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모밀(어성초)
화농성 질환에 탁월한 천연 항생제
▶한마디 말이 고통을 덜어주는 약초
전화번호부를 정리하다 보면 누구나 이별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살아서 하는 이별, 죽어서 하는 이별, 어쩔 수 없이 체념하는 이별들.
「엄마! 난 다시 태어난다 해도 꼭 엄마의 딸이 될건데, 엄마도 내 엄마가 되어줄 거지 응?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난 엄마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엄마는 다시 고개만 끄덕이셨다. 이것이 어머니와 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월간 「좋은 생각」 2003년 5월호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글 첫머리 부분이다. 어떤 분이 자기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나눈 마지막 대화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슬픈 이별 그러나 가을걷이한 들녘처럼 쓸쓸함이 배인 참 아름다운 장면이다. 어머니 사랑했어요. 어머니의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엄마!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도 난 엄마의 딸이 될건데 엄마도 내 엄마가 되어 줄거지? 노을보다 더 붉고 쪽빛보다 더 푸른 꽃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이 마지막 대화는 참으로 가슴 울리는 인간적인 모습이다.
기력이 쇠잔하여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어머니 그러나 그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한사코 가자는 저승사자의 소매 자락을 뿌리칠수야 없어도 이승에서 자식 키운 것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행복. 저승 가는 길에 이별이 서럽지도 발걸음이 두렵지도 않았으리라. 난 엄마의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어머니가 베풀어준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은혜. 그에 보답하는 언어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임종을 맞이하는 어머니에게 한 딸의 말 한마디는 저승길을 고통 없이 편안히 떠날 수 있는 더 없는 진정제 약초가 되었겠다.
육도윤회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가는 것. 마음에 사무침이 있으면 두 모녀가 만날 인연이야 왜 없겠소. 그러나 만나면 이별을 기약해야 하는 슬픈 이승에서는 다시 인연 맺어 만나지 말기를.
▶일본에서는 민간약 약초 1위로 선정
약모밀은 삼백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며 어성초로 더 알려진 약초. 응달진 숲 속이나 습한 초원에서 자생하는데 땅속 살찐 흰 뿌리가 옆으로 길게 뻗어가고 붉은 빛 줄기를 내어 곧게 서서 30cm 내외의 높이로 자란다. 잎은 마디마다 어긋나고 긴 잎자루가 있으며 잎의 생김새는 넓은 심장형으로 다섯 개의 뚜렷한 잎맥을 가지고 있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이 밋밋한데 특이하게 잎자루 겨드랑이에 세모꼴 받침 잎이 붙어있다. 여름 6~7월 줄기 끝에서 짧은 꽃대가 자라나 한 송이씩 꽃이 핀다. 그러나 이 꽃들은 독특한 데가 있다. 꽃잎처럼 보이는 십자
삼백초과의 다년초.
형으로 달린 4장의 하얀 잎은 변형된 꽃받침이며 그 위에 돋아난 길쭉한 꽃차례에 꽃잎과 받침은 없으나 아주 조그마한 노란 꽃밥이 이삭모양 모여 피어나서 노르스름하게 보이는 부분이 꽃이다. 초가을 9월에 열매가 여물어가서 갈라지면 연갈색 씨앗이 나온다.
약모밀의 남다른 개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약초 전체에서 생선 비린내 비슷한 특이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성초魚腥草, 어린초魚鱗草, 어성채魚腥菜라 했는데 이 비린 방향성 물질에 약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여러가지 이름들 꽃모형을 봐서 십자초十字草, 십약초十藥草. 중국에서 즙채즙菜, 중약초重藥草, 저채菹菜, 취채臭菜, 필관채筆管菜라 했다. 우리말 이름은 멸, 메밀나물, 밀나물로 불러왔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 만큼이나 한방과 민간에서 예부터 여러가지 약으로 쓰여온 전통 깊은 약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울릉도, 태안반도 중부이남에 자생하며 세계적으로는 중국․일본․히말라야 지역에 분포한다.
