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이상하면 이상한대로 웃음이 나옵니다. 캐낸 고구마는 뿌리를 자르고 흙과 잔뿌리를 털어서 잠시 햇볕에 말렸습니다.
한차례 땀을 흘리고 감나무 아래서 감을 먹으며 쉬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보며 단감 한 입 베어 무니 가을이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해가 벌써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땀도 식고, 쌀쌀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스님은 무가 자라고 있는 밭으로 향했습니다.
“한 달 뒤에 김장을 해야 하는데, 무가 아직도 크기가 너무 작네. 한 달 만에 쑥쑥 클 수 있을까?”
무의 크기가 작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스님은 조용히 무밭으로 가서 무청을 솎아 주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자주 닿는 만큼 채소도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습니다. 행자님들은 남은 고구마를 모두 캐어 고구마에 뭍은 흙을 털고 잔뿌리를 가위로 자른 다음 밤고구마, 물고구마, 호박고구마 종류별로, 또 크기 별로 분류해서 상자에 담았습니다.
상자에 담긴 고구마가 트럭에 가지런하게 실린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밭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고구마를 캐느라 땅만 쳐다봤다던 행자님이 말합니다.
“하늘이 이렇게 파랬군요. 너무 예뻐요.”
흙을 만지고 자연을 느낀 휴식 같은 하루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동그랗게 둘러앉아 오늘 농사일해보면서 어땠는지 편안하게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고구마를 많이 수확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직접 내 손으로 키워서 직접 수확해서 먹는 게 참 좋구나 많이 느꼈어요. 고춧잎을 따와서 저녁 밥상에 고추나물을 무쳐 먹었는데,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고춧잎이 참 소중하게 다가왔어요.”
“봄에는 밭을 갈고, 고랑에 부직포를 씌우고 했는데, 오늘은 그 반대 순서로 정리를 했잖아요. 밭이 원래 처음 모습으로 되돌아온 과정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일하려고 경쟁하는 제 마음이 보여서 그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일했습니다.” (웃음)
“참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내 입에 음식이 들어오는구나 느끼는 것이 큰 공부인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마트에서 봤던 고구마는 아주 깔끔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실제 밭에서 캔 고구마는 털도 많고 생김새도 못 생겼더라고요. 아, 내가 본 고구마가 전부가 아니었구나. 고구마도 팔려 가려면 성형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웃음)
마음 나누기를 하던 중 오늘 캔 고구마가 군불에 구워져서 나왔습니다. 호호 불며 맛있게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햇빛, 비, 땅, 지렁이, 사람 등이 6개월을 합작해서 만든 귀한 고구마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운전하는 행자님은 농사일을 마치면 운전을 해야 하니까 그게 저도 늘 부담이었거든요. 저는 차 안에서 쉬면 되지만, 행자님은 운전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이동하는 일정이 없으니까 편하게 일할 수 있었어요.
고구마를 캘 때 속도를 내다보니까 쇠스랑으로 고구마를 몇 개 찔렀어요. 삼지창이 대나무 뿌리에 걸려서 그걸 치우려고 하다 보니까 쇠스랑도 망가졌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 고구마값만큼 일을 못했어요. (모두 웃음)
응달에는 고구마를 안 심어야 하는데, 그걸 행자님들에게 주위를 못 준 것 같아요. 역시 모든 생명의 근원은 태양인가 봐요. 햇빛을 조금 더 받느냐 안 받느냐로 인해서 많은 차이가 나거든요. 그늘에는 더덕 같은 음지 식물을 심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땅이 마른 뒤에 고무마를 캐야 캐기가 쉬운데, 비 온 뒤에 고구마를 캐서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함께 해서 좋았어요. 저는 농사짓는 것이 휴식이에요. 때로는 그 휴식이 너무 과해서 피곤을 더해 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농사일을 할 때 제일 집중이 잘 되는 편이에요.” (모두 웃음)
마음 나누기를 마치고 나니 달이 산 위로 휘영청 떠 있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본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정기 수행 법회 일이어서 행자님들은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수행 법회를 함께 보았습니다.
내일도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진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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