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발간된 책이지만 오늘 지금 이 시점에 읽어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부터 기독교는 세상이 걱정하는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고 누구에게도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하는 박제화된 종교가 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다. 젊은 세대들은 기존의 부모 세대처럼 기독교를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기성 세대들도 기독교에 대해 기존에 생각해 왔던 틀을 과감히 던져 버리는 모양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가지며 탈교회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교회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젊은 층들이 교회에 유입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들만이 자리를 지키는 노쇠한 교회가 되어버렸다. 한국 교회의 장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는 소리를 내지만 진작 해결책 앞에서는 침묵 중이다.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에서 현재 당면한 기독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 기독교의 남다른 매력은 섬김에 있다!
"섬김(serve)이란 단어는 매우 인기 없는 말입니다. 우리는 유교적 어휘인 봉사란 말을 더 좋아하는데, 봉사는 좀더 우월한 사람이 하급자에게 허리를 굽혀 돕는다는 뜻입니다. 한편 '섬긴다'는 말은 마치 종이 그의 상전에게 시중을 드는 것처럼 하급자가 상급자를 받들면서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214쪽)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다. 기독교인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기회가 되면 봉사를 한다. 봉사와 섬김의 큰 차이점은 마음가짐이다. 섬김은 받드는 것이다. 종이 상전을 시중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기독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사람들은 기독교의 봉사 활동에 감동 받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 도전받는다. 기독교는 믿는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일하는 직장이 섬김을 실천하는 장소가 된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섬김의 대상이 된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직급에 구애받지 않고 받드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섬김이다.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섬김'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을 섬기는 기독교 말이다.
"현대 교회들 중 많은 교인들이 불의를 당한 자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교인들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교회 다니지 않겠다. 신자들이란 불의와 타협하거나 불의를 묵인하는 악한 무리들이다" (175쪽)
2. 기독교는 낮아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지도자는 가장 천한 작업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지요" (237쪽)
1900년대 초 중국 내륙 지방에 있었던 예수 가정 공동체의 실제 이야기다. 중국이 공산화되었을 때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며 핍박할 때 조차도 예수 가정 공동체는 굳건히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공산당 간부들이 보기에도 예수 가정 공동체는 자신들이 표방하는 신념 이상으로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집단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지도자일수록 손에 흙을 묻힐 기회가 별로 없다. 지도자가 될수록 노동가 멀어진다. 그런데 예수 가정 공동체는 지도자일수록 가장 천한 직업을 자발적으로 한다고 한다. 인분을 수레에 실어다 밭에 뿌리는 일은 지도자의 몫이라고 한다.
기독교는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 힘이 있어 보이면 안 된다. 세상의 영향력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지만 기독교의 영향력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가난과 천함 속에서도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기름끼가 번지르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고 누가 과연 그를 따르며 존경하겠는가. 하나님이 자기의 하인인 것처럼 생각한다.
"만일 교회에서 갖는 직분상의 지위-집사,장로,권사,전도사,신부, 목사- 가 형제적 사랑보다 더 중요시된다면, 그것은 서구의 옷을 입은 유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214쪽)
3. 기독교는 기도하는 종교다!
"해외에 있는 형제들은 우리의 정신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외국의 교회들은 우리가 의지하는 마지막 수단을 없애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주님 앞에 외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재정적인 필요인 것입니다" (240쪽)
중국 예수 가정 공동체가 붙들고 있는 원칙 중 하나다. 외국의 원조를 받기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선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재정적 지원은 무릎을 꿇게 하기보다 돈을 더 의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기독교는 어떤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재정을 의지하는가.
"기도란 우리의 일을 실행시키는 방법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기도란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인 것입니다" (200쪽)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에서 저자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특히 희년의 정신을 구현해야 내야 한다고 한다. 희년의 성경적 정신이 오늘 우리의 경제 활동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한다. 바로 토지를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의 정립이다.
"구속 redeem 이라는 단어는 토지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희년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토지의 원래 소유자는 임대료를 모두 돌려주고 토지를 다시 구속(되무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구속(토지 무르기)이라는 단어가 본래 경제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185쪽)
"성경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정의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특수한 처방책을 담고 있습니다." (183쪽)
"모든 가족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기업으로 가질 수 있게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142쪽)
"토지에 부가되는 가치를 사회 전체를 위해 쓰일 세금으로 거두어 들이는 방법입니다. 토지가치세." (139쪽)
"기업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원뜻은 제비뽑기로 토지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132쪽)
4.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이다!
"구약의 모든 사실을 영적으로만 해석하고 상징적으로만 다루어 왔기 때문에 구약이 말하는 현실 세계를 생생하게 보지 못하고 다만 숨겨져 있는 우화적 의미만을 탐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125쪽)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구체적인 자연계의 기초, 사회적 질서의 일차적 완성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118쪽)
"우리 시대의 비극은 기독교가 개인의 영혼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종교적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114쪽)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가치 있고 완성된 희생을 추구하지만 대체로 과학적 인본주의자들은 그들의 후손들을 위하여 자유와 행복과 기회 좀 더 나은 생활방식을 추구합니다." (118쪽)
"교회는 나이가 들어 변화를 원치 않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핍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권세를 잡고 이었습니다" (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