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풀
이윤학
죽은 개를 트렁크에 싣고
겨울 들판에 나가 보았다
고구마를 캐낸 밭두둑 위에 잔설이
고운 체로 쳐낸 떡고물을 길쭉하게 뿌려
올려놓은 풍경, 오래 묶인 것들은
풀린 줄도 모르고, 기가 죽어 곁눈질로
자신과 상관없는 풍경을 훑는다
눈이 시뻘겋게 되어,
자신도 어쩌지 못하면서
어떤 사람의 광신도가 되어 간다
하루 한 동이 물을
혀로 까불러
깨진 독에 처넣던
개는 짖지 않았다
방문 앞에 단독으로
턱을 붙이고 누워 있었다
마루 밑 타일에 떨어진 햇볕을
희멀건 눈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짚 투매를 빼들고 여기저기
들불을 옮겨 붙이는 사람들
들불 연기가 허공을 벌리고
어디론가 쓸려가는 겨울 들판,
불길은 마른 풀을 태우고
마른 풀에 옮겨 붙었다
—《내일을 여는 작가》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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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등.