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quiemː제 2 화]
글쓴이 켄지냥
산 정상 위에서 보이는 바다. 그 바다는 나의 심란한 마음 덕인지, 노을 때문인지 붉게 물들여 있었다. 그리고 그 와 함께 나의 착각 때문인지 피비린내가 내 코를 찌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과거의 기억 속에 사 묻혀 있던 것일까. 나를 깨운 그 아이의 발자국 소리에 나는 마르고 살짝 갈라진 입술을 때서 시간을 물어봤다.
'몇 시지?..'
'저녁, 생각은 해봐야 할 듯한 시간인 것 같네요.'
참 오랫동안 이곳에 앉아 있었구나. 저 아이는 분명 해 뜬지 얼마 안 되서 온 것 같았고, 그게 조금 전인 것 같기도 하고. 오전이 지나, 오후를 걸쳐 벌써 저녁이 되간단 말이지.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뻐근하다. 무릎이 뻐근하고 허리에서는 두두둑 소리가 난다. 짧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목도 풀어줄 겸 한번 머리를 휙 돌려 보고선, 팔을 벌려 밀려오는 바람에 잠시 몸을 맡겼다. 찬 공기가 코로 들어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정신을 맑게 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앉아 있다 일어나서 그런지, 잠시 눈 앞이 흐려지며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머리에 피가 돌 때 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빈혈. 천하의 렌이라고 불리는 내가 빈혈이라고 한다. 몸이 약해서도 아니라 단지 유전적인 것이라고 한다. 성가신 일이 아닐 수 가 없다. 몸이 정신까지 붙잡아서 끌어내린다. 검을 든 나의 손과 팔에 힘을 빠지게 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름이?”
“아직은.. 아직은 없습니다.”
“아직이라..”
재미있는 놈이네.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라. 붉은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있었지만 키는 꽤 커 보였다. 나보단 작았지만, 비슷한 듯했다. 그 푹 숙인 고개의 머리는 무릎까지 반듯하게 따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눈에 띄는 끈으로 묶여져 있었다. 깔끔한 옷과는 다르게, 그것은 색이 바랜 천으로 만들어진 끈이었다. 그리고 살짝 끝에 무언가 들었는지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는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려고 하자 나는 다시 말을 꺼내어 아이를 고개 들게끔 했다.
“왜 왔냐?”
“네?”
“여긴 왜 왔냐고.”
그 아이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러다가 주변을 스윽 훑어보며 할말을 찾는 듯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했다. 그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까..그분이 보내서..”
“네가 올 마음이 없었다면 충분히 싫다고 말했을 것 같은데?”
“그 곳에 머물기 싫었어요.”
“음.. 그래? 왜 싫었는데? 밥 안주디?”
“아뇨. 그냥.. 그냥 싫었습니다.”
“그럼 왜 왔는데? 네가 어떻게 왔는지, 어쩌다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고, 네가 왜 사람들로부터 다 떨어진 이 산속으로 왔는지, 그게 궁금하네.”
“검을 배우러 왔습니다.”
“왜?”
“제가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힘이 필요하고요. 힘 있는 자들은, 검을 알지 않습니까?”
“그래?”
나는 내 허리춤에 묶여 있던 검 두개를 풀어서 던져 주었다. 둘 다 받으면서 갑작스러운 무게에 아이는 검을 떨굴 뻔했다. 그 아이는 큰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눈이 푸른색이군. 바다 같은 눈이었다. 그런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자. 죽여봐.”
“예,예?!”
“죽여 보라니깐?”
“아, 아니. 느닷없이 죽이라니요.”
“네가 힘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네가 알던 그 힘을 가진 사람들은 검을 들고 있었으니. 그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검을 들었다. 그러니, 너도 한번 그리 해보라고.”
