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암달러, 명동 私設 환전소 '錢의 전쟁' 르포 1만달러 팔겠다니 반색 통화 3번만에 10원 올려 "달러 언제 폭락할지 몰라 바꾼 돈 저녁에 다 팔아"
"아이고, 너무 올라 겁이 나네요."(암달러상 K씨)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한 8일, 외환시장 못지않게 서울 남대문 시장 일대의 암달러상들도 폭등하는 환율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남대문 시장 입구에서 '환전'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던 K씨는 "환율이 미쳤다. 겁난다"고 했다.
◆5분마다 뛰어오르는 달러값
노점상이 빼곡한 사이로 조그만 탁자 하나를 앞에 놓고 허리에는 전대를 찬 암달러상들이 몇몇 보였다. 기자는 쉴 새 없이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지금 얼마야?" 하고 달러값을 묻는 한 암달러상과 '거래'를 시작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의 명함엔 '뽀뽀 아줌마'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갖고 있던 1만 달러를 팔겠다"고 제안했더니 귀가 번쩍 뜨이는지 "당장 은행으로 가자"고 팔부터 당겼다. 달러가 계속 치솟는 요즘, 암달러 시장의 경기를 물었더니 뽀뽀 아줌마는 "아이고, 이문은 별로 안 남고 하루 종일 출렁거리는 달러에,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저녁에 집에 갈 때 단 100달러도 안 남기도 다 팔아버리고 가. 100달러에 100원, 200원밖에 못 남기는 한이 있어도 전부 팔아 치워버려. 어제도 여기 있는 상인들이 다 손해보고 팔아버리고 갔어."
달러가 치솟고는 있지만 비정상적으로 폭등하는 바람에 "이러다 언제 폭락하지 몰라 겁난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남대문 암달러상들은 그날 사들인 달러는 그날 다 팔아 치우는 '단기 매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기자가 10분간 가격을 네고(협상)하는 동안 뽀뽀 아줌마는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환율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달러당 1360원을 주겠다고 했는데, 환율이 계속 오르는 추세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1365원을 제안했다. 발길을 돌리려고 하자 1370원을 주겠다고 붙들었다.
환율이 급등하는 대목을 맞았지만, 남대문 암달러상의 경기는 예전 같지 않다. 사설 환전소가 많이 생겼고, 은행에서도 각종 우대 환율을 주면서 손님들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 아니면, 굳이 암달러상에게 달러를 사거나 팔 이유가 없는 셈이다.
▲ 8일 오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한 환전상이 달러를 환전해주고 있다. 하루에 몇 십 원씩 치솟는 환율 폭등에 환전상들도“겁난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ojc1797@chosun.com
◆외국인들로 대목 맞는 환전소
서울 명동 일대 사설 환전소는 외국인들로 대목을 맞았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본국에서 가져온 자국 돈을 원화로 바꾸려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이날 오후 2시 명동의 A사설환전소. 벽에 달린 전광판의 1달러당 원화 환전 비율은 여전히 1355원이었다. 주인은 "너무 바빠 미처 전광판을 바꿔 놓지 못했다"면서 "환율이 뛰면서 돈을 바꾸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20㎡ 남짓한 조그만 환전소에는 쉴 새 없이 손님이 밀려들어 5~6명씩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양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는 중국인 쇼메이윈(여·20)씨는 "2년 전만 해도 1위안에 120원 했는데 요즘엔 190원"이라며 "아직 서울 물가가 베이징보다 비싸지만 이 정도면 살 만하다"고 했다. 함께 온 인보야오(20)씨도 "오늘 돈을 많이 바꿨다"고 흡족해했다.
여행가이드 김모(45)씨는 "한국 여행을 자주 오시는 일본 고객이 있는데 '이런 기회가 어디 있느냐'며 20만 엔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율 급등에 마음 졸이는 사람도 많았다. 중국 동포 김모(여·42)씨는 "월급 받은 돈을 위안화로 바꿔 중국 가는 친구 통해 보내려 했는데 너무 올라 도저히 돈을 못 바꾸겠다"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