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인면 신흥리에 사시는 노보살님 둘이서
이번 칠석날에는 못올것 같다며 미리 오셨습니다
여든 가까이 되시는 연세에 한시간여를
법당에서 나와 같이 기도를 하시고는
차를 내어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올해 고추 농사를 잘 지었다고 자랑합니다
원체 공주는 비가 많이 오지 않은 날이 많아
고추를 말리기도 쉬웠다 하시며
절에는 고추를 어디서 사서 자시냐 묻습니다
예 시골에 늘 대놓고 사먹는데가 있는데
지난해는 고추가 없다고 못준다 하여
오룡리 신도댁에서 사다 먹었습니다 하니
그럼 스님 우리 고추 좀 사시라고 하십니다
두 양주분이 삼천여포기를 심어두고
주말에는 아들들이 멀리서 와서 농약도 하고
김도 매 주면서 올해 고추농사가 잘되었는데
우리집만 잘된것이 아니라 다른 집도 잘되어서
어디 내다 팔것을 걱정하는 신세라 하십니다
그럼 올해는 보살님과 거사님이 애써 지으신
신흥리 고추 맛을 좀 보겠습니다
하고는 일년여 사용할 고추 양을 말씀드리니
우선 육십근 말려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부터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하십니다
오늘 마침 집에 다니러 온 아드님 차편에
육십근의 고추를 세자루에 나누어 가져오셨는데
고추가 아주 실하고 빛깔도 좋아 보입니다
두분에게 차를 드리며 우리절에 보살님은
고추를 사서 김장을 하실 무렵에는
일일이 고추를 물수건으로 닦으신다 하니
아드님은 스님 저희 부모님이 농사지은 고추는
그렇게 닦으시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시는데 믿음이 갑니다
손이 잰 분들은 이미 물고추를 사서
양지바른곳에 널어 태양초를 만드느라 분주한데
우리는 그런 부지런함이 없는 대신에
시골에 노보살님들이 애써 지은 고추 농사를
품앗이삼아 사다가 먹는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원효사를 처음 창건한 70년대 초반에는
고추며 쌀이며 채소 곡식이며 주부식이 되는 것중에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시장에 가서 사오지를 않고
오일장마다 우금치 고개를 넘어오는 이인 탄천의
소달구지 구루마에서 필요한 것을 사서
지게로 절로 올려다 썼는데 지금은 절 마당에
차가 쑥쑥 들어오니 천지개벽이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때는 장에 가는 소달구지에 실린 쌀 자루를 보고
장에 무얼하러 가시나요 하고 물으면 예 돈 사러 갑니다
라고 대답하던 시절이었으니 쌀을 팔아서 돈을 사러 가는
시골의 소달구지와 순박한 농부의 얼굴은 점차 사라지고
이제는 도로에 무쇠로 만든 소와 말들이 씽씽 내달립니다
그때만 해도 절에 오는 불자들이 불공을 올리려 하면
쌀 한말만 가져오면 그만이었던 시절이었고
학생들 하숙에 독방이면 쌀 한가마면 넉넉하였고
둘이 한방을 쓰면 일곱말이면 부족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며
학교 주변에는 하숙생을 쳐서 식구들이 먹고 사는 집들이
태반이었는데 그때 그 하숙집과 자취방들이 지금은
몇층이나 되는 원룸이라는 형식으로 탈바꿈을 하였을 뿐
사람 살아가는 근본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쌀 한가마가 십오륙칠만원 하는 모양이니
칠십년대 시세는 그정도면 론그라운드 운운하며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와 신경전을 벌이던 하숙비가
요즘은 쌀 세가마로도 부족하다 싶을만큼 올랐으니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고
농사짓는 이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싶습니다
그나마 이제 시골에 계신 칠팔십된 어르신들이
하나 둘 돌아가시고 나면 그 많은 논과 밭이 묵어가면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식량의 자급자족이 물건너가고
거의 모든 농수축산물을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것이
그리 멀지 않은듯 하여 씁쓸하기만 합니다
절에도 작은 텃밭이 있어서
봄에는 두릅이나 취나물 머위 돈나물 등 봄나물을 얻고
지금은 고추와 들깨 오이 호박등을 거두며
고추심고 남은 밭에는 비름나물이 무성하게 자라서
여름철 더위를 이겨내는 좋은 나물이 되고
이제 머지 않아 김장배추와 무를 파종하고 나면
한겨울 먹거리를 위한 채비가 다 될터이니
이번에 가져온 고추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할것입니다
작년에 고추를 사먹을 때 고추가 금추더니
올해는 작년 시세에 절반이 된다고 하니
주된 양념으로 쓰는 마늘도 대풍이요 고추도 대풍이라
주부들 가계 부담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래봅니다
속담에 고추당초 맵다 한들 시집살이보다 더 매우랴
하는 말에서 귀머거리 삼년 봉사 삼년 벙어리 삼년
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시집살이만 그런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자체가 그렇게 고단하고 매운것이니
듣고 보고 말하는 사이에서 적당함이라는 단어를
늘 염두에 두고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면
인생사 맵기는 고추당초보다 매울지 몰라도
그중에 또다른 즐거움이 또 가득함을 얻을것입니다
고추에는 우리 몸에 좋은 성분들이 많다하니
올해는 고추를 조금 넉넉히 사서 농부들 근심도 덜어드리고
비만이나 당뇨등에 좋은 고추 많이 먹고 힘을 내서
동요에 나오는 고추먹고 맴맴 달래먹고 맴맴이라는 노래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십시다
이러구러 살아온 날이 벌써 말복이고 화요일이 칠석입니다
가는 여름 아쉬워하며 오는 가을 전령사들을 맞이합시다
1.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2. 할머니는 돌떡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로 오실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3.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넘어 오실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원가사는 달래가 아니라 담배임)
이 모두가 부처님 덕분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