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탐욕을 씻을 강물은 어디에
미다스 왕의 황금손_5.wma
미다스 왕이나 포티 나이너즈를 탐욕스럽다거나 허황되다고 쉽게 비판할 수는 없다. 황금, 곧 재물,·물질에 대한 욕심은 어쩌면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비바람을 가릴 집도 있어야 하며 추위를 막아낼 옷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는 지혜로운 머리를 가진 까닭에 더 좋은 옷, 더 편리한 집, 더 기름진 음식을 찾게 된다. 물질적인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류의 문명을 여기까지 밀고 온 토대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쌓으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발전적인 동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 물질을 숭배하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황금을 사랑하면 별이 있는 곳도 모르게 된다는 격언이 있다. 물질에 대한 숭배는 곧 영혼을 가두는 감옥을 짓는 행위임을 알리는 경구는 그 밖에도 동서양의 고금을 통틀어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다. 인간이 물질을 다스리는 주인으로 똑바로 서 있을 때라야만 물질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에 보탬이 된다. 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숭고한 가치들을 잊어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그저 안락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간다면 황금은 곧 파멸의 길이다. 물질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적인 존재 조건이라면 물질의 노예가 되는 건 그보다 더 우위에 있는 존재 조건이다. 돈 때문에 온갖 끔찍한 일이 다 벌어지는 오늘날의 배금주의·물질주의를 보면 일찍이 그 과오를 깨친 미다스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우리의 이 탐욕과 어리석음을 씻어낼 강물은 어디에 있을까.
<고요한 돈 강>의 작가 숄로호프의 작품 가운데 <한 인간의 생애>라는 중편이 있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한 러시아 병사가 어느 날 독일군 장교들의 질탕한 파티장에 불려 나간다. 무언가 맡은 일에 트집을 잡혀 총살을 당할 판이었다. 그런데 마침 총을 겨누었던 장교의 권총 안에 총알이 들어있지 않은 바람에 죽음을 모면했다. 장교는 운 좋은 놈이라며 술을 한잔 준다. 물론 주인공을 장난감쯤으로 여겨 희롱하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술을 거부하자 장교가 어쭈, 이것 봐라 하는 눈으로 이유를 물었다. 물론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엉겁결에 나온 대답이 ‘저는 안주 없이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였다. 취기가 오른 장교는 이 엉뚱한 대답을 귀엽게 여겨 주인공에게 식탁 위에 있던 소시지와 빵을 가득 안겨 주었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그는 이번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독일군 장교들이 배가 터져라 웃어대는 가운데 파티장을 나왔다. 그날 밤, 수용소의 러시아 포로들은 모두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빵과 소시지를 한 조각씩 먹었다. 주인공은 포로의 수대로 빵과 소시지를 나누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의 얼굴인가.
배고픈 사람을 옆에 두고 혼자 먹지 않는 것, 이 소박한 예의야 말로 우리 모두가 그 속에 이 몸을 담가야 할 강물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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