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핀 음식, 한달 월급 5천원, 학생 1/4 성폭행 당해
시설원장, 장애인이 자립생활할까봐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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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시설비리 척결과 탈시설권리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 |
“시설비리 척결하여 탈시설 권리 쟁취하자”는 구호가 쩌렁쩌렁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6일 오후 2시 20분부터 ‘시설비리 척결과 탈시설권리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성람재단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공동투쟁단 등 16개 시민사회 단체가 주관한 이날 대회는 5일부터 3박 4일간 열리는 장애민중행동대회의 2일째 행동 대회.
거리에서 치열한 투쟁으로 장애민중의 진지한 요구와 당당한 목소리를 제시한다는 대회 취지는 마침 퍼붓는 빗줄기로 인해 자칫 주춤하는 듯 싶었다.
예정된 시간인 오후 2시에서 20분을 넘겼지만, 대회장은 200여 장애인으로 꽉 채워졌다.
사회를 본 이진석 공공노조 대구경북지부 청암지회 사무국장은 뜻밖의 구호를 제창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고, 이 자리에 있어서 행복하고, 지금 행복하기에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의 전망을 꿈꿀 수 있다는 주장.
민중의례에 들어가기 직전부터 이진석 사무국장은 “사회복지 시설에서 수용자들의 인권과 종사자들의 노동권이 수없이 유린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못을 박았다.
곰팡이 핀 음식, 한달 월급 5천원, 학생 1/4 성폭행 당해
이 지난한 현실 앞에 피와 땀을 흘린 열사를 기리는 민중의례가 뒤이은 뒤 박찬동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의 여는 발언이 먼저 시작되었다.
박찬동 위원장은 광주 인화학교에 성폭력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자행되었을 거라고 짐작되는 성폭력 사건은 2005년 인터넷 고발을 통해 알려졌다.
사건의 내막을 밝혀보자 더욱 기가 막힌 현실이 앞을 가로 막았다. 학생 4명 중 1명이 가해자였고, 또 학생 4명 중 1명이 피해자였다는 것.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8월 인화학교를 운영하는 우석법인의 임원을 해임하도록 권고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학생은 학교에 안 가겠다고 말하고, 부모는 자식을 학교에 안 보내겠다고 하는 지금 실정”이라고 밝힌 박찬동 위원장은 “정부가 법인에게 아이의 교육 권리를 맡겼기에 법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었고, 2년 동안 투쟁해왔지만 이제 다시 투쟁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음 여는 발언을 맡은 김순호 청암재단 노동조합 전 노조위원장은 “청암재단의 시설에는 지적 장애인 220명이 생활하고 있다”면서 “2005년 1월에 시설 비리를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10년, 아니 20년 전에도 비슷한 비리가 있었다”라고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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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저편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아이가 결의대회 선언을 축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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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을 이끌고 결의대회에 참석한 장애인, 눈은 감고 있지만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활동보조인이 우산을 치켜 들고 있다. | |
“사람들은 청암재단을 아주 좋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적 장애인들을 돌본다고 호의적이고, 원장은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라고 말한 김순호 전 위원장은 “바로 거기서 장애인 구타와 착취, 국가보조금 횡령, 친인척을 유령 직원으로 등록시켜 월급을 착복했다. 비리는 복합적이었고, 시설 비리의 전형이었다”라고 2년 전을 회상했다.
이어 “시설에서 장애인의 기본권은 없었다. 밥 1공기를 주고 두 사람이 나눠먹으라고 했고, 날짜가 지나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고 살아야 했으며, 강제 노동을 시키며 한달 월급을 5천원, 1만원밖에 안 줬다”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이승현 성람재단 노동조합 조합원은 “성람재단에서 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에게 돼지와 소를 키우게 했고, 돼지와 소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계속되는 연대발언을 수화로 통역하고 있던 에바다 시설의 권오일 사무차장은 “에바다 시설이 정상화된 것은 관선 이사가 파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성재 씨가 관선 이사로 처음 들어왔을 때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구나 생각했지만, 나중에 비리의 주범인 시설 원장을 복직시켰지 않은가”라고 발언을 이었다.
또 “장애인 당사자의 투쟁과 동지들의 강고한 연대투쟁이 있었기에 에바다가 비로소 정상화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9월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투쟁은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 법 개정과 투쟁이 우리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시설원장, 장애인이 자립생활할까봐 두려워한다
이 사이 잠깐 흥을 돋운 민중가수 류금신 씨의 열창.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리듬을 탄 노랫소리에 참가자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두 팔을 크게 벌려 손뼉을 쳤다.
연대발언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선 손상열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자신은 인권이 뭔지 모른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손상열 활동가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지만 그 인간은 장애인 시설 원장의 자식 정도일 것이다. 부모가 시설장이면, 자식도 시설장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설장의 돈벌이 대상인 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라며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경기도 모 시설에서 생활하는 H 씨도 연단에 올라왔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언어장애가 매우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A+지 3장 분량의 원고에 미리 적은 말을 길게, 더 길게 발음해나갔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내 장애인 연금이 나온다는 사실도 몰랐고, 이 연금이 원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사실은 더욱 몰랐다고 말한 H 씨.
입고 싶은 옷을 입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원장이 어디서 샀는지 몰라도 모든 수용자에게 동일한 사이즈의 동일한 무늬를 가진 싸구려 옷만 입힌다고 비난했다.
게다가 원장은 수용자들이 바깥 세상을 알아 자립하기 위해 시설을 ‘탈출’할까봐 전전긍긍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자 안 된다고 거부하고, 자비를 들여 인터넷을 설치하겠다고 하자 이조차 도저히 안 된다고 단호히 거부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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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모 시설에서 생활하는 H 씨가 발언을 하는 동안 한 장애아동이 연단에 올라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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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지만 열의만큼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참가자 | |
홍승하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의 연대발언이 있었지만, 이때 참가자들은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져 있던 상태. 민주노동당은 장애인의 투쟁에 365일 연대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연대투쟁을 할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마무리 발언은 강현석 전북시설인권연대 공동대표가 맡았다. 강현석 공동대표는 장애인계에 이름이 익숙치 않은 전북시설인권연대의 탄생사를 먼저 소개했다,
8월 31일 정식 출범을 했고, 16개 시민사회단체가 가입되어 있다는 것. 출범식 날 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 30대를 몰았고, 그 뒤를 20대의 차량이 따라오는 행사를 치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모 시설장이 우리를 찾아와 자신은 수용자를 성폭행하거나 식대를 착복하고, 때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뒷이야기를 꺼낸 강현석 공동대표는 “그렇다면 우리가 시설장이 장애인을 성폭행하고 식대를 착복했으며 때렸다고 거짓말을 한 거냐”고 참가자에게 되물었다.
이어 야간 대학에 다닌다고 밝힌 뒤 “이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50대에서 60대 늙어가는 사람들이 다니고 있다. 이들이 그 나이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다. 뻔하지 않은가. 노후를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다”라고 말해 ‘장애인 = 돈’이라는 공식이 통하는 세상을 비꼬았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이진석 사무국장은 ‘나는 내가 좋다’는 구호로 대회를 마무리했으며, 대회가 끝난 뒤에는 국가인권위원회까지의 행진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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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대회를 마친 후 거리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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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게에서 행진 대열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