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다. 요즘 부쩍 그렇게 느낀다.
오늘도 밥상에서 일어 서며 저절로 흘러 나오는 말~
"어~허~ 저녁 "눈칫밥", 잘 먹었다~"
( 진짜 맛이 있다)
- 글 / 日 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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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70대 이후에는 제 전공이나 직업과는 전혀 관계없이 글쓰기에 재미 붙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글 쓴다는 것이 시짚스의 돌굴리기 형벌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냥
글을 생각하는 동안만은 "나 홀로" 왕같은 착각을 즐깁니다. ㅎㅎ
자주 뵙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