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국어사전에 맨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이라고 풀이되어 있읍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친남매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중학교 3학년 가을에 모교(용현초등학교) 가을운동회장에서
긴머리소녀 옥수를 본순간 느꼈던 설레임과 어지러움을 생각하면 괜시리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집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던 시절 이어서 당시 여학생들은 대부분 단발머리 였었지만
장군의 딸들은 양갈래 머리 차림 이었고 예능분야의 학생들의 긴머리는 돋보였을수도 있었겠지요
낙섬일사회 불세출의 스타인 송창용의 첫사랑은 매우 복잡 합니다
낙섬일사회의 모임때마다 새로나오는 친구들이 생겼던 2000년대 초중반에
창용이는 새로나온 여지친구들에게 다가가서는
"네가 내 첫사랑이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 이바보야..."랍니다
낙섬일사회 여학생들중의 대다수가 창용이에게 똑같은 경험을 하였는데
정작 창용이가 지금 이름을 알고있는 여학생은 대여섯명에 불과 합니다
용현초 총동문회의 자상한 형이자 오빠인 오세우 고문에게도 첫사랑이 있더군요
아래위 입술 사이에 초강력본드를 바른것처럼 말수가 적고
태도는 분명해도 웬만해서는 속내를 입으로는 잘 드러내질않는 과묵함의 상징인 오세우고문 입니다
10년이 조금 안된 어느봄날 벛꽃구경을 마치고
만수동의 저희집에서 밤새도록 소줏잔을 기우리던 오세우고문의 입에서 첫사랑소녀 이야기가 나왔읍니다
번번히 올렸던 사진 이지요
저희들 초등학교 5학년 가을(1965년)에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다녀왔던
수원 용주사 수학여행때 임후규 선생님(작고)와 여학생들의 모습 입니다
사진속의 6명 소녀들 중에 오세우고문이 이야기하는 소녀가 있읍니다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다섯 가지의 도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뼛속까지 젖어있는 반듯한 오세우고문이
나이 50줄에 들어서 마치 큰죄라도 저지른것처럼 자백을 하듯이 내놓은 첫사랑 소녀...
저도 아주 또렷이 기억을 하고 있는 크고 맑은 눈망울의 공부 잘했던 예쁜소녀 입니다
하지만 낙섬일사회 친구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지금 소식을 몰라 안타깝습니다
둘다섯 초청 인천콘서트(2017, 3, 3 하인천 한중문화관)장에서
저희 14회친구들과 동갑나기인 둘다섯의 <소녀>노래 모습 입니다
첫댓글 소똥구리 굴러 가는것 만 봐도 웃음을 그 칠수 없었던 시절
구름은 맑게 갠 하늘에 걸렸고 삼삼오오 손에 손 잡고 도시락
질끈 둘러메고 두줄에 열 맟추라는 담임선생님 따라 신작로를
한시간 이상 걸어서 소풍가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용주사 탑앞에서
낡은 옛 사진이 정겹게 느껴지는건 왜 일까요?
욕심도 감정도 사회에 대한 시련도 근심도 걱정도 없었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리워 지는군요 ~~~ 좋은글 감사^*^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볼수 없지만
옛날에 봄소풍길에 동양화학 옆 노적봉을 붉게 태우던 진달래꽃 모습이 생각 납니다
누구일까요? 알아맞추는분 뭐있나요 ㅋㅋ
오세우고문의 취중누설 이어서
증거로 체택이 될른지 모르게네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순박한 모습의 사진이네요. ㅎ
배경음악인 둘다섯의 소녀 노래도 참 좋지요
총각시절에 참 많이 부르던 노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