아이는 말문이 막혔는지 검을 내려 보았다가 나를 보았다가, 다시 검을 내려보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고작 그런 결심으로 검을 배우겠다고 말을 한 거냐? 왜, 내가 검을 써 본적도 없는 네게 죽을 것 같아서? 어서 죽여 보라니깐?”
말을 살짝 비꼬아 말을 해보았다. 생각을 하는 듯 보이더니, 그 아이는 검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런 후에 손잡이를 잡고 망설이며 손잡이를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가를 반복하였다. 마음을 잡은 듯한 후 그 손잡이를 당기고 칼날이 칼집에서 나오면서 마찰음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노을을 등진 나의 그림자가 진 부분을 제외한 칼의 몸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사용해 온 것을 감추지 못하는 자국들이 검신 전체에 남겨져 있었다. 그런 검을 완전히 뽑아 한번 치켜든 아이의 폼은, 멋졌다. 처음 칼을 뽑은 자세가 아니었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나이에 검을 처음 뽑는 것이라면,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좋을 듯 하긴 했으니깐.
숨소리가 들렸다. 약간 떨리면서 무언가를 결심하기 직전의 가파른 숨소리. 재밌군 그래. 나는 뒤를 돌아 조금 걸어나갔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달려 오는 것을 들었다. 아니, 느꼈다는 표현이 더 옳을 듯 싶다. 빨랐다. 천부적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울 만큼 빨랐다. 그 정도로 시험은 거두기로 했다. 검을 느끼는 순간 지상에서 발을 뒤로 차 가벼운 몸 동작으로 손끝과 발끝으로 땅에 착지했다. 한 마디로 몸을 낮춰 땅에 밀착 시켰다. 그리곤 곧 바로 왼쪽으로 한바퀴 돌고 일어섰다.
“묘기를 보여주시는 것입니까?”
녀석 역시 흥미롭다는 듯이 날 보고선 다시 한번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진으로 파고 들어오는 검은 나의 검이었다. 그 아이가 잡은 손잡이는 길었다. 그리고 그 긴 손잡이가 잡힌 곳은 끝이었다. 나는 그 앞부분을 발을 뻗어 찼고, 그 검은 공중에서 한바퀴 휙 돌고 나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아이의 깨끗한 돌진 자세 보다도 더 마음에 든 것은 굴하지 않은 그 아이의 마음이었다. 검이 손에서 튕겨 나가자 마자, 남겨둔 나머지 검을 향해 그 아이는 몸을 틀어 달렸다. 빠른 속도로 멈추며 그 아이의 신발은 땅을 파고 들었고, 곧 검을 들어 뽑아 나를 향해 들고 있었다. 오늘로서 두 명이 나를 향해 검을 뽑은 것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아이는 달려왔고 이번엔 내가 든 검을 뽑아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하지만 곧 아이는 칼을 때서 바닥에 놓고 얌전히 뒤를 돌아 걸어갔다.
“왜 그러냐?”
“저는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 쪽은 너무 태평하고 여유 있는 걸 보면, 저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걸 느낄 수 있는데..”
“포기냐?”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솔직하게 할 수 없다고 말 하는 것도 일종의 용기라고 봅니다.”
갈수록 재미있는 아이다. 어디서 저런 걸 배웠을까. 순수하면서도 멋들어진 뒷모습. 그리고 보니 머리가 풀어지고 있었다. 나로부터 멀지 않은 지점에 끈이 풀려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서 그것을 주웠다. 무언가 들어있다. 엄지로 위를 스윽 문질러보니 안에 종이가 든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서둘러 넣었고, 아이에게 걸어갔다. 내 손에는 아직도 검이 들려 있었다. 팔을 들어 아이의 뒤통수를 향해서 검의 끝을 들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그 아이가 첫번째 검을 뽑고서는 칼집을 들고 공격 안하고 바닥에 놓고 했다는 것을. 내가 들고 있던 검은 집으로 돌아갔고 그 아이가 밀고 들어와서 검의 손잡이가 내 복부를 파고 들어왔다. 오랜만이다. 이런 고통. 나는 입술을 살짝 물고 몸을 틀어 검을 뽑을 공간을 만들어 팔로 칼집에서 빼냈다. 왼쪽으로는 배를 움켜잡고 그 아이가 휘두르는 칼집을 막고 왼손을 뻗어 칼집을 잡았다. 그리고 순간 울컥해서 아이의 다리를 휙 걸고 넘어트렸다.