▶살아있는 천연식물 항생제
약모밀은 메밀잎을 닮아서 붙여진 우리이름인데 한방에서 생약명은 중약, 즙채, 어성초라 하며 「본초강목」 「당본초」 「본초도감」들에서 효능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사전」에 의하면 어성초의 약성에서 맛은 맵고 성질은 차다. 간경과 폐경에 작용한다. 약효는 청열․해독․소염․강억균․강심․모세혈관강화․이뇨의 효능들이 약리실험에서 밝혀졌다. 적용질환은 폐질환-폐렴․폐농양․폐옹․기관지질환-기관지염․인후염․편도선염․백일해. 염증질환-요도염․임질․매독․방광염․자궁염․유선염․대하증․결막염․이질장염․습진․악종창․치질․치루․탈항․항균억균-대장균․임질균․적리균․포도알균․사상균․파라티프스균․백선무좀비병원성곰팡이균들에 작용한다.
어성초의 주된 치료효능을 요약해 보면 화농성 염증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살아있는 천연식물 항생제라는 것. 어성초에는 세균의 발육을 억제하거나 강력 살균성 생약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화학적으로 합성된 항생제 「마이신」 종류의 남용에 의해 생긴 항생제 내성을 없애준다고 했다. 그러므로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할 질환의 환자가 항생제 내성이 생겨 치료효과를 얻지 못할 때 어성초는 천연항생제로서 신통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태평양전쟁당시 일본군들은 주둔 병영지 주변에 항상 어성초를 재배하여 항생제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청열강심 모세혈관 강화작용으로 혈압을 조절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당뇨병의 혈당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약대사전」에서 어성초를 신체조직 재생작용이 있다고 거창하게 소개하고 있다.
대만․태국․일본에서는 어성초 요리, 생즙, 약술, 차, 벌레 물린데 직효약인 피부연고까지 만들고 특히 일본에서 민간약으로 어성초 분말녹차를 비롯하여 피로회복제 회춘정력제, 이명, 황달간염, 옴버짐, 피부미용 여드름에 이르기까지 별의 별 곳에 다 쓰이는 만병통치약이 되어 일본 제1의 민간 약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의 민간요법으로 어성초는 예로부터 독극물을 먹었을 때 해독 최토제로 쓰여왔다.
농약 중에서 50여년의 전통을 가진 「파라치온」이라는 농약이 있었다. 그때는 독성 1위의 무시무시한 농약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독성 7위쯤으로 밀려나고 제초제가 단연 농약독성 1위가 되었다. 제초제에도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그라목손」과 같은 식물의 잎만 마르게 하는 것과 「바스타」처럼 뿌리째 죽이는 제초제다. 현대의학에서 제초제를 마셨을 때 해독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라목손」 정도의 제초제를 먹을 때 1~3일 이내에 어성초 즙을 먹이면 별 후유증 없이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하였으니 우리 선조들께서 독극물을 먹을 때 어성초를 해독 최토제로 쓴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약초 채취시기는 봄여름 여린잎은 녹차를 만들고 꽃이 필 무렵부터 가을까지는 뿌리째 캐서 썰고 말려서 보관하여 두고 쓴다. 겨울에는 뿌리를 약용한다. 내과적인 질환에는 생즙이나 달임약을 복용하며 외과적인 질환에는 먹고 씻고 바른다. 하루 쓰는 양 15~30g를 물로 달여 하루 세 번 나누어 마신다.
어성초가 좋은 약초라는 것을 알았으면 간단하게 약차를 만들어 늘 마시자. 어성초는 뿌리 번식력이 아주 강한 식물. 야생 약모밀을 몇 포기 구해서 한 평 남짓한 작은 텃밭을 일구고 가꾸면 여러해살이풀이므로 다음해부터는 수시로 어린잎들을 따 모아 덖음 녹차도 만들고 즙도 내며 겨울에는 뿌리를 먹을 수도 있다. 즙을 낼 때는 약초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철따라 나는 과일즙을 첨가하면 될 것이다. 비린내가 나는 약초라 하지만 그리 역하지는 않으며 삶고 울궈내는 과정에서 냄새는 거의 없어진다. 그래서 나물로 많이 먹기도 하여 메밀․밀나물이라 한 것이다.
삼백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어성초이라고도 한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달걀 모양의 심장형이며 길이가 3~8cm이다.
<艸開山房/oldmt@hanmail.net> ***글: 이 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