“후우.. 짜릿한걸.. 나의 승리다.”
“대단하시군요.”
“그것 보다 너는 포기한다더니 공격하는 건 뭐냐?”
“먼저 제 머리에 칼을 대셨잖아요.”
“느꼈냐?”
“당연하죠!”
“잘했다.”
“에?”
몸에 벤 것인가. 아니면 천부적인 소질인가. 재치가 많은 것인가? 아직 까지는 어느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듯 싶다. 그런데 내가 언제나 부러워 하던 그런 아이구나. 어렸을 적부터 훈련을 받거나,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혹은 재치가 많다. 하기사, 나도 재치라면 뒤쳐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정말로 재치가 많은 사람들은 따로 있다. 저 녀석은 생각이 깊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까부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것이다. 혹시 출생지와 관련된 것인가?
“넌, 어디서 왔냐?”
그 아이는 바닥에 눕혀진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조금은, 아니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은 모두 제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네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출생여부는 안 묻고, 저만 딴 곳에서 왔을 거라고 단정하죠? 저도 제가 어디서 왔는지, 제가 누구인지 몰라서 미치겠는데, 왜 사람들은 자꾸 물어보는 거죠?”
“너.. 기억상실증 이냐?”
“네?”
“음.. 어렸을 때 일은 생각나는 것, 아무것도 없냐?”
“제가 저를 데려온 저 사람이 데려오기 이전을 기억하려고 하면..”
“뭐냐?”
“어두워지는 것 같고..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도.. 머리가 상당히 아픈데요?”
어두워..진다..? 기억상실증이면, 새하얘진다 고들 하지 않던가? 거기에 머리가 아프다면, 오히려 봉인했다 쪽이 맞지 않을까. 리누님이 관직에 들어간 이상, 그리고 저 아이가 나라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인 이상, 또한 이 나라 출생이 아닌 이상, 십중팔구 봉인이다. 아.. 우련각..인가. 마인들에 의해 기억이 봉인 된 것인가. 아이는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일단은 손을 내밀어서 일으켜 주었다.
“네 머리카락 색 때문일거다. 이 나라 사람들은 붉은색 머리칼을 지니고 있지 않거든. 정 신경 쓰인다면, 다음에 마을로 내려가 염색 약을 사서 머리를 다른 색으로 물들이자꾸나. 일단은 네 말대로 저녁을 먹는 게 좋을 듯 싶지?”
“아, 네!”
나는 검 두개를 다시 챙겨 허리춤에 묶고 허리를 곧게 펴보았다. 그래도 세게 맞아서 그런지 복부의 통증은 가시질 않는다. 이눔을 어쩌실까. 일주일간은 퍼렇게 멍이 들은 상태로 있을 듯 싶다.
‥──··──‥·──────────────────··──‥·──··
안녕하세요 켄지입니다. 사흘만에 제 2 화를 들고 찾아오는군요.
우선 지금까지 읽어와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코멘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이미 목록에서 한참 내려간 글이기 때문에, 코멘트를 달아봐야, 읽기 불편하고 달은 사실도 알려지지 않을테니깐요.]
c.e. 마녀 > 신연재이시군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글틀을 사용하시지 않구요;ㅁ; 글틀은 쓰기에도 읽기에도 편하니까 한번 사용해 보시고, 건필하세요'-)
키릴 > 와, 신연재네요. 그런데 자료실의 글틀을 사용하시면 훨씬 멋진 글이 되지 않을까요. 보기 편한 편집도 독자를 향한 배려겠지요.
으음, 신연재가 아니라, '갈라진 날개' 를 통합, 그리고 제목을 바꿔서 이어 쓰는 것이라고 보면 되요. 워낙이 갈라진 날개를 임시 제목으로 정했기 때문이죠. 갈라진 날개의 내용을 전부 다 합치고 수정해서 프롤로그로 내보인 것이랍니다. 읽어주심, 코멘트 남겨주심, 그리고 격려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Nerizel > 여기 나오는 리누랑은 이미지가 많이 다르지만, '-' NWN에 나오는 여 클레릭 리누가 생각나네요.(긁적) ;ㅁ;b 그녀는 강했다! 였죠.
음; NWN 이 뭔지 모르겠네요; 본 소설 레퀴엠에서는 '리누; 라는 캐릭터는 남자랍니다. 하지만 NWN 의 강한 여 캐릭터, 누군지 궁금하군요+ㅁ+
[愚]曉天星夢兒 > 강했다? 강하다! 으음... (퍽) 어쨌든 건필하세요.
스윗a :) 건필하세요-
BlueTopaz 성유리의 말투가 생각나네요..[타-앙-]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ㅡ^)(_ _)(^ㅡ^)
성유리가 누구더라- -a;;
길소니엘 > 바람의 검심이 오랜만에 떠오릅니다~ 아... 건필하세요^^
네; 제 닉네임 켄지가, 바람의 검심 주인공의 아들내미 이름이죠; 감사드려요;
D.I.V.E 으아아아...제목이...제목이이!!!!!ㅠ.ㅠ
=ㅁ-?;; 제목이 왜요=ㅁ-?;; 아, 다이브님도 레퀴엠이세요=ㅁ-?;; 쿨럭-ㅁ-;;
c.e.마녀 > 와아, 글을 읽고 막 생각났어요. 건필하시길 바랍니다'-'b
감사드립니다; 으음, 무엇이 생각나셨을까;
이상 코멘트 답변이었고요.
으음.. 제가 한글97을 소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엠에스 워드를 쓰는데, 맞춤법을 잘 잡아내지 못하네요-_-;
읽으시면서 눈에 띄는 오타나, 내용이나 문장이 어색한 점, 찝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중심을 두려하고 하는 두 가지는,
현실적인 것. 물론 현실이 아니지만, 읽으면서 마치 영화 처럼 장면이 눈 앞에 뚜렷하게 떠올라지도록 하는 것..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새롭고 창조적인 것. 이미 존재하는 세계관과 설정들과는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검술은 어려울지는 몰라도,
마법이나 몬스터에서는 특히나 어떠한 색다른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단순히 마나를 모아 흔하디 흔한 파이어 에로우나 파이어볼을 쏘는 것이 아닌 것을 말이죠.
아마 몬스터는, 지금 껏 많이 들어오신 오크나 그런 종류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오크는 아마 제 기억이 맞는 다면 톨킨의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죠?
레퀴엠의 세계관은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과는 확실히 다르니깐, 등장 몬스터를 다르게 할 생각입니다.
드래곤이나 엘프가 등장한다 해도, 지금껏 보신 드래곤이나 엘프와는 많이 다른, 그런 설정으로 나오게 될듯 싶습니다..
그럼 이만 글을 맺고 다음에 찾아뵈도록 하겠습니다..
‥──··──‥·───────────────────··──‥·──·· |
|
첫댓글 오랜만이네요. 자료실에 있는 글틀을 이용한 편집을 해 보세요.:)
우응, 그래도 글틀은 상당히 편한데'-'a건필하세요.
'-')/ 역시나, 건필하세요!
수정했습니다= - =
흐응... 사흘 안 봤더니, 스토리가 점점 헷갈려지고 있어요오... @.@ (풀썩) 어쨌든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